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에서 마약 사업 혐의로 체포한 그랜디 일가의 보스, 빅의 재판을 앞두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도시, 로스 로블레스에서 필라델피아 출신의 아름다운 미국인 아내, 수잔(Janet Leigh)과 신혼여행 중인 멕시코 법무부 소속의 마약 특별 수사관, 라몬 미구엘 "마이크" 바르가스(Charlton Heston)가 아내에게 초콜릿 소다를 사 주기 위해 아내와 함께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순간, 같은 시간에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컨버터블이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기 직전에 누군가가 컨버터블의 트렁크에 심어 놓은 시한폭탄으로 인해 폭발하면서, 컨버터블에 타고 있던 미국의 돈 많은 건설업자, 루디 리네카와, 금발의 나이트클럽 댄서, 지타(Joi Lansing)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이크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아내를 호텔로 돌려보내고, 사건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이곳 지역 경찰의 유명 인사인 행크 퀸란(Orson Welles) 경감과 함께 사건을 조사한다.

한편, 감옥에 있는 형, 빅을 대신하여 그랜디 일가의 사업을 관리하게 된 "엉클 조" 그랜디(Akim Tamiroff)는 호텔로 돌아가는 수잔을 꾀어 자신의 허름한 호텔로 끌고 와, 마이크가 빅의 재판에서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수잔을 위협한다.

'악의 손길'은 휘트 매스터슨의 소설, '악의 휘장 (Badge of Evil)'을 바탕으로 오슨 웰스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필름 누아르(film noir)이다. 흑백 화면을 바탕으로 어둡고 잔인하며 폭력적인 범죄와 타락의 도시 세계를 그린 필름 누아르는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는데, 1958년에 나온 '악의 손길'은 필름 누아르의 정점이자, 마지막 필름 누아르로 평가받고 있다. '악의 손길'은 지금은 필름 누아르의 기념비적인 영화로 평가받고 있지만, 개봉 당시에는 - 1958년 브뤼셀 세계 박람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미국에서는 -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악의 손길'의 제작사인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의 악의 편집 때문이었다.

1957년에 오슨 웰스 감독은 '악의 손길'의 촬영을 마치고 첫 편집을 하였다. 하지만 오슨 웰스 감독의 편집본을 보고 개선 필요성을 느낀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은 오슨 웰스 감독에게서 '악의 손길'에 대한 편집 권한을 빼앗고, 버질 보겔과, 버질 보겔의 후임자인 아론 스텔에게 '악의 손길'의 편집을 맡기고 편집에 일일이 간섭하였다. 심지어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은 오슨 웰스 감독의 동의 없이 추가 촬영을 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버전을 본 오슨 웰스 감독은 즉각 유니버설 인터내셔널에 재편집을 요청하는 58 페이지 메모를 남겼다. 그리고 1998년에서야 비로소 오슨 웰스 감독이 남긴 58 페이지 메모를 토대로 편집하여 복원된 '악의 손길'이 제작되었다. 이 오슨 웰스 감독 버전은 릭 슈미들린이 제작하고, 월터 머치가 편집하였다.

복원된 오슨 웰스 감독 버전과, 이전 유니버설 인터내셔널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오프닝 숏이다. 롱 테이크(long take)로 촬영한 '악의 손길'의 오프닝 숏은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프닝 숏 중 하나이다. 오슨 웰스 감독 버전은 유니버설 인터내셔널 버전의 오프닝 숏에 등장하는 영화 크레딧을 삭제하여 관객들이 오프닝 숏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하였고, '악의 손길'의 음악을 담당한 헨리 맨시니의 메인타이틀 음악을 자동차의 라디오와 나이트클럽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악으로 바꾸어 관객들이 오프닝 숏의 공간적 배경인 환락가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또 다른 큰 차이점은 마이크와 퀸란이 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 장면과 수잔이 그랜디 패거리들에게 위협을 받는 이야기 장면 사이의 편집이다. 유니버설 인터내셔널 버전은 수잔이 그랜디 패거리들에게 위협을 받는 이야기 장면 모두를 마이크와 퀸란이 사건을 조사하는 이야기 장면 뒤에 편집하였는데, 오슨 웰스 감독 버전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는 이들 이야기 장면들을 교차 편집하여 관객들에게 세상의 이야기는 선형적이 아니라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오슨 웰스 감독은 즐겨 활용했던 딥 포커스(deep focus)와 롱 테이크, 극적인 카메라 앵글과 표현주의적인 조명, 비선형적 내러티브 양식 및 혁신적인 장면 전환 기법 등을 '악의 손길'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유명한 '악의 손길'의 오프닝 숏은 롱 테이크와 크레인을 활용하여 촬영하였다. 3분 20초 동안 이어지는 오프닝 숏은 한 남자가 그랜디의 란초 그란데라는 나이트클럽의 뒷골목에 주차된 컨버터블의 트렁크에 시한폭탄을 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크레인 업을 통해 카메라는 건물 위를 이동하면서 루디 리네카와 지타가 탄 컨버터블이 건물 뒤 골목에서 도로로 진입하는 것을 보여 주고, 이어서 컨버터블이 도로를 내려와 교통순경의 정지 신호에 따라 건널목에서 잠시 정지하고, 이때 건널목을 건너는 바르가스 부부를 보여 준다. 계속해서 카메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국경 검문소에 나란히 도착하는 컨버터블과 바르가스 부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컨버터블이 폭발하면서 기나긴 오프닝 숏은 끝난다. '악의 손길'의 오프닝 숏은 국경 검문소를 향하는 바르가스 부부와, 시한폭탄이 장치된 컨버터블을 계속해서 보여 주면서 관객들에게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인해 영화의 주인공들인 바르가스 부부도 다칠 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주고 있다.

'악의 손길'에서 오프닝 숏 외에도 사건의 용의자인 마놀로 산체스(Vitor Millan)의 아파트에서 산체스를 심문하는 숏도 롱 테이크로 촬영한 유명한 숏이다. 루디 리네카의 딸인 마르샤 리네카(Joanna Moore)와 산체스, 그리고 마르샤의 변호사인 하워드 프란츠가 아파트 안에서 창문을 통해 아파트 문으로 다가오는 퀸란과 마이크, 그리고 지방 검찰청의 수석 수사관 알 스왈츠(Mort Mills)를 보는 장면에서부터, 마이크가 모텔에 머물고 있는 수잔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아파트를 나서는 장면으로 전환하기까지 5분 23초 동안 이어지고, 마이크가 수잔에게 전화를 걸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장면에서부터, 아파트에 다이너마이트를 증거물로 심어 놓고 산체스에게 누명을 씌운 퀸란과 언쟁을 벌이고 아파트를 나서는 장면으로 전환하기까지 5분 33초 동안 이어진다. 이 두 숏을 보는 관객들에게는 마치 아파트 안에서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슨 웰스 감독은 '악의 손길' 곳곳에서 딥 포커스를 활용하고 있다. 딥 포커스는 카메라 가까이에 있는 물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까지 모두 초점이 맞도록 촬영하는 기법을 말하는데, 한 장면에 여러 상황을 담을 수 있어 장면의 깊이가 더해지고, 편집을 줄일 수 있어 보다 사실적인 장면 연출을 가능하게 해 준다. 산체스의 아파트 건너편 가게에서 수잔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마이크의 등 뒤 유리창 밖으로, 저항하는 그랜디를 데리고 산체스의 아파트에 들어가는 피트 멘지스(Joseph Calleia) 경사를 보여 주는 장면이나, 그랜디의 란초 그란데에서 카메라 가까이에 앉은 퀸란이 술을 마시고 있고, 멀리 카운터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그랜디를 보여 주는 장면 등이 딥 포커스를 활용한 장면들이다.

경찰의 업적을 유죄 판결의 수로 평가한다면 퀸란은 분명 훌륭한 경찰이다. 30년 경찰 경력을 가진 퀸란의 직감은 퀸란의 명성만큼이나 유명하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퀸란은 컨버터블이 폭발한 것은 다이너마이트로 인한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간파한다. 그러나 퀸란은 증거물을 조작할 정도로 타락한 경찰이자, 인종주의자이기도 하다. 퀸란은 멕시코인인 마이크를 적대적으로 대하고, 마이크가 사건 조사에 개입하는 것을 대단히 불쾌해한다. 퀸란은 마르샤와 비밀리에 결혼한 산체스가 루디 리네카를 죽인 범인이라고 직감하고, 멘지스로 하여금 산체스의 아파트에 다이너마이트를 증거물로 심게 하여 산체스에게 누명을 씌운다. 이를 알게 된 마이크는 스왈츠의 도움으로 퀸란이 담당했었던 옛 사건들의 기록들을 조사한다. 이에 퀸란은 그랜디와 결탁하여 마이크와 수잔에게 마약 복용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그랜디를 교살한 후 수잔에게 살인 혐의까지 뒤집어씌운다.

퀸란에게도 자신이 타락한 경찰과 인종주의자가 된 것에 대한 변명은 있다. 퀸란은 신참 경찰이었을 때 아내가 혼혈인에게 교살을 당했고, 살인자를 잡으려고 마음을 푹푹 썩이면서 쫓아다녔으나 결국에는 잡지 못한 아픈 과거가 있다. 퀸란이 멘지스에게 말한다. "피트, 그놈이 내 손아귀에서 벗어난 마지막 살인자였어."

멘지스는 퀸란의 오랜 파트너이다. 과거에 퀸란은 멘지스에게 날아든 총알을 막고 부상을 입었으며, 그래서 지금은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하지만 멘지스는 퀸란의 조작으로 마약 복용 혐의와 살인 혐의로 감옥에 갇힌 수잔과, 수잔을 안고 흐느끼는 마이크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결국 마이크에게 그랜디의 시체와 함께 발견한 지팡이를 보여 준 멘지스는 증거를 잡기 위해 마이크를 몸에 숨기고서 퀸란이 고백하도록 유도하고, 마이크는 녹음기를 가지고 퀸란 몰래 퀸란과 멘지스를 따라가면서 퀸란과 멘지스의 대화를 테이프에 녹음한다.

멘지스가 마이크를 몸에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퀸란은 멘지스에게 총을 쏘고, 멘지스는 마이크에게 총을 쏘려는 퀸란에게 총을 쏜다. 퀸란의 시체를 바라보며 스왈츠는 한때 퀸란과 연인 사이였던 타나(Marlene Dietrich)에게 퀸란이 산체스에게 누명을 씌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다. 산체스가 폭탄에 대해 자백했으며 결국은 퀸란의 직감이 맞았다고 말한다. 스왈츠의 말은 관객들을 혼란에 빠져들게 한다. 과연 퀸란은 직감이 좋은 훌륭한 경찰인가, 증거물을 조작하고 용의자들에게 누명을 씌운 타락한 경찰인가? '악의 손길'의 결말은 지극히 회의주의적이다. 스왈츠가 타나에게 퀸란은 분명 훌륭한 형사였다고 말하자, 타나가 말한다. "형편없는 경찰이기도 했어요.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사람에 대해 어떤 말을 한들 무슨 상관이겠어요?"

'악의 손길'에서 퀸란의 죽음에는 서글픈 여운이 서려 있다. 왜냐하면 퀸란을 연기한 오슨 웰스 감독도 '악의 손길'을 끝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감독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오슨 웰스 감독은 영화의 제작에 영화 제작사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시대에 영화 제작사들과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 때문에 결국 '악의 손길'을 끝으로 할리우드에서는 더이상 영화를 연출하지 못하였다. 26세의 나이에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이라는 걸작을 만든 오슨 웰스 감독은 지금은 위대한 천재 영화감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오슨 웰스 감독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정당하게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영화감독이었다.

'악의 손길'에 오슨 웰스 감독의 친구이자, '시민 케인'과 '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 1949)'에서 오슨 웰스 감독과 함께 출연한 조셉 코튼이 카메오로 출연하는데, 영화의 초반부에 사건 현장에서,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수잔이 갇혀 있는 감옥에서 등장하는 경찰의가 바로 조셉 코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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