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전투'의 마지막에서, 프랑스군이 항복을 거부한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ont de Lib ration Nationale, FLN)의 마지막 남은 지도자 알리 라 푸앙트(Ali La Pointe, Brahim Haggiag)의 은신처를 폭파시킨 후, 프랑스 장군이 알제에서 FLN은 완전 소탕되었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대령이 말한다. "알제가 알제리는 아닙니다."
그러자 장군이 말한다. "물론이지. 하지만 우선은 알제에 만족하자고. 산에서는 일이 훨씬 수월하지."
프랑스 장군과 대령의 대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한국 제목인 '알제리 전투'는 "알제 전투"로 수정되는 것이 맞다. '알제리 전투'의 원제목인 'La Bataille d' Alger'과, 영어 제목인 'The Battle of Algiers'에서, "Alger"와 "Algiers"는 알제리(Algeria)의 수도인 "알제"를 일컫기 때문이다. '알제리 전투'는 1954년부터 8년 동안 프랑스를 상대로 한 알제리의 독립 전쟁(알제리 전쟁)에서, 1954년에서 1957년 사이에 알제에서 FLN이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했던 실화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영화이다.
프랑스 장군의 생각도 틀렸다. 1957년 10월, 항복을 거부한 알리가 폭사하면서 알제 전투는 프랑스의 승리로 종결되지만,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기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하듯 그 후 2년 동안 산에서 전투가 벌어지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잠잠했었는데, 1960년에 다시 알제리 민중의 봉기가 일어나고, 마침내 1962년 알제리는 독립을 쟁취한다. 프랑스는 알제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알제리 전쟁에서는 패전하고 만다.
이탈리아와 알제리 합작 영화인 '알제리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탈리아 공산당에 참여했었고,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에서 반파시스트 레지스탕스의 지도자로 활동했었던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이 연출과, 프랑코 솔리나스와 함께 각본과, 엔니오 모리꼬네와 함께 음악을 담당하고, 실제로 알제 전투 당시에 FLN의 지도자였던 야세프 사디가 제작을 담당한 영화이다. 야세프 사디는 '알제리 전투'에서 자신을 모델로 한 FLN의 지도자 자파(Saadi Yacef) 역으로 영화에 출연까지 한다. '알제리 전투'는 전쟁과 정치적 활동 경험이 있는 영화감독과 영화제작자가 만든 전쟁 영화이자 정치 영화이다.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고감도 필름을 사용하여 촬영한 '알제리 전투'는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를 보는 듯 사실감이 넘치는 영화이다. 적은 조명 하에서도 촬영할 수 있어,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를 촬영할 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는 고감도 필름은 입자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이미지 선명도가 떨어져 화질이 열화되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고감도 필름의 시각적 결함이 미적 장치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별히 기록 영화적 감성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유리하다. '알제리 전투'는 흑백 대비가 강렬하고 영상의 선명도가 낮아, 마치 실제 사건을 기록한 듯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반응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이 영화에 다큐멘터리나 뉴스 영화에서 가져온 필름은 "단 1피트도 없다"고 공표해야 했을 정도였다.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알제리 전투'를 알제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였으며, 촬영 현장에서 알제리 국민들을 엑스트라로 동원하였다. '알제리 전투'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마티유 대령(Jean Martin)을 연기하는 프랑스 배우 장 마르탱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전문 배우들이다. 당시 주로 연극 무대에서 배우 활동을 한 장 마르탱도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장 마르탱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참여했었고,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 공수 부대에 복무했었고, 1960년에 프랑스의 지식인 121명이 서명한 알제리 전쟁을 반대하는 선언문(Manifeste des 121, 121인 선언)에 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국립민중극장에서 해고되기도 했었다.
'알제리 전투'는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이지만, 리얼리티를 강조한 영화치고는 등장인물들은 실제와 다른 부분들이 있다. 마티유 대령은 당시 프랑스 공수 부대의 사령관인 Jacques Massu, Marcel Bigeard, Roger Trinquier를 합성한 캐릭터이다. '알제리 전투'에 등장하는 FLN의 지도자들 중 알리와 라비 벤 히디(Larbi Ben M'hidi)만 실제 인물들이다. 또한 '알제리 전투'에서는 영화의 마지막에 알리와 함께 폭사하는 하시바(Hassiba Ben Bouali, Fusia El Kader)가 미쉐레 거리의 카페테리아에, 자밀라(Djamila Bouhired)가 드슬리 거리의 밀크 바에, 조라(Zohra Drif)가 마우리타우니 빌딩의 프랑스 항공사에 폭탄을 설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사미아(Samia Lakhdari)라는 아랍 여인이 카페테리아에, 조라가 밀크 바에, 자밀라가 프랑스 항공사에 폭탄을 설치했다.
'알제리 전투'에서 출연진을 소개하는 영화 크레딧에 나오는 "작은 오마르(petit Omar)" - "petit"은 "작은"이란 뜻의 프랑스어이며, Mohamed Ben Kassen이 "작은 오마르"를 연기하고 있다. - 는 실제 인물인 야세프 오마르(Yacef Omar)의 별명으로, 알리와 함께 폭사할 당시 13살이었던 야세프 오마르는 야세프 사디의 친조카이다.
'알제리 전투'는 1957년, FLN 소속의 나이 든 반군 한 명이 프랑스 부대의 고문을 견디다 못해 FLN의 마지막 남은 지도자 알리의 은신처를 누설하고, 프랑스군이 알리의 은신처를 포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맹자이자 전과자인 알리가 FLN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과 함께,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한 FLN의 무장 독립 투쟁과, 프랑스군의 정치적 폭력 행위 등을 보여 준다.
1954년 11월 1일 FLN은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무장 독립 투쟁의 개시를 공포하고, 1956년 중반까지 거의 모든 알제리 민족주의 조직들이 FLN에 합세한다. FLN은 게릴라전과 테러의 방식으로 프랑스 경찰을 공격한다. 프랑스 경찰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카스바(Casbah)의 아랍인 동네에 폭탄을 설치해 무고한 사람들을 수없이 죽인다. 이에 맞선 FLN은 유럽인으로 가장한 아랍 여인 3명을 프랑스 방위 구역에 침투시켜 폭탄을 설치하고 쑥대밭을 만든다.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최정예 프랑스 공수 부대를 파견하고 잔혹한 고문을 통하여 FLN을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파괴해 나간다.
'알제리 전투'는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악순환 과정에서 희생된 무고한 민간인들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 프랑스 경찰이 카스바의 아랍인 동네에 설치한 폭탄으로 희생된 알제리인들을 애도하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FLN이 카페테리아와 밀크 바 - 프랑스 항공사에 설치한 폭탄은 고장으로 인해 터지지 않았다. - 에 설치한 폭탄으로 희생된 프랑스인들에게도 똑같이 애도를 표한다.
'알제리 전투'는 130년 동안의 프랑스 식민 통치에서 벗어난 알제리와, 실제로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한 FLN의 지도자가 제작한 영화인 만큼, 반식민주의적 주제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지만, 도덕적, 윤리적 시각에서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희생시키는 테러와 고문 등 비인간적인 모든 폭력 행위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알제리 전투'는 정치적 시각으로 영화를 볼 때는 누가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해석을 달리할 수 있는 논쟁적인 영화이다.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지미 브레슬린(Jimmy Breslin)은 1968년 TV에 출연해 '알제리 전투'는 "도시 게릴라전을 위한 훈련용 영화"라고 규정했다. 실제로 아일랜드 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 IRA)과, 1965년에 결성된 미국의 급진적인 흑인 운동 단체인 블랙 팬서(Black Panther, 흑표당)는 '알제리 전투'를 테러 활동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알제리 전투'에서 체포된 FLN의 지도자 벤 히디에게 기자가 여자들의 바구니와 손가방으로 폭탄을 운반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벤 히디가 대답한다. "네이팜탄으로 민간인 마을을 폭격해서 수천 명을 죽이는 것이 더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도 비행기가 있으면 우리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당신네 폭격기를 우리에게 주면 우리는 우리의 바구니를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한편, 2003년 9월 7일에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의 마이클 카우프만(Michael T. Kaufman) 기자는 이라크에서 테러 전술과 게릴라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펜타곤에서 '알제리 전투'가 40명의 장교와 민간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상영됐다고 보도했다. '알제리 전투'의 상영회를 안내하는 펜타곤의 전단지에 "어떻게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이념 전쟁에서는 패배했는가. ... 프랑스인들에게 계획은 있었다. 그것은 전술적으로는 성공하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다. 그 이유를 알려면 이 희귀한 영화의 상영회에 오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는데, 그 속에 숨겨진 펜타곤의 의도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고문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알제리 전투'에서 벤 히디의 의문의 죽음 이후에 열린 기자 회견에서 기자가 마티유 대령에게 고문의 불법성에 대해 질문하자, 마티유 대령이 대답한다. "... 공공장소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적법합니까? 전에 벤 히디가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여러분, 이것은 악순환일 뿐입니다. ... 문제는 FLN은 우리가 알제리를 떠나기를 원하고, 우리는 남기를 원합니다. 견해차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여러분 모두는 우리가 남는 것에 동의할 겁니다. 반란 초기에는 견해차조차 없었습니다. 모든 신문들이, 심지어 좌익 신문들도 반란을 진압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우리가 여기에 온 것입니다. 우리는 미치광이도 사디스트도 아닙니다. 우리를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자들은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레지스탕스에서 활약한 사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를 나치라고 부르는 자들은 우리들 중에 다하우(Dachau)와 부헨발트(Buchenwald)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군인이고 우리의 유일한 임무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하겠습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 남아야 합니까? 여전히 예라고 답한다면, 그것을 위해 수반되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알제리 전투'는 27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3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영화의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알제리 전투'가 보여 주는 프랑스군의 알제리인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잔인한 고문 장면들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영화의 배급을 금지시켰으며, 한국 정부 또한 과거 군사 정권 하에서 상영이 금지됐었다. '알제리 전투'의 음악을 담당한 엔니오 모리꼬네는 이 영화를 완성한 후, 유명한 한마디를 남겼다. "이 영화가 정치 영화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 이 영화의 음악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알제리 전투'에서 벤 히디가 알리에게 말한다. "테러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네. 전쟁도 혁명도. 테러는 초기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국은 민중이 스스로 움직여야 하네. ... 혁명은 일으키기도 어렵지만 유지시키기는 더욱 어렵네. 그리고 혁명을 성공시키기는 더더욱 어렵네. 하지만 가장 큰 어려움의 시작은 혁명을 성공시킨 후라네."
결국 벤 히디의 말대로 알제리는 테러가 아닌 알제리 민중의 봉기로 독립을 쟁취한다. 그리고 1962년 7월 2일 알제리는 독립을 쟁취하였으나 곧바로 FLN 내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난다.
'알제리 전투'는 영국 영화 연구소(British Film Institute, BFI)에서 간행하는 영화 전문 월간 잡지 'Sight & Sound'가 2022년에 발표한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The Greatest Films of All Time)"에서 45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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