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이 모두 가 버린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아버지(신구)를 모시고 사는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고 있던 8월의 어느 여름날에 사진을 인화하러 온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을 처음 만나게 된다.

단속 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정원의 사진관을 드나들던 다림은 자신만 보면 웃는 아저씨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된다. 정원 또한 생기발랄한 다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국영상자료원(KOFA)은 2024년에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영화의 연구자, 평론가, 창작자, 영화업계 종사자 등 240인이 뽑은 한국영화 100선 목록을 발표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2006년과 201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발표한 한국영화 100선은 가장 오래된 극영화 필름인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 (1934)'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극장 및 온라인 플랫폼, 영화제를 통해 공개된 한국 장편영화(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실험영화 등)를 대상으로 2023년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세 달간 설문 투표를 진행한 결과, 총 100편의 작품이 선정된 것이다. 이번 한국영화 100선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2022)'과 함께 공동 8위를 차지하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첫 장편 영화로,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도 허진호 감독이 오승욱, 신동환과 함께 썼다.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는 '8월의 크리스마스'는 8월에서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까지 시간 동안의 이야기이다. 겨울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대중적인 축제인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음식을 준비해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즐기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주고 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남기는, 1년 중 가장 행복한 시즌이다. 다림을 처음 만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림과 함께한 행복했던 8월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세상을 떠난 정원에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다림은 정원에게 8월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영화의 이야기에 큰 갈등도 대단원의 결말도 없이, 그리고 관객들의 눈물을 강요하는 이야기나 장면도 없이 담담하게 전개된다. 정원이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듯, 파출소에서 친구인 철구(이한위)가 말리는데도 소리치며 오열하는 장면과, 자신의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흐느껴 우는 장면을 제외하면, 정원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정원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 내고 있다. 정원이 아버지와 요리를 하고, 여동생인 정숙(오지혜)과 수박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간 수산 시장에서 회를 뜨는 모습을 바라보고, 자신의 발톱을 깎는 장면을 오랫동안 보여 주는 이유는 이 소소한 일상의 모든 순간들이 죽음을 앞둔 정원에게는 소중한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텅 빈 운동장을 보여 주는 장면이 한번씩 등장하는데, 이는 텅 빈 운동장에 남아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던 정원처럼,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틈을 주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다림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한 정원이 찻집에서 유리창 너머 저 멀리에 웃으며 일을 하고 있는 다림의 모습을 발견하고 유리창에서 손가락으로 다림을 쫓으며 바라보는 장면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정원은 부치지 못한 다림에게 쓴 편지를 그대로 편지 박스에 넣는다. 그리고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다.

영정 사진 속 정원은 웃고 있다. 다림을 처음 만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림과 함께한 행복했던 8월의 추억과, 다림의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다.

정원은 사진을 찾으러 온 머리 큰 여자(최명숙)가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왔다고 하자 사진을 다시 찍어 주고, 낮에 가족 사진을 찍고 그날 저녁에 고운 한복 차림으로 다시 찾아와 제사상에 놓을 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영정 할머니(김애라)에게 돈도 안받고 사진을 다시 찍어 준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람 좋은 정원을, 개인적으로 한국 배우들 중 가장 사람 좋아 보이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한석규가 연기하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의 웃음소리가 참 정겨운데, MBC강병가요제에 참가하여 수상한 경험도 있고, 성우로 활동한 경험도 있는 만큼, 목소리도 참 좋은 한석규는 그 좋은 목소리로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삽입곡 '8월의 크리스마스'를 직접 불렀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흘러나오는 또 다른 삽입곡은 김창완이 작사, 작곡한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이 영화를 유영길 촬영감독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데, 유영길 촬영감독은 마지막 촬영 작품인 '8월의 크리스마스'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63세를 일기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유영길 촬영감독은 세상을 떠난 뒤에 '8월의 크리스마스'로 제19회 청룡영화상과 제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하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제36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 각본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제3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작품상과 여자 연기상을, 제19회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신인감독상, 촬영상을, 제1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영평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을 수상하였다.

눈 쌓인 사진관의 쇼윈도에 정숙과, 정숙의 친구이자 정원의 옛 여자친구였던 지원(전미선)이 여고생 시절에 함께 찍었던 사진이 걸려 있던 자리에 다림의 웃는 모습이 담긴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관 앞에 나타난 다림은 쇼윈도 앞으로 다가가 쇼윈도에 걸려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면서 웃는다.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던 다림이 뒤로 돌아서 사진관을 떠나는 순간 정원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