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는 작품상과 감독상, 각색상, 3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로맨틱 전쟁 멜로드라마 영화이다. '카사블랑카'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들 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이며,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에서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에 이어 2위를, 새로이 선정한 2007년 10주년 기념판에서는 '시민 케인', '대부 (The Godfather, 1972)'에 이어 3위를 차지한 영화이다.

난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보고 또 봤다. 아니 보고 또 보게 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영화를 처음부터든 중간부터든 일단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게 만든다. 한마디로 중독성이 아주 강한 영화이다. 사실 영화 기술적인 면에서 관객들을 끌 만한 뛰어난 영상미가 있는 영화도, 이야기가 참신한 영화도 아니다. 더군다나 영화 제작 과정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계획 없이 막 만든 영화이다. 크랭크 인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아, 영화 촬영 진행 중에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그나마 만들어진 시나리오도 촬영하면서 매번 수정되어,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출연 배우들이 일자(Ingrid Bergman)가 라즐로(Paul Henreid)와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지, 아니면 릭(Humphrey Bogart)과 카사블랑카에 남게 되는지조차 몰랐다. 또한 영화의 이야기 무대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이지만, 영화 초반부의 독일군 소령 스트라세(Conrad Veidt)가 도착하는 공항 장면 - 이 장면은 LA 인근의 작은 공항에서 촬영되었다 - 만을 제외하고는 영화의 전 촬영이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으며, 심지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의 공항도 스튜디오에 설치된 세트인데, 이 장면에서 나오는 비행기는 마분지로 만든 모형 비행기이며, 실제보다 훨씬 작은 모형 비행기의 크기를 감추기 위해 비행기 주위에 있는 정비사들로 난쟁이 엑스트라들을 기용하였다. 안개는 이런 세트의 조잡함을 숨기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이런 무계획적이고 임기 응변식의 조잡한 영화 제작 환경에서 오늘날까지도 최고의 명화로 평가받고 있는 영화가 만들어진 건 거의 기적과도 같은 우연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Play it, Sam. Play 'As Time Goes By'."

(연주해줘요, 샘. 'As Time Goes By'를요.)

 

중립국인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를 피해 자유의 땅 미국으로 가기 위해 비자를 기다리는 유럽 피난민들로 넘쳐났다.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인 릭. 어느날 역시 미국으로 가기 위해 카사블랑카로 온 릭의 옛 연인 일자와 그녀의 남편인 레지스탕스 리더 라즐로가 릭의 카페를 찾는다. 일자를 아직 잊지 못한 릭은 일자에 대한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과 중요 인사인 라즐로를 구해야 된다는 대의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일자 또한 잊은 줄 알았던 릭을 다시 보자 아직도 릭을 잊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릭과 라즐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미국행 비자를 구하지 못해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릭과 일자 사이를 눈치챈 라즐로는 일자의 안전을 위해 릭에게 일자와 함께 카사블랑카를 떠나 일자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한다.

"Here's looking at you, kid."

(당신을 바라보며.)

 

리차드,

당신과 같이 갈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없어요.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믿어줘요.

잘가요, 내 사랑, 그리고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일자

 

영화의 스토리만을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전형적인 삼각 관계의 삼류 멜로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남녀 사이의 그렇고 그런 스토리의 삼류 영화로 치우치지 않은 건, 일자, 릭, 라즐로의 사랑의 삼각 관계 이야기에 정치적 대립과 애국에 관한 이야기 - 대표적인 예로 이 영화의 압권인 라즐로가 릭의 카페에서 독일군이 부르는 'Die Wacht am Rhein'에 맞서 프랑스 국가 'La Maseillaise'를 부르는 장면은 자유 프랑스와 나찌 독일의 대립을 상징하고 있다 - 와 마지막 반전의 묘미까지 가미되어 영화 전체 스토리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은 영화의 스토리를 짜임새 있고 자연스럽게 전개시키고 있는데, 특히 릭의 파리 시절 회상 장면을 영화의 중간에 삽입한 구성은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이음매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이 장면들에서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다.

남편을 따라 떠나라고 일자를 설득하고 있는 릭의 표정에는 일자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고 있는 마음이 역력하다. 이런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은 여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일자는 릭과의 행복했던 파리 시절 릭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을 헤어지기 직전 릭으로부터 또다시 마지막으로 듣게 되는 순간, 아직도 변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릭의 진실한 사랑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Here's looking at you, kid."

 

'카사블랑카'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위험까지 감수한 진정한 로맨티시스트이자 트렌치 코트가 어울리는 멋진 사나이 릭을 연기한 험프리 보가트와 남자라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소녀의 청순미와 여인의 성숙미를 함께 갖춘 일자를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만의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이다. 그리고 클로드 레인즈가 연기한 르노 서장(Claude Rains)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영화 초반부에서는 다소 냉소적이고 기회주의자로 비춰지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스트라세 소령을 죽인 릭을 구해줌으로서 그 또한 로맨티시스트이자 애국자의 모습을 보여 준다 - 영화 마지막에 르노 서장이 비시 워터(Vichy Water) 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비시 워터는 당시 나찌 독일의 편에 선 비시 프랑스(Vichy France)를 상징하고 있다.

"Louis, I think this is the beginning of a beautiful friendship."

(루이, 이것으로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 될 것 같군.)

 

'카사블랑카'에서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영화에서 샘(Dooley Wilson) 역을 맡은 둘리 윌슨이 부르는 노래 'As Time Goes By'이다. 원래 Herman Hupfeld이 1931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Everybody's Welcome (1931)'을 위해 작곡한 노래인데, '카사블랑카'에 삽입된 후로 거의 이 영화의 주제곡처럼 되어 버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음악으로 유명한 맥스 스테이너는 '카사블랑카'에서 영화의 극적 분위기에 맞게끔 여러가지 다른 분위기로 편곡한 'As Time Goes By'를 들려주고 있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