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 (Harvey, 1950)

영화 2022. 11. 9. 06:33

어머니에게서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엘우드 P. 다우드(James Stewart)는 자신에게 얹혀사는 누나 베타 루이즈 시먼스(Josephine Hull)와 조카딸 머틀 메이 시먼스(Victoria Horne)와 함께 살고 있다. 엘우드는 하비라는 이름의, 보이지는 않으나 키가 6피트 3.5인치(191.77cm)인 크고 하얀 토끼를 마치 보이는 친구처럼 대하며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 베타는 이런 엘우드를 요양원에 가둬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 엘우드를 첨리 요양원에 데리고 간다. 하지만 엘우드에 대한 베타의 설명을 들은 샌더슨 박사(Charles Drake)는 오히려 베타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하여 베타를 병실에 가두고 엘우드를 놓아준다. 샌더슨 박사가 실수한 사실을 알게 된 첨리 요양원의 원장 첨리 박사(Cecil Kellaway)는 샌더슨 박사를 해고하고 자신이 직접 엘우드를 찾으러 나간다. 엘우드를 찾으러 나간 첨리 박사가 한참이 지나도록 요양원에 돌아오지 않자 샌더슨 박사와 간호사 켈리 양(Peggy Dow), 그리고 간호조무사 윌슨(Jesse White)은 첨리 박사를 찾으러 엘우드가 하비와 함께 자주 가는 술집으로 향한다.

'하비'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메리 체이스의 동명의 희곡이 원작인 영화로, '하비'의 각본도 오스카 브로드니와 함께, 원작자인 메리 체이스가 썼으며, 헨리 코스터 감독이 연출한 판타지 코미디 영화이다. '하비'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0개의 영화 장르에서 각각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 (AFI's 10 Top 10)"의 판타지 영화 장르 부문에서 7위에 랭크되어 있다.

판타지 영화는 가상 세계에서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로, 세트 촬영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하여 현란한 시각 이미지를 제시하는데 초점이 주어지며 특수 효과가 많이 사용된다. 이것이 판타지 영화에 대한 정의라면 '하비'를 판타지 영화로 구분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비'는 세트 촬영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현란한 시각 이미지를 제시하지도 않고 특수 효과 장면도 없으며, 가상 세계에서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하다. 게다가 '하비'를 판타지 영화로 미리 구분해서 보면 영화의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에 출연진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하비를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장난스레 소개하기도 하지만, '하비'에 하비라는 이름의 푸카가 등장한다. 첨리 요양원의 화단에서 갑자기 사라진 하비를 찾고 있던 엘우드는 남편과 함께 칵테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남편을 데리러 온 첨리 부인(Nana Bryant)에게 자신이 찾고 있는 가장 친한 친구인 하비는 푸카라고 말한다. 푸카는 아일랜드 전설의 요정으로, '하비'에서도 윌슨의 대사를 통해 푸카를 설명한다. 윌슨은 칵테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급히 요양원을 떠난 첨리 부인이 엘우드가 말한 푸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펼쳐 놓은 사전을 보며 읽는다. "P O O K A, 푸카, 옛날 켈트 신화에 나오는 동물 형상을 한 요정, 언제나 매우 크다. 푸카는 여기저기에, 때때로 이것저것으로 나타나며, 친절하지만 장난치기 좋아하고, 술꾼과 별난 사람들을 좋아하고, ..."

'하비'에서 엘우드와 하비의 초상화를 통해 하비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과, 하비가 귀신에 홀린 듯한 첨리 박사를 따라 요양원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문이 열렸다 닫히는 장면, 그리고 하비가 앉아 있는 것처럼 그네가 흔들리는 장면을 볼 수 있긴 하지만, 특수 효과를 사용하여 하비를 직접 보여 주는 장면은 없다. 그러면, '하비'에서 하비는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생명체인가, 아니면 엘우드가 헛것을 보는 것인가? - 엘우드가 헛것을 보는 것이라면 '하비'는 더이상 판타지 영화가 아니다!

베타를 병실에 가두고 엘우드를 놓아준 샌더슨 박사는 엘우드에 대해 꽤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말하고, 첨리 부인도 엘우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반면에 엘우드는 항상 오후를 술집에서 보내는 술꾼이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신의 명함을 주고, 술집이나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하는 별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엘우드는 과연 정상인인가, 아니면 정신병자인가? 첨리 박사가 엘우드에게 묻는다. "다우드 씨,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비'는 엘우드와 하비로 인한 소동으로 관객들에게 웃음만을 주는 단순한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하비'는 원작이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화인 만큼 '하비'의 이야기는 심오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하비'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베타가 첨리 박사에게 하는 대사에 내포되어 있다. "... 지난 겨울에 미술 강좌를 들었어요. 훌륭한 유화와, 사진과 같은 기계적인 것의 차이점을 배웠어요. 사진은 오직 현실만을 보여 주죠. 유화는 현실뿐만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꿈도 보여 줘요. 바로 그 꿈이 우리를 이끌어 주죠. 꿈은 우리를 동물과 구별 짓죠. 난 먹고, 자고, 옷 벗는 것이 전부라면 살고 싶지 않을 거에요. ..."

'하비'는 현실에서의 인간의 꿈과 상상의 의미와 의의를 다룬 영화이다. 인간은 꿈과 상상 없이 현실만을 직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비'에서 하비는 인간의 꿈과 상상을 상징한다. 엘우드는 친구인 하비가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엘우드는 베타와 머틀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별난 사람으로 취급해도 이들을 언제나 상냥하게 대한다. 첨리 박사를 찾으러 엘우드가 있는 술집에 나타난 샌더슨 박사가 엘우드에게 조만간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라고 말하자, 엘우드가 말한다. "의사 선생님, 전 35년 동안 현실과 싸웠고, 제가 결국은 현실을 누르고 이겼다고 말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실수를 한 샌더슨 박사를 해고할 정도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현실적인 첨리 박사는 엘우드를 찾으러 갔다가 귀신에 홀린 듯한 모습으로 요양원에 돌아온다. 엘우드가 하비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첨리 박사에게 하비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시간이 멈추어 있는 동안에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어느 누구와 함께 당신이 가고 싶은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고, 그곳에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다고 말하자, 첨리 박사는 꿈에 그리던 애크런으로 가는 상상을 하며 행복해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택시 기사(Wallace Ford)의 말 한마디로 상황이 급반전되는 '하비'의 결말은 허술하다. 엘우드가 환각 증상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 샌더슨 박사는 엘우드가 더이상 하비를 보지 못하도록 충격을 주어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혈청 주사 처방을 베타와 엘우드에게 권유한다. 엘우드가 택시 기사에게 택시비를 지불하고 혈청 주사를 맞기 위해 샌더슨 박사의 사무실에 들어가자, 택시 기사가 베타에게 말한다. "... 전 이 길을 15년 동안 운전했어요. 그 주사를 맞으려는 사람들을 여기로 데려오고 주사를 맞은 후에 그들을 집으로 데려갔죠. 주사를 맞으면 사람들이 달라져요. ... 여기로 오는 길에는 뒤에 앉아 차 타기를 즐기죠. 저랑 얘기도 해요. 때때로 우린 차를 세우고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날아가는 새들도 쳐다보죠. 때때로 우린 차를 세우고 새들이 없는데도 새들을 바라보고 비가 오는데도 저녁 노을을 쳐다보죠. 아주 근사한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늘 팁도 많이 받죠. 그러나 주사를 맞은 후에는? 오오! ... 불평만 하고 저에게 소리만 질러요. ... 재미도 없고 팁도 없죠. ... 그도 주사를 맞은 후에는 완벽하게 평범한 인간이 될 것이고, 당신은 그들이 얼마나 고약한 지 알게 될 거에요. ..."

택시 기사의 말을 들은 베타는 엘우드에게 혈청 주사를 놓는 것을 중단시킨다. 결국 인간에게 꿈과 상상이 없는 현실은 위험하다. 물론, 꿈과 상상이 너무 지나치면 망상이 되고, '하비'에서 엘우드처럼 정신병자로 취급당할 수도 있다.

베타 루이즈 시먼스를 연기한 조세핀 헐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엘우드 P. 다우드를 연기한 제임스 스튜어트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하비'는 남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의 2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만 수상했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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