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무대는 정신병원이다. 바다로 낚시하러 나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이야기는 정신병원 내에서만 이루어진다. 교도소보다는 정신병원이 편할거라 생각하고 미친 척 하여 교도소에서 정신병원으로 후송되는 맥 머피(Jack Nicholson). 하지만 엄격한 레취드 간호사(Louise Fletcher)에 의해 관리되는 정신병원은 모든 것이 불합리하게 통제되는 비인간적인 곳임을 깨닫게 되고, 결국 병원으로부터의 탈출을 결심한다. 영화의 무대와 스토리는 단순해 보이지만,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주인공들 간의 갈등 속에 내포되어 있는 영화의 주제는 대단히 심오하고 무겁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이라는 공간과 정신병원의 환자들을 통해, 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삶과 자유에 대한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상징성이 강한 작품이다. 정신병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레취드 간호사를 포함, 정신병원과 환자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이끄는 권력층을 상징하고, 맥 머피를 포함한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그 사회에 속해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레취드 간호사는 치료라는 명목으로 환자들을 관리하지만, 맥 머피에게는 그것은 환자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행되는, 환자들의 자유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보일 뿐이다. 거기에 길들여져 있는 환자들은 자기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거나 자신들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거나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속해 살고 있는 사회 체제의 모습과도 같다. 사회의 권력층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개인들을 다스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체제의 개선을 요구하거나 변화를 시도하는, 자기들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권력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이들은 바로 숙청의 대상이 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맥 머피도 환자들을 선도하여 병원의 권위에 도전하고 병원 내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전기 충격 치료를 받게 하고, 나중에는 아예 강제 뇌수술로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레취드 간호사 또한 영화에서는 환자들에게 악한 존재로 비춰지지만, 사실 레취드 간호사도 사회 체제 속의 구성원으로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다. 빌리(Brad Dourif)의 자살로 맥 머피가 레취드 간호사의 목을 조름으로서 레취드 간호사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지만, 이는 레취드 간호사 개인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병원이라는 체제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 체제 내에서 나타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의 갈등은 특정 개인들의 문제에서 파생된다라기보다는 사회 체제 내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체제의 생물학적인 특성과도 같은 것이다. 지배층을 형성하는, 또는 피지배층을 형성하는 구성원들이 바뀐다 하더라도 사회 체제 내에서의 이러한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 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 개인은 과연 인간적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맥 머피는 표면적으로는 문제아이지만 사실은 병원이라는 체제에 갇혀서 자신들을 잊고 사는 환자들에게 그것을 일깨워주는 계몽가이자, 체제의 개선과 변화를 요구하는 혁명가인 셈이다.
"But I tried, didn't I? God-damn it. At least I did that."
(그러나 난 시도라도 했어, 안 그래? 젠장, 적어도 시도는 해봤다고.)
맥 머피는 레취드 간호사가 월드시리즈 시청을 허락하지 않자, 다른 환자들을 선동하여 레취드 간호사의 권위에 반항하고 있다.
배를 타고 낚시를 하러 가기 전, 맥 머피가 자신을 포함하여 환자들을 정신과 의사들로 소개하는 이 장면은 그냥 웃고 지나치기에는 조금은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만큼은 환자들이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또 그렇게 보인다. 이 장면을 통해서 체제에 순응하며 사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생각하는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서, 체제 속의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거나 체제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단순히 정신병자로 취급하는 사회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는 듯하다. 더 웃기는 것은 이들이 이들을 정신병자들이라고 진단을 내린 정신과 의사들로 가장한다는 점이다. 이들을 단순히 정신병자들로 취급하는 사회의 권력층이나 특권계층을 오히려 정신병자들이라고 조롱하는 듯한 의도로 보인다.
맥 머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은 결국 실패했지만 그의 정신은 체제에 순응하는 척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숨기고 살아온 인디언 추장(Will Sampson)에게로 전이되어 맥 머피가 시도는 했지만 실패를 했던 자유를 향한 체제로부터의 탈출을 인디언 추장이 하게 된다. 영화 제목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결국 인디언 추장을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한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이다. 맥 머피 역의 잭 니콜슨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배우이고, 레취드 간호사 역의 루이스 플래쳐는 보는 관객들도 숨이 꽉 막힐 정도로 권위적인 모습의 연기를 훌륭하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환자 역으로 나오는 배우들도 각자 맡은 역이 상징하고 있는 사회 체제 속의 개인이나 집단의 특징에 걸맞는 명연기들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들인데, 빌리 비빗 역의 브래드 도리프는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 (The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2002)'에서 그리마 웜텅(Brad Dourif) 역으로, 마티니(Danny DeVito) 역의 대니 드비토는 '배트맨 2 (Batman Returns, 1992)'에서 펭귄(Danny DeVito) 역으로, 테이버(Christopher Lloyd) 역의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백 투 더 퓨쳐 (Back to the Future, 1985)'에서 괴짜 박사 에미트 브라운(Christopher Lloyd) 역으로 나온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It Happened One Night, 1934)'에 이어 두번째로 아카데미상 주요 5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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