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예계의 이면을 다룬 비슷한 두 편의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두 편 중 어느 영화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이 주어지더라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두 편 모두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들이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바로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의 '이브의 모든 것'과, '이브의 모든 것'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빼앗긴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 (Sunset Blvd., 1950)'이다.
이 두 영화에는 한물가는 것이 두려운 늙어가는 여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배우가 주인공 역을 맡아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 준다. '이브의 모든 것'의 마고 체닝(Bette Davis)을 연기한 베티 데이비스와, '선셋 대로'의 노마 데스먼드(Gloria Swanson)를 연기한 글로리아 스완슨은 나란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둘 다 수상은 하지 못한다 - '이브의 모든 것'에서 이브 해링턴(Anne Baxter)을 연기한 앤 백스터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정작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빌리의 새 아침 (Born Yesterday, 1950)'의 주디 홀리데이가 가져간다.
"Fasten your seatbelts. It's going to be a bumpy night."
(안전벨트 단단히 매요. 험한 밤이 될 테니까.)
'이브의 모든 것'은 이브 해링턴이라는 여배우가 연극계의 최고상인 사라 시든상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이 상을 받기까지의 이브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준다. '이브의 모든 것'의 이야기는 이브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연극 평론가, 에디슨 드윗(George Sanders)과, 극작가인 로이드 리차드(Hugh Marlowe)의 아내이자 유명한 연극 배우인 마고의 절친한 친구, 카렌(Celeste Holm), 그리고 마고, 이 세 사람의 시점과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마고의 공연이 있던 10월의 어느 날 밤, 카렌은 무대 뒤편에서 마고의 열렬한 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젊고 아름다운 이브를 만난다. 그리고 이브를 마고에게 소개시켜 준다. 이브는 마고와 마고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불행했던 삶과, 자신의 삶에 마고가 출연하는 연극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이브의 이야기에 감동 받은 마고는 이브를 자신의 비서로 있게 한다. 마고의 비서가 된 이브는 마고의 일거수 일투족을 연구하고, 겸손과 비애를 가장한 적당한 연기로 마고의 주변 사람들의 동정을 끌어낸다. 이브에게 동정을 느낀 카렌은 제멋대로인 마고를 골려도 줄 겸, 마고와 같은 연극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브에게 마고의 대역으로 연극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마고를 극장에 가지 못하게 차 안에 가두어 놓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이브는 마고의 하녀인 버디(Thelma Ritter)를 자리에서 밀어내더니, 마침내 마고의 대역 배우가 되어 마고의 자리까지 넘본다.
이브는 에디슨으로 하여금 마고에 대한 좋지 않은 평론을 쓰게 하고, 카렌을 협박해 로이드가 쓴 새 연극의 주인공 역을 차지한다. 또한 마고의 애인이자, 연극 감독인 빌 샘슨(Gary Merrill) - 빌 샘슨 역의 개리 메릴은 베티 데이비스의 실제 남편이다 - 을 유혹하고, 빌이 유혹에 넘어오지 않자, 카렌의 남편인 로이드까지 유혹한다. 이브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모든 계략을 꾸미는 동안, 이브의 모든 계략을 알게 된 에디슨은 이를 이용해 이브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나름의 계략을 꾸민다.
'이브의 모든 것'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바로 미국의 대표적인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이다. 당시 신인 배우나 다름없었던 그녀는 '이브의 모든 것'에서도 신인 배우인 카스웰(Marilyn Monroe) 역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그녀의 명성만큼이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녀의 자태는 잠깐동안이지만 관객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었다.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은 '세 부인 (A Letter to Three Wives, 1949)'에 이어 '이브의 모든 것'으로 감독상과 각본상의 2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2년 연속 수상한다. 조셉 L. 맨키비츠 감독의 형은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의 각본을 써,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허먼 J. 맨키비츠이다.
'이브의 모든 것'은 12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에서 14개의 후보를 냈는데, 1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에서 14개의 후보를 낸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 (Titanic, 1997)'과 더불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후보를 낸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이브의 모든 것'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만 5명의 배우들의 이름을 올렸다. 베티 데이비스와 앤 백스터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카렌 역의 셀레스트 홈과 버디 역의 델마 리터가 여우조연상 후보에, 그리고 에디슨 역의 조지 샌더스가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결과는 조지 샌더스만 수상했다. '이브의 모든 것'은 작품상을 포함, 6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이브는 결국 사라 시든상을 받고 연극계 최고의 스타가 된다. 이브가 마고와의 대결에서 승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사실상의 승자는 마고였다. 한때 마고도 젊고 아름다운 이브에게 질투도 하고,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이브에게 배신감도 느끼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 아마도 카렌의 장난으로 차에 갇혀 있었던 때부터 -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고, 언젠가는 물러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마고는 빌과의 결혼을 알리는 자리에서 로이드에게 새 연극의 주인공 역을 맡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마고는 빌의 사랑을 얻음과 동시에 진정한 스타로 남은 것이다. 반면 이브는 자신이 바라던 꿈을 이루었으나, 많은 것들을 잃었다. 자신을 동정해준 친구들도 잃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자신의 것이 아닌 에디슨의 것이었다. 그녀에게 남겨진 건 그녀의 자리를 넘보는 또 다른 이브뿐이었다.
'이브의 모든 것'의 마지막 장면은 '선셋 대로'의 마지막 장면만큼이나 섬뜩하다. 이브의 집에 몰래 들어온 또 다른 이브, 피비(Barbara Bates)가 이브가 받은 사라 시든상을 들고 거울 앞에서 이브가 되는 꿈을 꾸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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