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착한 사람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운에 좌우되는지 알기를 두려워한다. 너무나 많은 부분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두려운 것이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 위를 치는 순간, 공은 넘어갈 수도 있고, 뒤로 떨어질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진다."
'매치 포인트'는 출세를 위해 "아일랜드에서 런던으로 온 가난한 소년" 크리스 윌튼(Jonathan Rhys Meyers)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해설서의 도움으로 읽는 크리스는 인생에서 노력보다는 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크리스는 실제로도 '매치 포인트'에서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런던에서 테니스 강사로 취직을 한 크리스는 자신이 가르치던 부유층 집안의 아들 톰 휴이트(Matthew Goode)와 친해진다. 톰은 오페라를 좋아하는 크리스를 오페라에 초대해 자신의 가족들에게 소개시켜 준다. 톰의 여동생 클로에 휴이트(Emily Mortimer)는 크리스에게 첫눈에 반하고, 클로에의 적극적인 대시로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된다. 크리스와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눈 클로에의 아버지 알렉 휴이트(Brian Cox)도 크리스를 마음에 들어 한다. 클로에는 아버지에게 크리스의 일자리를 부탁하고, 결국 크리스는 알렉의 회사에 취직해 출세의 꿈을 이룬다.
그러나 크리스는 톰의 약혼녀인, 콜로라도에서 온 배고픈 배우 지망생 노라 라이스(Scarlett Johansson)를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 크리스의 적극적인 대시로 두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까지 가진다. 클로에와 결혼을 한 후에도 노라를 잊지 못하고 있던 크리스는 톰과 헤어진 노라를 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나고, 이때부터 노라의 집을 드나들며 노라와 위험하지만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는 노라로부터 임신 소식을 듣게 되고, 노라는 클로에와 정리를 하라고 크리스를 다그친다. 크리스는 고민에 빠진다. 노라를 원하지만 노라와 함께 하면 미래가 없다. 하지만 클로에와 함께 하면 안정적인 삶과 미래가 있다. 결국 크리스는 노라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크리스는 강도에 의한 살인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노라의 이웃인 이스트비 부인(Margaret Tyzack)을 먼저 살해하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노라를 살해한다.
'매치 포인트'를 보면 이 영화가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기존의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영화이다.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 감독의 장기인 코미디가 아닌 정극이며, 이야기의 배경도 뉴욕이 아닌 런던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총 15번이나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른 우디 앨런 감독인 만큼,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쓴 '매치 포인트'에서도 그의 재치는 여전하다. 우디 앨런 감독은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매치 포인트'로도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우디 앨런 감독은 기발한 반전이 있는 '매치 포인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죄책감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매치 포인트'의 마지막에 크리스가 죽인 노라와 이스트비 부인이 크리스 앞에 나타나는 장면이 있다. 크리스 앞에 나타난 노라와 이스트비 부인은 크리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나타난 유령은 아니다. '매치 포인트'는 공포 영화가 아니다. 크리스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헛것을 보는 것도 아니다. 크리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장면은 관객들에게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아무 죄책감 없이 어떤 죄까지 저지를 수 있나 질문을 하기 위한 설정이다. 크리스가 노라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노라, 쉽지 않았어.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난 또 방아쇠를 당길거야....죄책감은 깔개 밑에 쑤셔넣고 행동으로 옮기는거지. 그렇게 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자신만 당하지."
이스트비 부인이 묻는다. "그럼 난 뭐지?...무고한 제삼자가 죽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거야?"
크리스가 대답한다. "더 큰 계획을 위해 때로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기도 하죠. 당신은 부차적인 희생입니다."
이에 이스트비 부인이 말한다. "자네 아이도 그런 셈이군?"
크리스가 대답한다. "소포클레스가 말했어요.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일지도 모른다라고."
노라가 대가를 치룰 것이라고 말하자 크리스가 말한다. "체포되어 처벌 받는 것이 마땅하겠지. 최소한 정의라는 작은 징조는 있어야겠지. 의미 있는 가능성을 위한 작은 희망이라도 있어야겠지."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통념은 세상의 이치가 아닌 단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행동 지침일 뿐이다. 사람들이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그리고 요행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닐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인간을 단지 종족의 유지를 사명으로 하는 범인(凡人)과, 나폴레옹과 같이 사회의 도덕률을 뛰어넘어 행동하는 강자로 분류하고, 자신은 강자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범인인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한다.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인 창녀 소냐의 권유에 따라 자수를 한다. 노라와 함께 하면 미래가 없다고 노라를 살해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인생에서 운이 중요하다는 자신의 철학을 증명해 보인 크리스의 얼굴을 보여주는 '매치 포인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살해하기 전의 라스콜니코프를 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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