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여성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한 프랑스 영화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La Pointe Courte, 1956)'에 이은 두 번째 연출작인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이틀 전 병원에서 의료 검사를 받고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이 아닐까 의심하며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젊은 여가수 플로렌스 클레오 빅투아르(Corinne Marchand)가 6월 21일 화요일 저녁에 나오는 의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고, 이 과정 중에 주위의 세계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파리에서 만들어진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나온 1962년은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된 프랑스의 영화 운동 누벨바그(Nouvelle Vague)가 절정에 이른 때였다.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했던 이 운동은 무너져 가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됐다. 이 운동의 원동력은 소그룹 영화 마니아들로부터 나왔는데, 그들 대부분은 프랑스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ema)'에 글을 기고하며 경력을 시작했으며, 특히 잡지의 발행인이었던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의 영화 비평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 클로드 샤브롤(Claude Chabrol),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Eric Rohmer),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등은 기존의 안이한 영화 관습에 대항하는 글을 썼고, 좀 더 개인적인 방식의 영화 제작, 즉 감독의 개인적인 영감과 비전을 투여하는 방식과 스타일을 논설했다. 이들은 영화 비평가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전통을 부정하는 혁신적인 영화 만들기에 직접 뛰어들었다.

누벨바그에 동참하면서도 '까이에 뒤 시네마'와는 관련이 없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을 비롯하여,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알랭 레네(Alain Resnais),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남편인 자크 드미(Jacques Demy) 등은 좌안파(Rive Gauche)로 분류되는데, 좌안파는 문학에서의 누보로망(Nouveau Roman) 운동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정치적으로 좌파에 속했고, 누벨바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영화 작업에 긴밀히 협력했다.

좀 더 유명하고, 재정적으로도 좀 더 성공한 '까이에 뒤 시네마' 출신의 우안파(Rive Droite)는 좌안파와 대립적이지 않았고, 좌안파의 영화들을 지지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 장 뤽 고다르가 출연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영화 속 영화라고 할 수 있는 5분짜리 단편 무성 영화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 (Les Fiances du Pont Mac Donald, 1961)'을 보여 준다. 클레오가 친구인 도로시(Dorothee Blank)를 따라 도로시의 남자 친구인 라울이 일하는 영화관을 방문했을 때, 라울이 도로시와 클레오에게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을 보여 준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만든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에 장 뤽 고다르와, 당시 그의 아내이자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여배우인 안나 카리나가 주연으로 출연하고, 그 외 에디 콘스탄틴, 사미 프레이, 다니엘 들로르므, 이브 로베르 등 유명 배우 또는 영화감독들이 출연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타로 카드를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흑백 영화이지만 타로 카드를 내려다보는 장면들만 컬러이다. 타로 카드를 보며 클레오의 운세를 봐 주는 타로술사 이마(Loye Payen)와, 병에 걸렸다는 불길한 타로점에 불안한 표정의 클레오를 보여 주는 장면부터 흑백으로 전환된다. 클레오는 타로점을 마치 사실인 양 믿고 울기까지 하는데, 타로 카드를 내려다보는 장면들만 컬러로 한 것은 흑백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실과 구분하고, 타로점은 그저 타로점일 뿐이라는 것을 암시해 주기 위해서이다.

클레오가 점술집을 나온 이후부터의 이야기는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 장에는 영화의 제목과 똑같은 형식의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각 장의 제목은 그 장의 이야기의 중심인물과,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을 알려 주고 있으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은 영화의 상영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점술집에서 타로점을 보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마지막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담당 의사인 닥터 발리누(Robert Postec)로부터 의료 검사 결과를 듣는 클레오의 5시부터 6시 30분까지의 이야기가 러닝 타임이 90분인 영화의 상영 시간과 거의 똑같이 전개되는데, 관객들은 실시간으로 클레오를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게다가 클레오를 통해 보여 주는 파리 시내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들을 사물에 특별한 생기를 불어넣는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여,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클레오의 불안하고 초조한 심정과는 달리 생기가 넘치는 파리 시내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들을 보고 클레오가 느끼는 감정들을 관객들도 최대한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뛰어넘는 영화 기법을 통해 단순히 생기가 넘치는 파리 시내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풍경들만을 보여 주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여성이라는 담론적 주체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겨 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어떻게 보면 아직은 어린 클레오의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점술집에서 나온 클레오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말한다. "참아내, 나비야. 추함이 곧 죽음이지. 나는 아름다우니까 어느 누구보다도 살아 있는 거야."

1장부터 7장까지의 클레오는 지극히 피동적이고 수동적이며 피상적이다. 클레오는 타로점에 영향을 받고, 자신의 미모와, 자신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새로 산 모자로 자신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감추고, 화요일에 새것을 쓰면 불운이 온다는 등, 미신을 신봉하는 앙젤(Dominique Davray)의 불합리한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관대하지만 항상 바쁜 연인 호세(Jose-Luis de Vilallonga)에게서 사랑받기에만 익숙한 여성이다. 하지만 클레오는 7장에서 리허설 때 'Sans Toi (당신 없이는)'를 부른 시점부터 변해 가기 시작한다.

클레오가 'Sans Toi'를 부르는 장면은 마치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 같다. 'Sans Toi'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의 음악을 담당하고,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밥(Michel Legrand)을 연기하는 미셀 르그랑이 작곡하고, 클레오를 연기하는 코린 마르샹이 직접 부른 것이다. "모든 문이 활짝 열려져 있고 바람이 불어오는, 나는 빈집과 같아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바다로 둘러싸인 버려진 섬처럼 나의 모래는 휩쓸려 나가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아름다움은 황폐해지고 겨울의 추위 속에 벌거벗겨진, 갈망하는 육체예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절망에 번민하고 투명한 관 속에 누운 주름투성이 시체예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당신이 너무 늦게 온다면 나는 땅에 묻힐 거에요, 홀로, 추하게, 창백하게,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당신 없이는."

'Sans Toi'는 클레오로 하여금 이제껏 애써 감춰 왔던 그녀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직시하도록 만든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송곡과도 같은 노래를 부르게 한 것에 화가 난 클레오는 노래의 히트만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불평한다. 클레오는 자신을 도자기 인형처럼 대한 사람들과, 그동안 그것에 만족해 온 자신에게 분노한 것이다. 클레오는 화려한 옷과 가발을 벗어 버린다. 대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오늘은 화요일이라는 앙젤의 말도 무시한 채 새로 산 모자를 쓰고 집을 나온다. 무작정 거리로 나온 클레오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말한다. "인형처럼 표정 없는 얼굴, 우스꽝스러운 모자.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어. 난 항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결국 나를 아는 건 나뿐이야. 그것이 날 지치게 해."

특정 인물의 이름으로 제목을 붙인 다른 장들과는 달리, 불특정 다수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8장에서 클레오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클레오는 도로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한다. 클레오가 조각가들의 누드모델로 일하는 도로시에게 그들이 네 몸의 결점을 보지 않을까 두렵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도로시가 말한다. "...내 몸을 자랑하려고 하는 일이 아닌 걸. 그들이 보는 건 내 몸이 아니야. 포즈나 아이디어지. 마치 내 자신은 없는 것 같아. 잠든 것처럼. ..."

9장부터 마지막 13장까지는 클레오가 도로시를 만나고,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을 보고, 앙투안(Antoine Bourseiller)을 만나면서, 스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검은 선글라스를 조심하시오 (Mefiez-vous des lunettes noires)"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맥도날드 다리의 연인들'은 안나(Anna Karina)와 작별의 키스를 나눈 약혼자(Jean-Luc Godard)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약혼녀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데, 계단을 내려간 약혼녀가 바닥에 넘어져 영구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게 되고, 약혼녀를 잃은 슬픔으로 흘린 눈물을 닦기 위해 검은 선글라스를 벗으니,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자신의 진짜 약혼녀 안나를 보게 되면서, 자신의 선글라스 때문에 모든 것이 검게 보였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로시와 헤어진 후 공원을 들른 클레오는 3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몇 시간 앞둔 한 남자를 만난다. 알제리에 파병된 군인인 앙투안은 의료 검사 결과를 걱정하고 있는 클레오에게 말한다. "알제리에서는 항상 두려워요. ... 아무 의미 없이 죽을까 두려워요. 전쟁에서 죽는 건 슬픈 일이죠. 차라리 사랑을 위해 죽고 싶어요."

클레오는 자신과는 달리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차분한 앙투안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유 모를 편안함을 느낀다. 앙투안은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려운 클레오를 위해 병원까지 동행해 준다. 병원에서 만난 닥터 발리누가 두 달 동안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클레오를 안심시킨다. 앙투안이 클레오에게 이제 자신은 떠나야 한다며, 당신과 함께 있고 싶다고 말하자, 클레오가 앙투안에게 말한다. "지금 함께 있잖아요. 두려움이 사라진 것 같아요. 행복한 것 같아요."

클레오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진 이유가 단지 닥터 발리누가 의료 검사 결과에 대해 클레오를 안심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와 클레오는 그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진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클레오와 90분 동안 실시간으로 함께 한 관객들은 그 이유를 안다. 클레오가 90분 동안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 클레오를 연기하는 코린 마르샹은 참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배우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또한 참 예쁘고 사랑스러운 영화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에서 간행하는 영화 전문 월간 잡지 'Sight & Sound'가 2022년에 발표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에서 14위에 랭크되어 있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