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로버트 알트먼이라는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초기 대표작, '야전병원 매쉬'와 '내쉬빌 (Nashville, 1975)'을 보면 확실히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만의 독특한 영화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은 언뜻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의 영화인가 싶다. 기본 줄거리 없이 서로 다른 여러 작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없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등장과 대사들을 무질서하게 겹쳐 놓는 방식으로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내기조차 힘들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직선적인 줄거리를 가진, 주연과 조연의 역할이 뚜렷한, 그리고 한 캐릭터만 대사를 하게 하는 재래의 영화 형식을 거부한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에서처럼 끝이 있는 직선적인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은 서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얽혀 있으며, 그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도 주연과 조연이 따로 없이 서로 충돌하고 맞닥뜨리면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독특한 영화 형식은 이러한 복잡한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은 영화의 이야기에 앞서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독특한 영화 형식 자체가 이미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들은 서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단지 무질서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서로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점차 어떤 경향을 드러내면서 하나의 주제를 형성한다.

'야전병원 매쉬'에서 "매쉬(MASH)"는 정확하게는 육군 이동 외과 병원을 의미하는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의 약자로, '야전병원 매쉬'는 한국 전쟁 당시의 한 매쉬 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야전병원 매쉬'는 제4077 매쉬 부대에 부임해 온 외과 군의관, "호크아이" 피어스 대위(Donald Sutherland)와 "듀크" 포리스트 대위(Tom Skerritt), 그리고 호크아이와 듀크의 요청으로 부대에 부임해 온 흉부외과 군의관 "트랩퍼" 존 매킨타이어 대위(Elliott Gould)를 중심으로 부대에서의 서로 다른 여러 코믹한 이야기들이 시트콤처럼 이어지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세 사람이 군율을 무시하고 상관을 모욕하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탈권위, 저항, 냉소, 비판의 반체제적 경향을 드러내는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야전병원 매쉬'는 부대에서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곳이 과연 군대인가 싶다. 군율도 계급도 없다. 둘 다 유부남인 호크아이와 듀크는 제4077 매쉬 부대로 부임해 오자 마자 여자 간호 장교들에게 추파를 던지기 바쁘다. 호크아이는 유부녀인 간호 장교 "디쉬" 슈나이더 중위(Jo Ann Pflug)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듀크도 나중에 간호 장교 "뜨거운 입술" 훌리한 소령(Sally Kellerman)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 호크아이와 트랩퍼에게 들통이 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프랭크 번즈 소령(Robert Duvall)과, 부대에 갓 부임해 온 훌리한 소령은 부대 기강이 해이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이들도 불타는 밤을 보내다 부대 전체에 들통이 나 망신을 당한다. 부대장 헨리 블레이크 중령(Roger Bowen) 또한 부대 기강에는 관심도 없고, 권위도 없다. 부대의 일에는 관심조차 없고 모든 일은 "레이다" 오라일리 하사(Gary Burghoff)가 처리하도록 한다.

육군에서 가장 큰 물건을 가진 치과 군의관 "페인러스" 왈도스키 대위(John Schuck)가 물건이 서지 않는다고 자살을 하려 하자 군의관들이 그를 위해 최후의 만찬을 열어 주는 장면은 '야전병원 매쉬'에서 가장 코믹한 장면이다. '야전병원 매쉬'는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이 장면을 통해 미국 사회 체제의 근간인 기독교 신앙에마저 냉소를 보낸다.

호크아이와 듀크는 제대 명령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닥 기뻐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기에는 이곳 제4077 매쉬 부대에서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야전병원 매쉬'에서는 피가 흥건한 수술실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수술실에 있는 군의관과 간호 장교들 모두 도무지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무관심과 반체제적인 경향의 영화의 이야기로 인해 '야전병원 매쉬'는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가 나올 당시에 한창이던 베트남전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영화로 받아들여졌다.

'야전병원 매쉬'를 보면 영화의 전개상 조금은 어색하거나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다. 풋볼 경기 후에 카드 놀이를 하는 장면에서 흰 천으로 덮힌 시체 하나가 짚차에 실려 나가자 호크아이와 듀크가 이를 쳐다본다. 사실 이 시체는 호준(Kim Atwood)의 시체이다. 원래는 한국군에 입대를 하게 된 호준이 큰 부상을 당하고 제4077 매쉬 부대로 이송되어 온다. 영화의 중반부에 부상을 당한 전쟁 포로를 위해 레이다가 자고 있는 블레이크의 피를 몰래 뽑는,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부상을 당한 전쟁 포로는 자세히 보면 바로 호준이다. 레이다는 호준을 위해 블레이크의 피를 뽑은 것이다. 하지만 호준은 결국 죽고 만다. 아마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야전병원 매쉬'가 철저하게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호준의 이야기를 영화에서 뺀 듯하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부상을 당한 호준이 나오는 장면을 편집만 하고, 대신 호준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새로운 대사들을 더빙했다.

'야전병원 매쉬'는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편집상의 5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야전병원 매쉬'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에서 56위를, 2007년에 새로이 선정한 10주년 기념판에서는 54위를 차지하였다. '야전병원 매쉬'의 흥행 성공으로 같은 제목의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꽤 오랫동안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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