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동명의 단편 소설을 독일 출신의 영화감독 막스 오퓔스 감독이 영화화한 멜로 영화이다. 막스 오퓔스 감독은 여자들의 삶을 즐겨 다룬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막스 오퓔스 감독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매우 순수한 인물들로 가혹한 운명과 잔혹한 남성들에 의해 희생되는 존재들이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또한 10대 때부터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 온 한 여인의 지고지순하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00년경, 비엔나. 전직 피아니스트인 슈테판 브란트(Louis Jourdan)가 자신의 집 앞에 당도한 마차에서 내린다. 새벽 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세 시간 뒤 명사수로 알려져 있는 어느 남자와의 결투를 앞두고 있는 슈테판은 자신의 언어 장애인 하인 존(Art Smith)에게 결투를 피해 - "명예는 신사들만 감당할 수 있는 사치야." - 당분간 비엔나를 떠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존은 슈테판에게 어느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건넨다. 편지지의 윗머리에 인쇄되어 있는 "세인트 캐서린 병원"과,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때에는 저는 죽었을 겁니다."라는 첫 문장에 호기심이 발동한 슈테판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는 자신이 쓴 편지를 읽어 가는 여인의 내레이션과 함께, 플래시백으로 여인의 10대 소녀 시절로 돌아가, 소녀의 옆집으로 이사 오는 슈테판을 알게 된 바로 그날 처음 시작된 여인의 삶 - "저는 모두에게 생일이 두 번 있다고 생각해요. 신체적으로 태어난 날과, 무엇을 의식한 삶이 시작된 날이죠." - 을 보여 준다.

슈테판의 이삿짐이 온 날에 본 그의 아름다운 물건들과, 그의 집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에, 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가던 소녀는 어느 날 집을 나서는 그에게 문을 열어 주고, 그를 처음 본 그 순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소녀의 미망인 어머니 번들레 부인(Mady Christians)이 린츠에서 군복 제조 사업을 하는 캐스트너 씨(Howard Freeman)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린츠로 이사를 가게 된다. 기차역에서 자신은 슈테판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소녀는 그를 보기 위해 무작정 그의 집으로 달려가고, 그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그가 어떤 여자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실망한다. 결국 소녀는 린츠로 간다. 린츠에서 18살이 된 여인은 여전히 슈테판을 잊지 못해 능력 있는 젊은 장교 레오폴트 폰 칼트네거 중위(John Good)의 청혼도 거절한다.

슈피처 부인(Sonja Bryden)의 옷가게에 취직해 비엔나로 다시 돌아온 여인은 매일 저녁 일이 끝나면 곧바로 슈테판의 집으로 달려가, 멀리서라도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린다. 어느 날 저녁 여인 곁을 지나 집으로 걸어가던 슈테판은 갑자기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여인은 비록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날 저녁 그와 함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그날 밤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 하지만 다음날 여인이 일하고 있는 옷가게를 찾은 슈테판은 공연을 위해 그날 오후에 밀라노로 떠날 것이라고 여인에게 말하고 2주 후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동안 여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선 병원에서 슈테판의 아들 슈테판 주니어(Leo B. Pessin)를 출산하고, 아들이 9살이 되었을 때 아들을 위해 요한 슈타우퍼(Marcel Journet)와 결혼을 한다.

어느 날 여인은 요한과 함께 간 음악회에서 우연히 슈테판을 만나고, 요한의 만류에도 슈테판을 보기 위해 그의 집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슈테판은 끝까지 여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에 절망한 여인은 그의 집을 조용히 떠난다. 발진 티푸스에 걸린 아들마저 잃고 혼자가 되어 버린 여인은 자신도 병에 걸려 세인트 캐서린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편지를 다 읽고 여인에 대한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린 슈테판은 죄책감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존에게 이 여인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존은 종이에 리사 번들레(Joan Fontaine)라고 적는다. 존은 옛날 옆집에 살았던 소녀를, 슈테판은 결코 기억하지 못했던 그 소녀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아침 5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슈테판을 결투 장소에 데리고 갈 마차가 그의 집 앞에 당도한다. 이어서 영화 화면은 다른 마차에 탄 슈테판의 결투 상대를 보여 주는데, 슈테판의 결투 상대는 바로 리사의 남편인 요한이다!

결투를 피해 비엔나를 당분간 떠나 있기로 마음먹었던 슈테판은 자신이 리사에게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겠다는 듯이 결투를 하기로 마음을 바꾼다. 죽을 지도 모를 결투를 위해 집을 나서는 슈테판은 옛날 리사를 처음 본 순간을, 집을 나서던 자신에게 문을 열어 준 10대 소녀 시절의 리사를 떠올린다.

영화와 원작 소설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 영화에서 피아니스트인 슈테판은 원작 소설에서는 유명 소설가 R로 나오며, 리사의 경우 원작 소설에서는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또한 영화에서 요한과 결혼한 리사와는 달리 원작 소설에서 여인은 결혼하지 않으며, 원작 소설에서는 요한이라는 인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슈테판과 요한의 결투 이야기는 원작 소설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외에도 소소한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영화와 원작 소설의 이야기 자체는 차이가 없다.

슈테판은 10대 소녀 시절부터 자신을 사랑해 온 리사를 끝까지 알아보지 못하고 기껏해야 자신이 상대한 수많은 여자들 중 하나로만 상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사는 슈테판에게 고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일편단심 순정을 지키며 살다가 아들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에서야 편지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사랑을 밝힌다. 바람둥이 같은 슈테판과 이런 슈테판을 사랑하는 리사의 이야기가 오늘날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및 원작 소설의 시간적 배경 당시의 이중적인 성도덕 문제점을 슈테판과 리사의 이야기와 함께 생각해 본다면 다소 다른 의미의 맥락이 잡힌다. 원작 소설의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에 따르면, 그의 사춘기 시절 - 그는 영화의 시간적 배경과 같은 1900년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 에는 매춘과 성병이 난무했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순간까지도 영혼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것은 성병의 전염에 대한 불안이었고, 그처럼 열렬히 여자의 순결을 옹호했던 도시가 매춘을 태연하게 못 본 체했고, 그것을 조직화해서 돈을 벌어들인 시대였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리사와 슈테판의 마지막 만남에서 리사는 슈테판이 끝까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이에 절망하여 슈테판의 집을 조용히 떠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여인과 함께 하룻밤을 보낸 R이 아침에 하룻밤의 댓가로 여인의 방한용 머프 속에 고액지폐를 밀어 넣자, 이에 절망한 여인이 R의 집을 떠난다. R은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당시 분위기 속에 리사의 순정적인 사랑을 생각해 본다면, 10대 소녀 시절부터 사랑해 온 슈테판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고집스러울 정도로 밝히지 않고 그가 스스로 알아보기를 바랐던 리사의 순정적인 사랑은 사실 당시 남자들의 사랑의 순도를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인 동시에 이중적인 성도덕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원작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 슈테판과 요한의 결투 이야기를 추가하여 오늘날 관객들에게는 부도덕해 보이는 슈테판으로 하여금 벌을 받도록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쨌든 리사의 순정적인 사랑의 상대가 오늘날 관객들에게는 부도덕해 보이는 슈테판이라는 것을 제외시킨다면, 리사의 순정적인 사랑만큼은 오늘날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리사의 순정적인 사랑을 보여 주는 눈물나는 대사가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선 병원에서 슈테판 주니어를 출산한 리사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절대로 밝히지 않는데, 편지에서 슈테판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를 말한다.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당신의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안타까움에 눈물이 날 정도다. "이 편지를 받으면, 제가 언제나 그랬듯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 주세요.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당신과 함께 한 순간과 우리들의 아이를 가졌던 순간이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그 순간들을 함께 할 수만 있었다면. 만약에 당신이 언제나 당신 것이었던 것을 알아볼 수만 있었다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던 것을 찾았더라면. 만약에..."

화려한 형식미로 멜로 영화에서 일가를 이룬 막스 오퓔스 감독은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에서도 크레인 숏 등 화려한 카메라 워크를 보여 준다. 린츠로 가기 전 슈테판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린 리사가 상층 계단에서 슈테판과 어떤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계단을 오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몰래 내려다보는 유명한 크레인 숏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이 크레인 숏은 정확히 같은 위치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마치 관객들이 슈테판과 리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계단을 오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몰래 내려다보는 듯한 장면으로 반복된다. 이를 통해 리사가 슈테판과 어떤 여자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느꼈던 실망감을, 리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슈테판과 리사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은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에서 간행하는 영화 전문 월간 잡지 'Sight & Sound'가 2022년에 발표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에서 169위에 랭크되어 있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