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음악상의 5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는 아주 특이한 영화이다. '아티스트'는 3D 영화들이 점령한 21세기에 만들어진 흑백 무성 영화이다. '아티스트'의 화면도 흑백 무성 영화 시대의 흑백 무성 영화 화면의 첫 규격이었던 1.33:1 포맷의 화면으로 되어 있다. '아티스트'는 1929년에 열린 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흑백 무성 영화 '날개 (Wings, 1927)'에 이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두 번째 흑백 무성 영화이다.
'아티스트'는 프랑스 영화감독인 미셸 아자니비슈스 감독이 연출하고, 프랑스 배우들인 장 뒤자르댕과 베레니스 베조가 영화의 두 남녀 주인공인 조지 발렌타인(Jean Dujardin)과 페피 밀러(Berenice Bejo) 역으로 출연하는 프랑스 영화이다. 하지만 '아티스트'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은 미국 할리우드 배우들인데, 존 굿맨이 영화 제작자인 알 짐머(John Goodman) 역으로, 제임스 크롬웰이 조지의 수행 비서 클리프턴(James Cromwell) 역으로, 페넬로페 앤 밀러가 조지의 아내 도리스(Penelope Ann Miller) 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부에 말콤 맥도웰도 잠깐 출연한다.
개인적으로 흑백 영화를 참 좋아한다. 흑백 영화는 지극히 영화적이다. 아무리 영화의 이야기가 현실성 또는 사회성이 짙은 영화라 하더라도 현실 세계와는 다른 흑백 화면 자체가 컬러 화면에 익숙한 현대의 관객들에게는 환상적인 이미지를 전달한다. 미셜 아자니비슈스 감독은 흑백 영화의 이러한 특성을 조지와 페피의 매혹적인 러브 스토리와 결합하여 '아티스트'를 정말 동화와도 같은 환상적인 영화로 만들었다.
물론 '아티스트'는 흑백 영화일뿐만 아니라 무성 영화이다. 무성 영화 시대에 나온 무성 영화들은 유성 영화에 익숙한 현대의 관객들에게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다르다. 기술적인 문제로 아예 소리를 낼 수 없었던 무성 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답답한 무성 영화들과는 달리, 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유성 영화 시대에 의도적으로 무성 영화로 만들어진 '아티스트'는 한껏 유연함을 보여준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 유성 영화를 거부하고 무성 영화를 고집하는 무성 영화배우 조지가 소리에 관한 악몽을 꾸는 장면이다. 이렇게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한 무성 영화 '아티스트'는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동안 가끔씩 '아티스트'가 무성 영화라는 사실을 잊게끔 만들 정도다.
'아티스트'에서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무성 영화배우 조지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키워가는 페피처럼, 이제는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진 무성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남몰래 키워온 미셜 아자니비슈스 감독은 조지와 페피의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통하여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무성 영화가 설 자리를 잃어 버렸던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반까지의 대격변기의 할리우드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오늘날 영화를 있게 한 무성 영화를 예찬하고 있다. '아티스트'를 보면 유성 영화의 등장과 무성 영화의 쇠퇴를 암시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그 대표적인 장면이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된 무성 영화배우 조지와, 유성 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인 여배우 페피가 계단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계단을 올라가는 페피와 계단을 내려가는 조지를 통해 당시 유성 영화 시대의 도래와 무성 영화의 쇠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된 조지는 실의에 빠진다. 신인 시절에 조지의 영화에 출연하며 조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던 페피는 유성 영화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인기 스타가 된 뒤에도 조지에 대한 사랑을 남몰래 키워간다. 조지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페피는 실의에 빠진 조지를 설득하여 함께 뮤지컬 영화를 찍고 조지의 재기를 돕는다. 실제로 1920년대 말 당시 무성 영화는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설 자리를 잃어 버렸지만, 그렇다고 무성 영화가 흔적도 없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유성 영화는 소리를 제외하면 무성 영화의 영화 형식을 많은 부분 그대로 차용하였다. 유성 영화는 무성 영화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것이다. 또한 무성 영화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당시 유성 영화 시대의 도래와 함께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뮤지컬 영화는 바로 춤이라는 이미지와, 유성 영화의 등장으로 가능해진 음악이라는 소리의 결합으로 탄생한 영화 장르이다.
'아티스트'에서 꼭 말로 하는 연기가 아니더라도 표정과 몸짓 연기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조지 발렌타인 역의 장 뒤자르댕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장 뒤자르댕은 칸 영화제에서도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페피 밀러 역의 베레니스 베조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아티스트'는 출연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영화 전편에 흐르는 음악도 인상적인 영화이다. '아티스트'의 음악을 담당한 루도빅 부르세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도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페피가 자신을 몰래 도운 사실을 알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조지가 페피의 집을 나와 길을 걷는 장면에서부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 (Vertigo, 1957)'에서 나온 버나드 허먼의 'Scene d'Amour'가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데, 미셜 아자니비슈스 감독의 옛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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