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Seven, 1995)

영화 2024. 10. 13. 09:10

은퇴를 7일 앞둔 관록의 형사 서머셋(Morgan Freeman)은 자원해서 도시로 전근 온 다혈질의 젊은 형사 밀스(Brad Pitt)와 파트너가 된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위가 찢어질 때까지 음식을 먹다가 죽은 초고도 비만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화요일에는 역시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식칼로 자기 살을 베어내 죽은 유명 변호사의 시체가 발견된다.

서머셋은 죽은 변호사의 사무실 바닥에 피로 씌어진 "탐욕(Greed)"과, 자신이 초고도 비만 남자의 집에서 발견한, 냉장고 뒤 벽에 기름으로 씌어진 "식탐(Gluttony)" 및 밀턴(John Milton)의 '실락원 (Paradise Lost)'에서 나오는 구절인 "지옥에서 광명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가 적힌 메모지를 통해, 성서의 7가지 죄악 - 식탐, 탐욕, 나태(Sloth), 분노(Wrath), 교만(Pride), 욕정(Lust), 시기(Envy) - 을 근거로 한 연쇄 살인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한다.

'세븐'은 '에이리언 3 (Alien 3)'에 이은 데이빗 핀처 감독의 두 번째 연출 영화로,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 앤드류 케빈 워커의 빈틈없는 치밀한 각본과, 다리우스 콘쥐의 촬영과 데이빗 핀처 감독의 연출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빚어낸 감각적인 영상을 보여 주는 '세븐'은 범죄 스릴러 영화도 예술 영화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영화이다.

보통 범죄 영화의 궁극적인 의도는 타락한 인간과 타락한 세상을 이야기하고 보여 주는 데 있다. 하지만 '세븐'은 타락한 세상을 넘어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보여 준다. '세븐'은 서머셋과 밀스가 처음 만난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 주는 일요일까지의 7일 동안, 성서의 7가지 죄악을 따라 발생하는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야기의 마지막날인 일요일을 제외하고, 서머셋과 밀스가 처음 만난 날을 포함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도시에 시종일관 비가 내린다. 마치 성서의 노아의 홍수 이야기처럼 타락한 인간들을 죄다 쓸어버리려는 듯 비가 내린다.

밤마다 도시의 소음과 고성은 끊이지 않고, 서머셋은 메트로놈에 의존하여 잠을 청한다. 남편인 밀스를 따라 도시로 이사 왔지만 이 암울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임신까지 한 트레이시(Gwyneth Paltrow)에게 서머셋은 아주 오래전에 사귀던 여자가 임신을 했었는데,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서 아이가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이 낳기를 포기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세븐'에서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이름 없는 도시를 마치 지옥과 같은 곳으로 묘사한다. 시종일관 비가 내리고 곳곳에 범죄가 발생하는 도시는 음침하고 암울하다. 서머셋이 초고도 비만 남자의 집을 다시 찾는 장면에서 들리는, 마치 지옥에서 울부짖는 듯한 효과음은 관객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세븐'에서 초고도 비만 남자의 집이나, "나태"의 희생자의 집, 연쇄 살인범 존 도우(Kevin Spacey)의 집 등에서 경찰관들이나 서머셋과 밀스가 플래시로 어두운 공간을 비추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플래시의 빛이 어둠을 물리치기에는 그 빛이 너무나 약하다.

서머셋은 도서관에서 7가지 죄악이 나오는 초서(Geoffrey 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 (Canterbury Tales)'와 단테(Dante Alighieri)의 '신곡 (Divine Comedy)'을 주의깊게 읽는다. 서머셋은 관객들에게 프랑스의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e)가 '신곡'을 읽고 그린 삽화들도 슬쩍 보여 준다. 서머셋은 밀스에게 7가지 죄악을 다룬 '신곡'의 "연옥 (Purgatory)"편과 '캔터베리 이야기'의 마지막 이야기인 "교구 목사의 이야기 (The Parson's Tale)"를 참고하라는 메모를 남긴다. 이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Suite No. 3 in D Major, BWV 1068 "Air"'이다.

'세븐'에서 앤드류 케빈 워커의 뛰어난 각본으로 만들어 낸 존 도우의 7가지 죄악을 근거로 한 살인 행각은 잔혹하기는 하지만 예술적이다. 존 도우는 7가지 죄악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7가지 죄악 중 "시기"와 "분노"의 두 가지 죄악을 근거로 한 살인을 남겨 놓고 스스로 경찰서로 걸어 들어와 체포된 존 도우는 남은 두 명의 희생자를 보여 주기 위해 서머셋과 밀스와 함께 그 장소로 가는 도중에, 서머셋과 밀스에게 이 모든 일이 끝나면 자신이 한 일을 사람들이 골똘히 생각하고, 연구하고, 추종할 것이라고 말한다.

밀스가 존 도우에게 당신은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을 뿐이라고 말하자, 존 도우가 말한다. "죄 없는 사람들이라고? 웃기는군. 그 뚱뚱한 놈. 서 있기도 힘들어 하던 그 역겨운 놈. ... 당신도 식사 중에 그놈을 본다면 아마 밥맛이 떨어졌을 거야. 그리고 그 변호사. ... 거짓말을 밥 먹듯 해서 돈을 벌고, 살인자들과 강간범들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일생을 바친 놈이지. ... 그 여자. 외모가 아름답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다고 여기는 추한 내면을 가진 여자야. 그 마약 밀매자. 정확히는 마약을 밀매하는 남색꾼이었어. 그리고 병을 퍼뜨리는 그 창녀는 어떻고. 이 쓰레기 같은 세상에서, 이런 자들을 과연 죄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로 그거야. 거리마다 집집마다 죄악이 난무하고 있는데, 우린 그것을 묵인하고 있어. ...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돼. 난 본보기를 만들고 있어. ..."

'세븐'에서 트레이시는 음침하고 암울한 이 영화에서 가장, 아니 유일한,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그녀는 남편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녀는 남편을 위해 남편의 파트너인 서머셋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한다. 처음에 밀스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 서머셋도 트레이시의 저녁 초대 이후 밀스와 가까워진다. 존 도우는 밀스에게 트레이시처럼 예쁜 아내와 함께 보통 사람의 삶을 살고 있는 밀스를 "시기"했고, 그래서 임신한 트레이시의 목을 잘랐다고 말한다. "분노"로 제정신이 아닌 밀스는 서머셋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존 도우를 향해 "분노"의 방아쇠를 당긴다. 존 도우가 말한 남은 두 명의 희생자는 밀스를 "시기"한 죄악을 저지른 대가로 밀스에 의해 죽게 되는 자기 자신과, 밀스의 "분노"를 일으키기 위해 자신이 죽인 죄 없는 트레이시였다.

존 도우는 서머셋과 밀스에게 자신은 선택받았다고 말한다.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존 도우가 면도날로 자신의 손가락 끝의 피부를 벗기는 등, 7가지 죄악을 근거로 한 연쇄 살인을 준비하는 듯한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노래 'Closer'의 가사 "You get me closer to God. (네가 나를 신에게 더 가까이 데려갈 거야.)"는 존 도우를 위한 것이다. 결국 밀스는 존 도우를 죽임으로써 그를 순교자로 만들어 버렸다.

'세븐'에서 밀스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와, 서머셋을 연기한 모건 프리먼과는 달리, '세븐'의 각종 영화 포스터와, 심지어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도 미스터리한 존 도우를 연기한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기 위하여 누락되어 있다. 하지만 자막이 올라가는 보통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자막이 내려가는 파격적인 '세븐'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가장 먼저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이 언급된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The Hearts Filthy Lesson'이다.

서머셋이 밀스에게 말한다. "난 무관심을 마치 미덕인 양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세상에서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네. ... 무관심이 해법이지. 그러니까, 삶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 마약에 의지해 버리는 것이 더 쉽지. ... 원하는 것을 노력해서 얻는 것보다 훔치는 것이 더 쉽지. ...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때리는 것이 더 쉽지. ... 우린 지금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어."

타락할 대로 타락한 세상에서 체념한 듯 무관심한 태도로 살아가는 비관주의자인 서머셋과는 달리, 밀스는 연쇄 살인범을 잡으면 해피 엔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다. 밀스가 서머셋에게 말한다. "어쨌든 요점은, 저는 선배님이 그렇게 믿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배님이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밀스가 바라던 대로 영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밀스는 "분노"의 죄악을 저지른 죄인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고, 은퇴 후 도시를 벗어나 농장에서의 삶을 바랬던 서머셋은 은퇴를 번복한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밀스가 존 도우를 향해 "분노"의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나는 결말을 원했으나, '세븐'의 제작사인 뉴라인 시네마는 반대하였고, 결국 지옥과 같은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광명의 빛과도 같은 서머셋의 마지막 대사를 삽입한 현재의 결말로 바꾸었다. 은퇴를 번복한 서머셋이 말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렇게 썼다. "이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고, 그것을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나는 두 번째 부분에 동의한다."

서머셋이 인용한 헤밍웨이의 문장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서머셋의 마지막 대사도 타락할 대로 타락한 세상을 살고 있는 관객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