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호텔'은 다섯번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이다. '그랜드 호텔'은 작품상 부문에만 후보에 올라 작품상만 수상한 유일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는 재미있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다. '그랜드 호텔'은 아카데미 시상식 초기에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들 중에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다운 영화의 작품성을 갖춘 몇 안되는 영화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930)', '그랜드 호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It Happened One Night, 1934)' - 중 하나이다. 특히 영화의 이야기나 그 전개가 '그랜드 호텔' 이전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형식의 영화이다.

'그랜드 호텔'은 저마다 사연이 있는 서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독일 베를린의 최고급 호텔인 그랜드 호텔에서 이틀을 묵는 동안,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사양의 길로 접어든 무용수 그루신스카야(Greta Garbo)는 이로 인한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자살까지 시도하려 한다. 매력적인 신사이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작 본 가이건(John Barrymore)은 그루신스카야의 진주 목걸이를 훔치려 한다. 프라이징 사장(Wallace Beery)의 속기사로 고용되어 그랜드 호텔에 온 플램(Joan Crawford)은 돈을 벌어 화려하게 사는 꿈을 가지고 있다. 거만한 프라이징 사장은 회사의 합병 문제로 그랜드 호텔에 묵고 있다. 프라이징 사장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크링글라인(Lionel Barrymore)은 병에 걸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즐기기 위해 평생 모은 재산을 가지고 그랜드 호텔에 온 마음씨 좋은 노인이다. '그랜드 호텔'은 이들 5명을 중심으로,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영화이다.

"I want to be alone!"

(혼자 있고 싶어요!)

 

'그랜드 호텔'은 마치 그랜드 호텔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돈, 사랑, 사회적 지위, 인간 관계, 죽음 등으로 아옹다옹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하다. 돈이 필요한 본 가이건 남작은 어쩔 수 없이 그루신스카야의 진주 목걸이를 훔치고, 돈의 유혹에 넘어간 플램은 프라이징 사장의 정부가 된다. 돈은 있지만 외로운 그루신스카야는 자신의 진주 목걸이를 훔친 본 가이건 남작과 사랑에 빠지고, 크링글라인은 평생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지만, 이제는 그 돈을 쓸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프라이징 사장은 회사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합병 회담 자리에서 거짓말까지 한다. 또한 거만한 프라이징 사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으로 자신의 속기사인 플램을 유혹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위로 자신의 회사 사원인 크링글라인을 업신여긴다.

미국 영화사에서도 유명한 대사인 그루신스카야의 "I want to be alone!"은 이러한 힘든 세상살이에서 벗어나고픈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대사이다. 그루신스카야의 대사와 함께, 영화의 시작과 마지막에 나오는 의사 오텐슐락(Lewis Stone)의 대사, "Grand Hotel. Always the same. People come, people go. Nothing ever happens. (그랜드 호텔. 언제나 똑같지. 사람들은 오고 가고.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듯하지.)" 또한 유명한데, 세상살이의 덧없음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는 대사이다.

'그랜드 호텔'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동시에 전개되는, 이전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인데, 각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주인공 역에 그레타 가르보, 존 배리모어, 조안 크로포드, 월레스 비어리, 라이오넬 배리모어 등, '그랜드 호텔' 제작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들을 캐스팅하여, 어느 한쪽의 이야기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지금은 초호화 캐스팅을 이용한 이러한 형식의 영화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그랜드 호텔' 제작 당시에는 아주 획기적인 영화 형식이었다.

'그랜드 호텔'에서 서로를 의식한 탓인지, 그레타 가르보와 조안 크로포드가 함께 나오는 장면은 단 하나도 없다. 존 배리모어와 라이오넬 배리모어는 친형제이며, 특히 존 배리모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 (E.T.: The Extra-Terrestrial, 1982)'에서 귀여운 거티(Drew Barrymore)를 연기한 드류 배리모어의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랜드 호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는데,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듯, 그랜드 호텔의 둥근 홀을 위에서 찍은 장면과, 방에 홀로 남겨진 그루신스카야가 토슈즈를 벗는 장면이다. 그루신스카야가 벗은 토슈즈를 자신의 얼굴에 갖다대는 장면에서 그루신스카야가 느끼는 외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 오래된 흑백 화면에다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서 보기 힘들지만, 이 장면에서 그레타 가르보의 한쪽 가슴이 노출된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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