빌리 와일더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말 화려하다. '이중 배상 (Double Indemnity, 1944)', '잃어버린 주말 (The Lost Weekend, 1945)', '선셋 대로 (Sunset Blvd., 1950)', '제17 포로수용소', '사브리나 (Sabrina, 1954)',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1959)',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The Apartment, 1960)' 등, 빌리 와일더 감독에게는 연출작과 대표작의 구분이 없다.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과, 새로이 선정한 2007년 10주년 기념판을 보면 네 편의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들 - '이중 배상', '선셋 대로',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 이 순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이 연출한 거의 모든 영화의 각본도 직접 쓴 빌리 와일더 감독은 특이한 소재를 영화의 이야기로 다루어 영화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이다. '제17 포로수용소'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다뉴브 강 근처의 한 독일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전쟁 포로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수많은 전쟁 영화들이 나왔지만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전쟁 포로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제17 포로수용소'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17 포로수용소'의 이야기는 영화의 주인공인 세프톤(William Holden)의 꼬붕인 쿠키(Gil Stratton)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데, 쿠키도 내레이션을 통해 이를 언급한다.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 전쟁 영화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상합니다. 모두가 해병 대원들이나, 잠수함 순찰병들이나, 잠수 공작원들이나, 필리핀에 있는 게릴라들에 관한 영화들입니다. 정말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건 전쟁 포로들에 관한 영화는 없다는 겁니다."

'제17 포로수용소'의 원제목인 'Stalag 17'에서 "stalag"은 독일어로 포로수용소를 의미한다. '제17 포로수용소'는 1944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밤에 제4 막사의 미군 포로 두 명이 탈출을 감행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막사의 난로 밑에 뚫은 통로를 이용해 수용소 밖으로 빠져나가지만, 숲에서 기다리고 있던 독일군들에 의해 사살된다. 제4 막사의 미군 포로들은 막사 내에 스파이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세프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뛰어난 수완가인 세프톤은 도박과 장사로 다른 포로들로부터 거둬들인 담배를 독일군에게 뇌물로 주고, 다른 포로들에 비해 굉장히 호사스런 수용소 생활을 한다. 당연히 세프톤을 바라보는 다른 포로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어느 날 독일군의 무기를 실은 열차를 폭파한 던바 대위(Don Taylor)가 제4 막사에 들어오는데, 막사 내 누군가의 제보로 폭파범인 게 알려져 수용소장 폰 쉐르바흐 대령(Otto Preminger)에게 끌려간다. 이 사건으로 제4 막사의 포로들은 세프톤이 스파이라고 확신을 하고, 세프톤을 집단 구타한다. 억울하게 구타를 당한 세프톤은 자신이 직접 스파이가 누군지 알아내기로 한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실제로 전쟁 포로였던 도날드 비밴과 에드먼드 트르친스키 - 에드먼드 트르친스키는 트르친스키(Edmund Trzcinski) 역으로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다 - 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에드윈 블럼과 함께 '제17 포로수용소'의 각본을 썼다. '제17 포로수용소'는 역시 윌리엄 홀든이 출연하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와, 존 스터지스 감독의 '대탈주 (The Great Escape, 1963)'와 더불어 최고의 전쟁 포로 영화로 꼽히고는 있지만, "위대한 미국 영화 100"의 순위에 랭크되어 있는 네 편의 빌리 와일더 감독의 영화들에 비하면 영화가 주는 재미와 작품성이 다소 떨어진다. 주로 "짐승"(Robert Strauss) - "짐승" 역의 로버트 스트라우스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 - 과 샤피로(Harvey Lembeck)에 의해 전개되는 코믹한 이야기들이 너무 과장스럽고, 영화의 이야기와는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길다.

또한 윌리엄 홀든은 세프톤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물론 윌리엄 홀든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세프톤 역 자체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제17 포로수용소'에서 비중 있는 역이 아니다.

수용소장 폰 쉐르바흐 대령 역의 오토 프레밍거는 원래는 빌리 와일더 감독 못지않은 유명한 영화감독인데, '로라 (Laura, 1944)', '카르멘 존스 (Carmen Jones, 1954)', '살인의 해부 (Anatomy of a Murder, 1959)', '영광의 탈출 (Exodus, 1960)' 등을 연출했다. 프라이스(Peter Graves) 역의 피터 그레이브스는 우리나라에서는 '제5 전선'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미션 임파서블 (Mission: Impossible)'로 잘 알려진 배우이다.

'제17 포로수용소'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의 3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만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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