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은 그야말로 '타이타닉 (Titanic, 1997)'의 해였다. 전세계 10억 달러라는 흥행 성적과 함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 11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여, '벤허 (Ben-Hur, 1959)' 이래 아카데미상 최다 부문 수상의 기록을 세웠다. 이 해에 '타이타닉'의 그늘에 가려, 영화의 작품성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불운의 걸작이 있는데, 바로 'LA 컨피덴셜'이다. 'LA 컨피덴셜'은 작품상을 포함, 9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카데미 각색상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2개 부문만을 수상하고 나머지 7개 부문을 모두 '타이타닉'에게 빼앗긴다.
'LA 컨피덴셜'은 미국의 유명한 범죄 소설가, 제임스 엘로이의 LA 4부작 - 'The Black Dahlia (1987)', 'The Big Nowhere (1988)', 'L.A. Confidential (1990)', 'White Jazz (1992)' - 중 세번째 작품이 원작인 영화이다 - 'The Black Dahlia'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에 의해 영화화 - '블랙 달리아 (The Black Dahlia, 2006)' - 되었다.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LA 컨피덴셜'은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들 중에서 제임스 엘로이가 유일하게 칭찬한 영화이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각색이 얼마나 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만 놓고 보면, 방대한 양의 소설이 원작인 만큼 영화의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지만, 그 구성과 전개는 굉장히 치밀하고 완벽하다.
풍요롭고 화려해 보이는 천사의 도시 LA. 그러나 이러한 LA에도 그 이면에는 암흑가가 존재한다. 'LA 컨피덴셜'은 LA의 암흑가를 장악하고 있던 미키 코헨(Paul Guilfoyle)이 탈세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기사를 쓰고 있는 허쉬-허쉬 잡지의 시드 허진스(Danny DeVito)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영화의 주인공들인 버드 화이트 형사(Russell Crowe), 잭 빈센스 경사(Kevin Spacey), 에드 엑슬리 경사(Guy Pearce)의 캐릭터를 보여 주는 장면들이 차례로 나온다.
다혈질인 버드 화이트 형사는 소년 시절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죽는 광경을 지켜본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나 행위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TV 쇼 "영광의 배지"의 기술 고문을 맡고 있는 마약반 소속의 잭 빈센스 경사는 시드 허진스에게 기사거리를 주고 돈을 챙기는 조금은 타락한 형사이다. LA 경찰국의 전설적인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찰관이 된 에드 엑슬리 경사는 경찰 반장 더들리 스미스(James Cromwell)와의 대화에서도 나타나듯 현실적인 융통성이 없는 원칙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다.
'LA 컨피덴셜'은 이 세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영화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유혈의 크리스마스 사건을 통해서도 이들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버드 화이트의 파트너인 딕 스텐스랜드(Graham Beckel)가 두 경찰관을 습격한 혐의로 유치장에 들어온 멕시코인들을 폭행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으로, 파트너와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사건의 증언을 거부한 버드 화이트는 정직에 처해지고, 잭 빈센스는 이미 연금을 받은 동료들에 대해서만 증언하기로 하고 가벼운 징계를 받는다. 정의를 위해, 사건을 일으킨 딕 스텐스랜드와 버드 화이트에 대한 증언을 한 에드 엑슬리는 강력반 부서장으로 진급되고, 연금을 1년 앞둔 딕 스텐스랜드는 파면된다. 동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에드 엑슬리는 동료들의 따돌림을 받게 된다.
어느날 밤 올빼미 카페에서 6명이 살해되는 강도 사건이 발생한다. 6명의 희생자들 중에는 버드 화이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 수잔 리퍼츠(Amber Smith)라는 여자와 딕 스텐스랜드가 포함되어 있다. 에드 엑슬리는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의 흑인 건달들을 총격전 끝에 사살하고 훈장까지 받지만, 3명의 흑인 건달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고 복수를 하기 위해 3명의 흑인 건달들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는 이네즈 소토(Marisol Padilla Sanchez)의 말을 듣고 사건의 진범을 찾아 수사를 다시 시작한다. 올빼미 카페 사건을 수상히 여긴 버드 화이트 역시 수잔 리퍼츠를 중심으로 단독 수사에 들어가고, 이 과정에서 백만장자 포주, 피어스 팻쳇(David Strathairn)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고급 창녀, 린 브랙큰(Kim Basinger)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잭 빈센스도 에드 엑슬리로부터 매트 레이놀즈(Simon Baker)라는 젊은 무명 배우가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에드 엑슬리를 도와 올빼미 카페 사건 수사에 나선다. 이들 세 명은 미키 코헨 부하들의 잇달은 살해 사건, 매트 레이놀즈 살해 사건, 그리고 올빼미 카페 사건 모두가 연관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LA 컨피덴셜'은 세 주인공들이 각자 서로 다른 경로로 올빼미 카페 사건의 진실과 진범 "롤로 토마시" - 롤로 토마시는 에드 엑슬리가 죄를 저지르고도 붙잡히지 않고 법의 테두리 밖에서 활보하고 있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사라진 소매치기와 같은 범죄자들에게 붙인 이름인데, "롤로 토마시"는 에드 엑슬리가 올빼미 카페 사건의 롤로 토마시를 알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통해,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썩을대로 썩은 부패한 LA의 또 다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피어스 팻쳇은 할리우드 스타가 되는 꿈을 안고 LA에 온 여자들에게 할리우드 스타의 얼굴로 성형 수술을 시키고, 이들을 시의회 의원(Jim Metzler)이나 엘리스 로우 검사(Ron Rifkin) 같은 정치인이나 법조인 등 고위층 인사들에게 연결시켜 준다. 그리고 필요하면 시드 허진스에게 연락해 창녀와 뒹굴고 있는 고위층 인사들의 사진을 찍게 하고, 이를 이용하여 고위층 인사들을 협박한다. 'LA 컨피덴셜'은 피어스 팻쳇, 시의회 의원과 엘리스 로우 검사, 그리고 잡지의 판매 부수에만 신경 쓰는 시드 허진스를 통해 사회 각 분야에서의 부정부패, 즉 화려해 보이는 할리우드의 더러운 이면과, 타락한 정치와 검찰, 그리고 부도덕한 언론을 고발하고 있다.
결국 에드 엑슬리가 롤로 토마시를 사살하고, 모든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LA 경찰국의 치부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에 부담을 느낀 엘리스 로우 검사와 경찰서장(John Mahon)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이를 위해 심지어 롤로 토마시를 영웅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해 경찰관이 된 에드 엑슬리 또한 거대한 사회 조직의 흐름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신 또한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조건으로 이들과 타협을 하는 씁쓸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과연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일시적인 타협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롤로 토마시가 되기 위한 타협이었는지, 'LA 컨피덴셜'은 에드 엑슬리의 얼굴을 한참 동안 보여 주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여당 의원들의 비리 사건이나, 고위층 인사가 연관된 어느 무명 여배우의 자살 사건이 터져도 수사가 흐지부지되거나, 여전히 의혹이 가시지 않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서둘러 수사가 마무리되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LA 컨피덴셜'의 이야기가 단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LA 컨피덴셜'에서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알리는 마지막 자막이 올라간다고 해서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위선 가득한 엘리스 로우 검사의 모습과, TV 쇼 "영광의 배지"에서 죽은 잭 빈센스 경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 각각 자막이 올라가는 도중과 마지막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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