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 더 스킨'은 미헬 파버르의 동명의 소설을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이 월터 캠벨과 함께 각색하고, 자신이 직접 연출까지 한 SF(Science Fiction) 장르의 영국 영화이다.
'언더 더 스킨'의 원작 소설의 주인공은 "우리" 인간의 모습을 한 이설리라는 이름의 여자 외계인이다. 여기서 "우리"를 굳이 붙인 이유는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이설리를 포함한 외계인들이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부르고, 자신들의 고향에서 부자들만 사서 먹을 수 있는 "보드신" 스테이크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고기를 제공하는 우리 인간들을 "짐승" 또는 "보드셀"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에게 우리 인간들은 우리 인간들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인 셈이다. 이설리는 자신의 고향에서 "보드신" 스테이크를 제조, 판매하는 베스 주식회사의 노동자이다. 이설리가 붉은색 코롤라 자동차를 몰고 스코틀랜드 고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주로 덩치 큰 근육질의 남자 히치하이커를 자동차에 태우고, 이 보드셀에게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운전대의 "익파투아" 스위치를 누르면 조수석의 방석 속의 조그만 덮개 속에서 소리 없이 튀어나오는 주삿바늘로 기절시키고, 모레이 만 근처에 위치한 아브라크 농장으로 데리고 오면, 우리 인간들, 즉 보드셀들의 눈을 피해 농장의 땅속 깊은 곳에 만들어 놓은 가공실에서 남자 노동자들이 이설리가 데리고 온 보드셀을, 털을 밀고, 거세를 하고, 살을 찌우고, 장기를 수정하고, 화학적으로 정화된 보드셀로 한 달간 가공 처리하여, 매달 같은 시간에 농장에 들어오는 베스 주식회사의 수송선에 실어 보낸다.
부패와 훼손, 그 외에는 달리 그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할 표현이 없었던 "뉴 에스테이트"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지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아름다웠던 자신의 몸을 수술을 통해 "짐승"들하고 비슷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설리는 베스 주식회사 회장의 아들인 암리스 베스가 농장에 도착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편견에 금이 가고, 자신의 가치와 포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에 갇혀 있던 불쌍한 보드셀들을 풀어 주고, 고향에는 없는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감탄하는 암리스 베스를 통해 이설리는 보드셀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이 흔들리면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언더 더 스킨'의 원작 소설에서 "뉴 에스테이트"에서 보낸 이설리의 과거가 희미하게 언급되고, 그녀가 어떤 희생을 감수했고 어떤 일로 먹고 사는지가 드러나고, 결국 그녀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하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결말에 이르면, 독자들은 그녀에 대한 연민을 금할 길이 없다. '언더 더 스킨'의 원작 소설은 예고도 없이 할당량을 올리려는 변덕스러운 기업주 때문에 고생하고, 돈 많은 남자들에게 버림받고, 일터의 저속한 인간들이 자행하는 성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등, 외계인이지만 우리 인간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이설리의 이야기를 통해, 기업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와, 인간성 상실, 빈부 격차, 계급 갈등, 성차별, 동물 학대, 환경 파괴 등을 비판적이고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다.
'언더 더 스킨'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그녀"(Scarlett Johansson)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아 -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다. - "그녀"가 여전히 이설리인지, 아니면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임무는 이설리의 임무와 같다. "그녀"는 흰색 밴을 몰고 스코틀랜드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남자들을 유혹하며 죽음에 이르게 한다.
'언더 더 스킨'의 원작 소설은 처음부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설리라는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그녀는 남자 히치하이커를 찾아 스코틀랜드 고지대를 돌아다니는가, 그리고 아브라크 농장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이며, 보드셀이란 또 무엇인가 등과 같은 의문이 책의 첫 3분의 1 가량에 소개되는 어렴풋한 암시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지만, 모든 의문은 책의 마지막 부분까지 가서야 완전하게 풀린다.
'언더 더 스킨'도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오프닝 장면부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어들을 외우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원 모양의 어떤 물체가 인간의 눈으로 변하는 장면과, 흰색 밴이 세워져 있는 한적한 도로 옆에 자신의 모터사이클을 멈춰 세우고 도로 옆 협곡 아래로 내려간 "남자"(Jeremy McWilliams)가 정신을 잃은 듯한 "여자"(Lynsey Taylor Mackay)를 들고 다시 도로로 올라와 "여자"를 흰색 밴에 싣는 장면, 알몸의 "그녀"가 시체처럼 누워 있는 "여자"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자신이 입는 장면, 밤하늘에 떠 있는 UFO처럼 보이는 것들을 보여 주는 장면이 아무런 상황 설명 없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언더 더 스킨'의 오프닝 장면은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된다. '언더 더 스킨'의 오프닝 장면에서 보여 주는 인간의 눈은 "그녀"의 눈으로, "그녀"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으며, 단어들을 외우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로, "그녀"가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그녀"처럼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으로, "남자"는 "그녀"의 상관이고, "여자"는 "그녀"의 전임자이다. 벌거벗겨진 "여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데, 아마도, 나중에 점점 인간에 동화되어 가는 "그녀"처럼, 인간에 동화되어 더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에 떠 있는 UFO처럼 보이는 것들은 "여자"의 후임자인 "그녀"를 이곳에 데리고 온 진짜 UFO이다.
난 '언더 더 스킨'의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만약에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과연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만큼 '언더 더 스킨'은 상황 설명도, 대사도 거의 없이, 주로 영상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이다. 특히 '언더 더 스킨'에서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검은 바닥 아래의 공간에 갇혀 버린 남자들에서 피부 껍데기만을 남기고 추출한 피와 살로 보이는 건더기가 섞인 액체가 수문으로 흘러들어 가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왜 "그녀"가 남자들을 유혹하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따라서 '언더 더 스킨'은 원작 소설에서처럼 인간과 인간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녀"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언더 더 스킨'을 보면 "그녀"의 밴 안에서 인간과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길거리의 남자들에게 접근하여 길을 묻는 장면들은 "그녀"의 밴 안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로 촬영되었다. 이는 관객들에게 외계인인 "그녀"와 같은 시점에서 인간과 인간 세상을 보게 하고, 인간에 동화되어 가는 "그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다.
'언더 더 스킨'에서 "그녀"는 인간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잔혹한 외계인이다. "그녀"는 "여자"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도 매정하게 외면하고, "그녀"가 접근한 남자에게 가족이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미소를 띠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돌연 싸늘하게 굳어진다. "그녀"는 바다에 빠진 부부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드는 남자(Krystof Hadek)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부를 구하려다 기진맥진하여 쓰러진 남자의 머리를 돌로 내리쳐 남자를 기절시킨다. "그녀"는 바다에 빠진 부모를 잃고 우는 어린아이를 내버려둔 채 기절한 남자를 끌고 간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인간에 동화되어 간다.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녀"의 얼굴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그녀"가 인간에게 동화되어 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그녀"는 안면 기형인 남자(Adam Pearson)를 유혹하지만, 그를 풀어 준다. 이를 알게 된 "남자"는 "그녀"를 추적하고, "그녀"는 자신의 밴을 버리고 사라진다. 낯선 이곳에서 갈 데가 없는 처지가 된 "그녀"는 한 남자(Michael Moreland)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인간에 동화된 "그녀"는 인간의 음식인 케이크를 먹어 보고, 인간의 모습을 한 자신의 알몸을 거울에 비춰 인간의 몸을 살펴보고, 자신에게 도움을 준 남자와 사랑도 시도해 보지만, 자신은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결국 인간 세상을 떠나 숲속으로 들어간다. 숲의 울창한 나무들이 "그녀"와 오버랩된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자연의 일부가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녀"가 숲속에서 자신을 겁탈하려 하는 벌목꾼(Dave Acton)에 반항하는 과정에서 피부가 벗겨져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고, 이를 보고 놀란 벌목꾼은 "그녀"의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다. 결국 "그녀"는 한줌의 재로 끝나고,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여 주면서 영화도 끝난다.
'언더 더 스킨'에서 "그녀"가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하면서 낯선 이곳에서 갈 데 없는 처지가 되고, 결국 자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에 의해 한줌의 재가 되는 결말에 이르면, 관객들은 "그녀"에 대한 연민을 금할 길이 없다. "그녀"를 위해, '언더 더 스킨'의 원작 소설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이설리를 위한 원작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여기에 인용한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은 대기 중의 산소나 질소 따위와 섞일 것이다. 땅에 묻히는 대신 하늘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그녀의 잔해는 오랜 시간을 두고 태양 아래 모든 신비로운 것들과 결합할 것이다. 눈이 오면 그녀는 그 일부가 되어 부드럽게 땅으로 내려왔다가, 눈이 증발하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갈 것이다. 비가 오면 그때도 그녀는 만에서 대지로 이어지는 무지개 속에 자리할 것이다. 안개 속에서 들판을 장식하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투명한 별빛 속을 떠돌 것이다. 그녀는 영원히 살 것이다."
'언더 더 스킨'은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에서 간행하는 영화 전문 월간 잡지 'Sight & Sound'가 2022년에 발표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에서 169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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