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는 조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의 영화이다. 하루에 한번씩은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면서 살고 있고, 특히 분노를 표출할 수 밖에 없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쓰리 빌보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강간을 당하고 처참하게 살해당한 딸의 엄마인 '쓰리 빌보드'의 주인공, 밀드레드(Frances McDormand)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리 빌보드'는 우리들로 하여금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쓰리 빌보드'는 인간의 희로애락 중 가장 참기 힘들다는 분노와, 분노에 찬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분노로 화를 자초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딸 안젤라(Kathryn Newton)가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 지 7개월이 지나도 범인이 잡히기는 커녕, 사건이 세상의 관심에서 사라지자, 밀드레드는 마을 외곽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도로 가에 버려진 세 개의 대형 광고판에 도발적인 세 줄의 메시지를 싣는다. "죽으면서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
밀드레드의 쓰리 빌보드는 마을의 존경받는 경찰서장 윌러비(Woody Harrelson)를 곤경에 빠뜨린다. 마을 사람들은 밀드레드의 쓰리 빌보드에 반감을 드러내고, 윌러비를 존경하는 경찰관 딕슨(Sam Rockwell)은 쓰리 빌보드의 메시지를 내리라고 밀드레드와, 밀드레드에게 쓰리 빌보드를 대여해 준 광고사의 젊은 사장 레드 웰비(Caleb Landry Jones)를 압박한다.
밀드레드의 쓰리 빌보드는 밀드레드의 분노를 상징한다. 안젤라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는 것이 윌러비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윌러비가 췌장암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쓰리 빌보드로 인해 아들 로비(Lucas Hedges)가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밀드레드는 쓰리 빌보드의 메시지를 내릴 생각이 전혀 없다. 윌러비가 자살을 했는데도 밀드레드는 쓰리 빌보드의 메시지를 내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방화로 쓰리 빌보드가 불에 타버리자, 분노에 찬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불을 지른다. 이로 인해 마침 경찰서 안에서, 자살한 윌러비가 남긴 편지를 읽고 있던 딕슨이 심한 화상을 입게 된다.
밀드레드는 자신의 분노와 쓰리 빌보드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만 안겨 주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빌보드 아래 꽃을 심던 밀드레드가 갑자기 나타난 새끼 사슴에게 하는 대사는 딸은 살해당하고 범인은 잡히지 않는 정의롭지 못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함께, 쓰리 빌보드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에 괴로워하는 밀드레드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대사이다. "신도 없고 세상은 텅 비어 있으니, 우리가 서로에게 무슨 짓을 하든 그게 대수로운 일이겠어? 아니길 바라지만."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 못지않게 분노를 가슴속 깊이 품고 사는 인물이 바로 경찰관 딕슨이다. 다혈질적이고 인종주의자이기도 한 딕슨은 윌러비의 자살에 분노하여 레드 웰비의 사무실을 찾아가 레드 웰비를 구타하고 2층 창밖으로 던져 버린다. 윌러비는 자살하기 전, 딕슨에게 진심 어린 충고의 편지를 남긴다. 윌러비의 편지는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제이슨, 자넨 좋은 경찰이 될 자질이 있다고 봐. 왜 그런지 알아? 자네도 본심은 좋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자넨 화가 너무 많아.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 돌보느라 힘들어서 그런 거 알아. 하지만 그렇게 증오심이 크면, 내가 알기론 자넨 형사가 되고 싶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형사가 될 수 없어. 형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 지 알아? 내가 이런 말 하면 얼굴을 찡그리겠지만, 형사가 되려면 사랑이 필요해. 사랑에서 차분함이 나오고 차분함에서 생각이 나오지. 뭔가를 찾아내려면 생각이 필요해, 제이슨. 그것만 있으면 돼. 총도 필요 없고, 당연히 증오심도 필요 없어. 증오심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하지만 차분함은 해결할 수 있지. 그리고 생각을 하면 해결할 수 있어. 한번 해 봐. 변화를 위해서 한번 해 보라고. ..."
하지만 인간인 윌러비도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윌러비의 피를 뽑던 의사(Gregory Nassif St. John)가 윌러비에게 이번 밀드레드 헤이즈 일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당신 편이라고 말하자, 가뜩이나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윌러비가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화를 내며 주사기를 뽑아 벽에 던져 버린다.
'쓰리 빌보드'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분노에 찬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쓰리 빌보드'의 이야기에는 행위의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의 사상이 은연중에 내포되어 있다. 밀드레드는 쓰리 빌보드로 인해 자신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치과의사 제프리(Jerry Winsett)의 엄지손톱에 작은 구멍을 내고, 제프리의 얼굴에 물을 뱉는다. 이 일로 경찰서에 붙잡혀 온 밀드레드는 췌장암에 걸린 윌러비가 순간적으로 토해 낸 피를 얼굴에 뒤집어쓴다. 레드 웰비를 구타한 딕슨은 술집에서 안젤라 사건의 범인이라고 추정되는 짧은 머리의 남자(Brendan Sexton III)에게 구타를 당한다.
'쓰리 빌보드'에서 가장 감동적이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장면이 있다. 딕슨에게 구타를 당하고 입원한 레드 웰비가 심한 화상을 입고 입원한 딕슨에게 오렌지 쥬스를 갖다주는 장면이다. 레드 웰비의 용기 있는 행동으로 인해 분노의 악순환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이로 인해 딕슨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변하기 시작한다.
불길 속에서 안젤라의 사건 파일을 끝까지 지켜낸 딕슨을 본 시점부터였는지, 아니면 전남편 찰리(John Hawkes)의 19살 애인인 페넬로페(Samara Weaving)의 말 -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 - 을 듣고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밀드레드도 변하기 시작한다. 밀드레드는 딕슨에게 자신이 경찰서에 불을 질렀다고 실토하고, 딕슨은 알고 있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밀드레드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짓는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비록 안젤라 사건의 범인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강간하고 살해했다고 추측되는 짧은 머리의 남자를 죽이러 아이다호로 향한다. 하지만 밀드레드와 딕슨은 이제는 예전의 분노에 찬 그들이 아니다. 밀드레드와 딕슨은 짧은 머리의 남자를 죽이러 가는 것이 정당한 지를 서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밀드레드가 딕슨에게 말한다. "가면서 결정하자고."
밀드레드와 딕슨이 분노를 표출하기에 앞서 드디어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리 빌보드'는 밀드레드와 딕슨이 결국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 건지에 대해서는 여운을 남긴 채 끝난다. '쓰리 빌보드'는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이다.
'쓰리 빌보드'는 작품상을 포함하여 각본상, 편집상 등 6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의 2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밀드레드를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파고 (Fargo, 1996)'에 이어 두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딕슨을 연기한 샘 록웰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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