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랜드'는 2008년 대침체 이후 계절적인 일자리를 찾아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떠돌이 계절 노동자의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노인 현상을 다룬,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를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과 편집까지 담당한 영화이다.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인 펀(Frances McDormand)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노매드랜드'의 제작자이기도 한데,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노매드랜드'의 영화화 판권을 획득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낙마 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카우보이의 성장을 그린, 클로이 자오 감독의 '로데오 카우보이 (The Rider, 2017)'를 보고 직접 클로이 자오 감독을 '노매드랜드'의 감독으로 캐스팅하였다.

노매드(nomad)는 유목민, 방랑자를 의미하는데, '노매드랜드'에서는 떠돌이 계절 노동자를 가리킨다. '노매드랜드'에 등장하는 네바다주의 엠파이어(Empire)는 실제로 석고 보드 생산 기업인 US Gypsum의 기업 도시였으나, 석고 보드의 수요 감소로 인해 2011년 1월 31일에 US Gypsum은 88년 만에 공장을 폐쇄하였고, 엠파이어의 우편 번호 89405의 사용도 중단되었다. 자신이 살던 기업 도시가 경제적으로 붕괴한 후 삶의 터전을 잃고, 남편 보까지 잃은 펀은 Vangaurd라고 이름 붙인 작은 밴을 타고 엠파이어를 떠나, 세계 최대 규모의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Amazon)의 물류센터에서 일을 한다. 펀은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계절에 따라, 아마존 물류센터, 국립공원 내 캠프 인솔자, 관광명소의 식당,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일을 한다.

노매드들은, 물론 경제적 여건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단순히 돈과 집이 없어서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아니다. '노매드랜드'에서 펀의 대사를 통해서도 언급되지만, 이들은 "노숙자" 또는 "걸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homeless"가 아닌, 유형의 집이 없는 "houseless"이다. '노매드랜드'에서 린다(Linda May), 스완키(Swankie), 밥(Bob Wells) 등, 실제 노매드들이 자신들이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각자의 사연을 들려준다. 펀도 삶의 터전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노매드 생활을 하게 되지만, 점점 진정한 노매드가 되어 간다. 친동생인 돌리(Melissa Smith)도 펀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고, 노매드 생활을 하다 갓 태어난 손자의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집에 정착한 데이브(David Strathairn)도 펀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지만, 펀은 이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노매드로서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다. 데이브의 집을 방문한 펀은 데이브가 제공하는 편안한 잠자리를 오히려 불편해 하고, 결국 자신의 작은 밴 Vangaurd에서 잠을 잔다.

'노매드랜드'에서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데이브 역의 데이비드 스트라탄을 제외하고는, 노매드로 등장하는 출연자들 모두가 실제 노매드들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출연진을 소개하는 자막을 보면, 영화 속 노매드 캐릭터 이름과,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출연자의 이름이 같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노매드랜드'의 원작이 논픽션이니만큼, 길 위헤서의 삶을 선택한 노매드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사실감 넘치게 담아내기 위해 실제 노매드들을 캐스팅하였다.

또한 클로이 자오 감독은 관객들이 진정한 노매드가 되어 가는 펀을 통해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 노매드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펀의 캐릭터를 창조하였고, 자신을 '노매드랜드'의 감독으로 캐스팅한 제작자 프란시스 맥도맨드를 펀 역으로 캐스팅하였다.

사실 '노매드랜드'는 대단히 철학적인 영화이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중국인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노매드랜드'는 불교 철학이 담겨 있는 영화이다. '노매드랜드'에서 펀이 진정한 노매드가 되어 가는 과정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과도 같다. '노매드랜드'의 초반부에 펀이 죽은 남편의 옷을 만지며 눈물을 참는 장면이 나오는데, 펀은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한다. 펀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가 주신 "가을 잎" 접시들을 린다에게 자랑하고, 자신이 아끼는 "가을 잎" 접시들을 데이브가 깨뜨리자, 데이브에게 화를 낸다. 펀은 죽은 남편과 추억이 담긴 물건에 집착한다.

펀은 노매드 생활을 통해 각자 사연을 가지고 길 위에서의 삶을 선택한 노매드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스완키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여정을 통해 대자연을 느끼면서 깨달음을 얻어 간다. 이른 아침에 아무도 모르게 데이브의 집을 떠나 다시 노매드 생활로 돌아간 펀이 폭풍이 몰아치는 해안 절벽을 걷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폭풍과 해안에 부서지는 파도는 자신을 얽매고 있는 집착을 버리기 직전의 펀의 번뇌를 표현하고 있다. 펀이 노매드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는, 노매드들의 아버지 격인 밥에게 말한다. "... 만약 내가 남지 않고 떠났다면, 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되었겠죠. 난 짐을 싸서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엠파이어를 사랑했어요. ... 그래서 남았어요. ... 난 너무 많은 세월을 기억만 하면서 보낸 것 같아요. ..."

그러자 밥이 펀에게 말한다. "... 5년 전 아들이 자살을 했어요. ... 문제는 아들이 없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였죠. ... 하지만 사람들을 돕고 봉사하는 것이 아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것이 내가 하루를 견디는 이유를 주죠. ... 여기 불가피하게 슬픔과 상실감에 빠진 우리 또래의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극복하지 못하죠.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이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마지막 작별 인사가 없다는 거에요. 난 여기서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났지만, 마지막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아요. "길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죠. 그리고 그렇게 돼요. 그게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때로는 수년이 걸리든, 그들을 다시 만나요. 난 길을 내려다보며 아들을 다시 만날 거라고 마음속으로 확신하죠. 당신도 보를 다시 만날 거고, 그때 당신의 삶을 함께 기억할 수 있을 거에요."

결국 깨달음을 얻은 펀의 얼굴에 편안함이 엿보인다. 펀은 결국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펀은 다시 엠파이어로 돌아가 창고에 보관한 옛 물건들을 처리한다.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노매드랜드'와 같은 철학적이고 깊이가 있는 영화를 만든 클로이 자오 감독이 개봉을 앞둔 마블 스튜디오의 '이터널스 (The Eternals, 2021)'를 연출하였다고 하니 의외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클로이 자오 감독이 연출한 '이터널스'는 기대가 된다.

나에게도 노매드 기질이 있어, 일년에 한두 번씩은 미국의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국립공원 내 캠핑장에 렌터카를 세워 두고, 렌터카에서 먹고 자면서 여행을 했었다. 유타주와 콜로라도주, 그리고 애리조나주를 거치는 여행을 할 때, 렌터카에서 먹고 자는 젊은 동양인이 신기했든지, 한 노매드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 커피를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노매드 노인에게서 세속을 초월한 듯한 인상을 받았었다.

'노매드랜드'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편집상, 촬영상의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의 3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였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아시아계 여성 감독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펀 역의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파고 (Fargo, 1996)',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에 이어 세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Dedicated to the ones who had to depart.

See you down the road.

(떠나야만 했던 이들에게 바칩니다.

길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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