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은 과연 문명의 이기인가, 바보 상자인가? 텔레비전 방송국 프로듀서에게 방송국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는 사원으로서 시청률에 대한 책임이 먼저인가,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제작자로서 프로그램과 시청자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책임이 먼저인가?

시드니 루멧 감독은 이지적이고 통찰력이 정말 뛰어난 영화감독이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바뀌어지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특정 사회적 문제를 간파하고, 이를 짜임새 있는 영화의 스토리 라인과 화면의 전개를 통하여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판하는 사회 영화를 연출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이다. '네트워크'에서는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진 한 텔레비전 방송국의 부도덕함을 통해, 자본에 지배되어 철저하게 상업화된 텔레비전 방송계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보도를 하는 형식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하워드 빌(Peter Finch)에 대한 내레이터(Lee Richardson)의 설명으로 시작한다. UBS TV의 뉴스 앵커, 하워드 빌은 한때는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누렸으나, 점점 시청률이 떨어지자 결국 UBS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좌절한 하워드 빌은 방송을 통하여 다음 주 화요일 방송에서 자살을 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한다. 하워드 빌의 방송 사고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은 급등한다. 프로그램 기획자 다이아나(Faye Dunaway)는 시청률이 급등하자 하워드 빌을 해고해서는 안 된다고 UBS 사장, 프랭크 해켓(Robert Duvall)을 설득하고, 심지어는 하워드 빌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까지 기획한다. 하워드 빌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UBS 뉴스 부장, 맥스(William Holden)는 직업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병이 점점 심해져가는 하워드 빌을 방송에 계속 내보내려는 다이아나와 프랭크 해켓의 결정에 반대한다. 프랭크 해켓은 맥스를 해고한다. 한편, 맥스는 다이아나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빠져, 25년을 함께 한 아내, 루이스(Beatrice Straight)를 버리고 다이아나와 동거를 시작한다.

"I'm as mad as hell, and I'm not going to take this anymore!"

(너무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네트워크'에서 다이아나와 프랭크 해켓은 텔레비전을, 맥스와 하워드 빌은 텔레비전 시청자를 상징하고 있다. 사랑을 나누는 중에도 프로그램 기획과 시청률만을 생각하는 다이아나는 텔레비전만큼이나 감정이 없는 냉혈한 여자이다. 다이아나는 시청률을 위해서 정신병이 심해져가는 하워드 빌을 계속 방송에 내보내고, 테러 단체를 텔레비전 쇼에 출연시키는 부도덕함을 보여 준다. 프랭크 해켓 또한 그의 대사 "방송국은 매음굴과 마찬가지야, 팔 수 있을 때 많이 팔아야 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송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저질스런 프로그램도 방송하는 상업화된 텔레비전 방송계를 상징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에 반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이아나의 유혹에 빠지는 맥스는 텔레비전이 보여 주는 세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텔레비전에 빠져드는 시청자를 상징하고 있으며, 현실에서 점점 괴리되어 가는 하워드 빌은 텔레비전이 보여 주는 세상에 완전히 빠져, 아예 현실과 구분을 못하는 시청자를 상징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이들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하여 자본에 지배되어 상업화된 텔레비전 방송계와, 텔레비전이 보여 주는 세상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를 풍자하고 있다. 또한 UBS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 기업인 CCA의 회장, 아더 젠슨(Ned Beatty)이, CCA와 아랍인들과의 거래를 방송에서 폭로한 하워드 빌에게 하는 일장 연설은 텔레비전 방송계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이 되어 자본과 거대 기업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현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아더 젠슨을 자신이 믿고 있는 신으로 여길 만큼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하워드 빌은 아더 젠슨으로부터 들은 "기업 우주론"을 그날밤 자신의 쇼에서 연설하고, 아더 젠슨 신으로부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느낀 하워드 빌은 세상에 대한 특유의 독설 대신 냉소만 쏟아낸다. 자연히 하위드 빌 쇼의 시청률은 점점 떨어지고, 다이아나와 프랭크 해켓은 하워드 빌을 해고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더 젠슨이 하워드 빌의 해고를 반대한다. 결국 다이아나와 프랭크 해켓은 쇼로 가장하여 방송 중에 하워드 빌을 암살하기로 결정한다. 하워드 빌이 방송 중에 살해 당한 뉴스를 보도하는 텔레비전 화면을, 다른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광고 화면과 함께 보여 주는 '네트워크'의 마지막 장면은 아무리 자극적이고 저질스런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시청자들이 얼마나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풍자하고 있는 장면이다.

'네트워크'는 페이 더너웨이, 윌리엄 홀든, 피터 핀치, 로버트 듀발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 대결장과도 같다. '네트워크'는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는데, 그중 3개가 연기상이다. 하워드 빌 역의 피터 핀치가 남우주연상을, 다이아나 역의 페이 더너웨이가 여우주연상을, 그리고 맥스의 아내, 루이스 역의 비트리스 스트라이트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피터 핀치는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에서 조커(Heath Ledger)를 연기한 히스 레저 이전에, 죽은 뒤에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유일한 배우였다. 비트리스 스트라이트는 가장 짧은 출연으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영화에 출연하는 시간은 5분 40초이다. '네트워크'에서 무명 시절의 팀 로빈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하워드 빌을 총으로 쏴 죽이는 암살자가 바로 팀 로빈스이다.

'네트워크'의 각본을 쓴 패디 샤예프스키는 '마티 (Marty, 1955)'와 '종합병원 (The Hospital, 1971)'에 이어 '네트워크'로 세 번째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네트워크'는 무려 34년 전에 나온 영화이지만, 마치 최근에 나온 영화인 것처럼 영화의 이야기와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오늘날의 텔레비전 방송계를 풍자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이는 텔레비전 방송계의 상업화로 인한 문제를 미리 간파한 시드니 루멧 감독의 뛰어난 통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텔레비전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좀더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텔레비전에는 점점 더 자극적이고, 부도덕하기까지 한 프로그램들이 판을 치고 있고, 시청자들은 이를 너무나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해서 텔레비전을 없애거나, 텔레비전의 플러그를 뽑아버릴 수도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네트워크'에서 하워드 빌을 통해 나오는 "I'm as mad as hell, and I'm not going to take this anymore!"는 이러한 상황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대사이다.

Posted by unforgetta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