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지방 검사 생활을 마치고 변호사로 전업한 뒤 미시간의 작은 마을에서 낚시와 재즈 음악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폴 비글러(James Stewart)에게 로라 매니언(Lee Remick)이라는 미모의 여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된 남편 프레드릭 매니언(Ben Gazzara)의 변호를 의뢰한다. 현역 육군 중위인 프레드릭 매니언은 아내 로라 매니언을 강간하고 폭행한 바텐더 바니 퀼을 총으로 살해한 뒤 자수하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프레드릭 매니언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 폴 비글러는 프레드릭 매니언이 일시적인 정신 착란인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무죄 선고를 받아 내려 한다. 폴 비글러는 자신을 지방 검사직에서 몰아낸 멍청한 후임 지방 검사 미치 로드윅(Brooks West)과, 미치 로드윅의 요청으로 재판에 참석하게 된 법무 차관보 클로드 댄서(George C. Scott)와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인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살인의 해부'는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법정 영화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이다. '살인의 해부'는 재판 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인데, '살인의 해부'의 제작에 두 명의 실제 법조인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살인의 해부'는 미시간 대법원의 판사였던 존 D. 뵐커가 검사 시절 다루었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로버트 트래버라는 필명으로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각색한 영화이다. 그리고 '살인의 해부'에서 위버 판사(Joseph N. Welch) 역의 조셉 N. 웰치는, 미국 전역을 반공 열풍 속으로 몰아넣은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미 육군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해 있다고 고발하는 사건을 놓고 이루어진 육군-매카시 청문회(Army-McCarthy hearings)에 육군의 고문 변호사로 출석하여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에게 "도대체 당신에게는 품위라는 것도 없습니까?"라고 말해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살인의 해부'의 이야기는 다른 법정 영화와는 달리, 재판의 대상 사건보다는 재판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살인의 해부'는 재판 과정에 대한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영화의 제목처럼 시체를 해부하듯이 사법 제도를 날카롭고 통렬하게 분석하여 사법 제도의 문제와 한계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살인의 해부'에서는 재판의 대상인 살인 사건이나 강간 사건의 상황을 보여 주는 장면은 보여 주지 않고, 오로지 법정에서의 재판과, 재판과 관련된 주변 상황만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살인의 해부'는 관객들도 배심원들과 같은 입장에서 재판을 판결해 보라는 의도와 함께, 과연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지, 재판을 통한 판결이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관객들에게 제기하고 있다.

'살인의 해부'에서 재판 중에 프레드릭 매니언이 폴 비글러에게 "이미 들은 내용을 배심원이 어떻게 무시하죠?"라고 묻자, 폴 비글러가 "못합니다. 못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온다. 폴 비글러는 검찰 측의 이의 제기와 위버 판사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무죄 선고를 받아 내기 위해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부적절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이를 통해 '살인의 해부'는 배심원들이 과연 개인적 주관의 개입 없이 사건의 진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살인의 해부'는 재판에서의 위증과 위증 교사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 폴 비글러가 프레드릭 매니언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하기 전에 교도소에서 프레드릭 매니언에게 배심원들의 동정심을 자극할 만한, 바니 퀼을 살해한 합법적 변명이 무엇인지를 묻는 장면에서, 폴 비글러는 프레드릭 매니언이 바니 퀼을 살해한 이유에 대한 진실과는 상관없이, 프레드릭 매니언으로부터 정신 이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답변을 이끌어 내고, 결국 재판에서 프레드릭 매니언은 정신 착란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무죄를 주장한다. 그리고 검찰 측은 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프레드릭 매니언과 함께 수감 중인 죄수 듀안 밀러(Don Ross)를 증인석에 세워 프레드릭 매니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하는데, 만약 듀안 밀러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검찰 측의 명백한 위증 교사에 해당한다.

로라 매니언과 바니 퀼이 불륜 관계였으며, 이를 안 프레드릭 매니언이 로라 매니언을 폭행하고 바니 퀼을 살해했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프레드릭 매니언은 결국 정신 착란으로 인한 살인으로 무죄를 선고 받는다. 하지만 '살인의 해부'를 보면, 조신하지 못한 로라 매니언의 행동들을 보여 주는 장면, 다소 폭력적인 프레드릭 매니언의 행동들을 보여 주는 장면, 로라 매니언과 프레드릭 매니언의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는 장면, 로라 매니언과 프레드릭 매니언이 프레드릭 매니언의 무죄 방면을 위해 뭔가를 꾸민 듯한 행동들을 보여 주는 장면 등을 통하여 검찰 측의 주장대로 로라 매니언이 바니 퀼과 불륜을 저질렀고, 이를 안 프레드릭 매니언이 로라 매니언을 폭행하고 바니 퀼을 살해하였으며, 프레드릭 매니언이 무죄 방면을 위해 로라 매니언과 짜고 재판을 계획한 것이라는 의심이 들게 한다. 재판에서 이긴 폴 비글러는 그의 동료 파넬 엠멧 맥카시(Arthur O'Connell)와 함께 약속 어음에 사인을 받기 위해 프레드릭 매니언을 찾아가지만, 프레드릭 매니언이 편지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음을 확인한다. 파넬 엠멧 맥카시가 프레드릭 매니언이 버리고 간 빈 병을 보며 말한다. "진이군. 그 친구 뭔가 수상했어. 진을 마시는 사람 치고 믿을 사람 못 봤어."

'살인의 해부'에서 로라 매니언이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찾지 못한 로라 매니언의 팬티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대두되자, 위버 판사가 재판에서 계속해서 언급될 팬티를 대신할 다른 명칭이 없는지를 폴 비글러, 미치 로드윅, 클로드 댄서와 상의를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만, '살인의 해부'는 '살인의 해부'가 개봉될 당시에는 검열로 인해 영화에서 사용할 수 없었던, 강간(rape), 정자 형성(spermatogenesis), 오르가슴(sexual climax), 피임 기구(contraceptive), 팬티(panties)와 같은 말을 사용하여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살인의 해부'는 사울 배스의 감각적인 오프닝 타이틀과, 듀크 엘링튼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프닝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영화의 사전 홍보가 흥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오토 프레밍거 감독은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이미지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사울 배스는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Golden Arm, 1955)'를 시작으로, 총 11편의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영화에 영화 포스터와 타이틀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사울 배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Vertigo, 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 1959)', '싸이코 (Psycho, 1960)',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팔타커스 (Spartacus, 1960)',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1961)',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좋은 친구들 (Goodfellas, 1990)' 등의 영화에도 참여했다.

'살인의 해부'의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듀크 엘링튼은 재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으로,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 돈 레드먼(Don Redman)과 더불어 스윙 시대를 열었던 빅 밴드 재즈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듀크 엘링튼은 '살인의 해부'에 출연하기도 하는데, 나이트클럽에서 폴 비글러가 함께 피아노를 치는 흑인 피아니스트가 바로 듀크 엘링튼이다.

'살인의 해부'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0개의 영화 장르에서 각각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 (AFI's 10 Top 10)"의 법정 영화 장르 부문에서 7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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