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의 쾌감에의 중독은 강력하고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마약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크리스 헷지스"
지금까지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다룬 영화들은 많이 나왔다.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1930)'부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 (Platoon, 1986)',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까지. 이들 영화의 배경은 대부분 제1, 2차 세계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이었다. 여성 영화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연출한 '허트 로커'는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다룬 영화이다. '허트 로커'는 지금까지 나온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허트 로커'의 이야기는 간단하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폭발물을 처리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 EOD팀에 임무 수행 중 사망한 팀장 맷 톰슨 중사(Guy Pearce)의 후임으로 윌리엄 제임스 중사(Jeremy Renner)가 부임한다. 하지만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독단적인 임무 수행으로 팀원들을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뜨리고, 이로 인해 팀원인 JT 샌본 하사(Anthony Mackie)와 오웬 엘드리지 상병(Brian Geraghty)과 갈등을 빚는다. '허트 로커'는 전투의 쾌감에 중독된 듯한 윌리엄 제임스 중사의 무모한 임무 수행과, 이로 인해 생기는 EOD 팀원들의 갈등 속에서 이들이 느끼는 극도의 긴장감과 전쟁의 공포, 광기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허트 로커"는 군대 속어로 심각한 부상을 의미하는데, 영화에서는 외상보다는 정신적 외상을 의미하고 있다. '허트 로커'의 등장 인물들은 전쟁 속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오웬 엘드리지 상병은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전투 경험이 없는 군의관 존 캠브리지 대령(Christian Camargo)은 이러한 오웬 엘드리지 상병을 이해하지 못한다.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아예 초월한 듯하다. 그의 행동은 투철한 군인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는 광기에 가깝다. 전장에서는 그토록 저돌적이었던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미국으로 돌아와 슈퍼마켓에서 시리얼을 고르는 데는 주저하는, 평범한 생활에는 적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허트 로커'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리드 대령(David Morse)이다. 부상 당한 사람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윌리엄 제임스 중사를 광적으로 영웅화하는 리드 대령의 광기 어린 모습은 '지옥의 묵시록'에서 눙강 입구의 베트콩 마을을 공습하는 와중에도 서핑을 즐기려는 미친 킬고어 중령(Robert Duvall)을 연상시킨다.
'허트 로커'는 핸드 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 촬영 기법을 이용한 다큐멘터리와 같은 촬영으로 긴장감이 감도는 전장의 분위기를 리얼하게 묘사하여 EOD 팀원들이 전장에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폭파 장면에서는 최첨단 슬로우 촬영 기법으로 모래알이 하나하나 튀어 오르는 정교한 모습을 담아내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윌리엄 제임스 중사가 땅 속에 묻혀 있던 전선을 잡아당기자 땅 속에 묻혀 있던 포탄들이 드러나는 장면은 윌리엄 제임스 중사뿐만이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허트 로커'는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다룬 이야기 속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넌지시 비판하고 있다.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몸 속에 폭탄이 설치된 채 처참하게 죽은 소년을 발견한다. 죽은 소년을 평소 가깝게 지내던, DVD를 팔고 축구를 좋아하던 베컴(Christopher Sayegh)으로 오인한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분노한다.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베컴을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부대를 무단이탈하고, 베컴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 가정집에 무단 침입한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그린존에 있는 기름 탱크를 폭발한 범인을 잡겠다고 팀원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평소처럼 자신에게 다가온 베컴을 본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지난밤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들이 무안했는지 베컴을 애써 외면한다. 부상을 당하고 후송되는 오웬 엘드리지 상사가 윌리엄 제임스 중사에게 말하는 대사는 경솔하게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당신의 아드레날린을 위해 우리가 그 난리에 뛰어들 필요가 없었어, 씨발놈아."
윌리엄 제임스 중사를 연기한 제레미 레너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허트 로커'는 명품 조연들의 등장으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데, 가이 피어스가 맷 톰슨 중사 역으로, 랄프 파인즈가 용병 팀 리더(Ralph Fiennes) 역으로, 데이빗 모스가 리드 대령 역으로 등장한다.
'허트 로커'는 전 세계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 '아바타 (Avatar, 2009)'와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과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바타'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한때 부부 사이였기 때문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전남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을 제치고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허트 로커'는 '아바타'를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첫 여성 영화감독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허트 로커'는 9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등 6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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