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들 중 '분노의 포도'처럼 대공황 당시의 비참한 현실을 진지하게 다룬 영화는 극히 드물었다.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대공황의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코미디나 모험, 또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들을 담은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레스턴 스터지스 감독이 자신이 코미디 영화를 만드는 것을 가치롭게 여기면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진지한 영화를 만드는 다른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의 허세를 풍자하는 코미디 영화 '설리반의 여행 (Sullivan's Travels, 1941)'에서는 '분노의 포도'를 그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분노의 포도'는 원작자인 존 스타인벡에게 퓰리처상과, 1962년에는 노벨 문학상까지 안겨 준 동명의 소설을 존 포드 감독이 영화화한 영화이다. '분노의 포도'는 존 포드 감독에게는 '밀고자 (The Informer, 1935)'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 주었다 - 존 포드 감독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와 '말 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 더 수상한다.
소작농의 아들 톰 조드(Henry Fonda)는 살인죄로 4년을 복역한 후 가석방되어 오클라호마의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집은 비어 있고, 이웃이었던 뮬리(John Qualen)로부터 가족들이 땅에서 쫓겨나 2주 전에 백부 존(Frank Darien)의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음날 아침 백부의 집으로 간 톰은 가족들과 상봉하지만 상봉의 기쁨도 잠시, 백부 또한 땅에서 나가야 할 처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졸지에 길거리에 나앉은 조드 일가는 일거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이들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안고 캘리포니아로 향하지만, 정작 캘리포니아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착취와 폭력, 그리고 계속되는 굶주림뿐이다.
'분노의 포도'의 촬영을 담당한 그레그 톨랜드는 '분노의 포도'를 찍기 1년 전에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1939)'을 찍고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였으며, 1년 후에는 딥 포커스(deep focus)라는 촬영 기법으로 유명한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을 찍었다. 그레그 톨랜드는 '분노의 포도'에서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의 촬영과 다큐멘터리 같은 화면으로 대공황 당시의 어둡고 우울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장면이 조드 일가의 트럭이 캘리포니아 주경계 근처의 임시 야영지로 들어서면서 임시 야영지에 머물고 있는 생기가 없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분노의 포도'는 다분히 정치적인 영화이다. 존 포드 감독은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영화감독인데, '분노의 포도'는 철저히 좌파적인 성향의 영화이다. '분노의 포도'는 술에 취해 싸움이나 하고 살인까지 저지른 전과자인 톰이 어떻게 해서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기로 결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톰은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고 사회의 불평등을 체험한다. 한때는 설교자였으나 파업을 주도하다 죽은 캐시(John Carradine)의 영향으로 톰은 새로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다. 톰이 가족들을 떠나기 직전에 엄마(Jane Darwell)에게 말한다. "우리들 생각도 해봤어요. 돼지들처럼 사는 우리들과, 묵히고만 있는 기름진 넓은 땅, 10만의 농민들은 굶고 있는데 백만 에이커를 소유한 부자를 생각해 봤죠. 그리고 만약 우리가 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낸다면...."
그리고 '분노의 포도'에서 유명한 톰의 대사가 나온다. "저는 어둠 속에 있을 겁니다. 저는 엄마가 보는 곳에 있을 겁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끔 싸우는 곳에 제가 있을 겁니다. 사람을 때리는 경찰이 있는 곳에 제가 있을 겁니다. 저는 사람들이 화가 나 고함을 지르는 데에도, 아이들이 배고플 때면 저녁을 먹고 웃는 데에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가 키운 곡식을 먹고,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사는 그때에도 제가 있을 겁니다."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서민들은 순수하고 인정이 넘친다. 소작농들은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를 정도로 순수하다. 뮬리의 회상 장면에서 뮬리를 찾아온 남자(Adrian Morris)가 뮬리에게 땅이 쇼니 랜드 앤 캐틀 컴퍼니의 소유라고 하자 뮬리가 묻는다. "쇼니 랜드 앤 캐틀 컴퍼니가 누구요?" 그러자 남자가 대답한다. "그건 사람이 아니오. 회사지."
아빠(Russell Simpson)가 어린 두 아이들, 윈필드(Darryl Hickman)와 루디(Shirley Mills)를 데리고 할머니(Zeffie Tilbury)의 빵을 사러 주유소 옆 간이식당에 들어온 장면은 인정이 넘치는 유명한 장면이다. 아이들이 사탕이 먹고 싶어 진열대에 있는 사탕을 바라보고 있자 아빠가 여종업원(Kitty McHugh)에게 묻는다. "1센트짜리 사탕인가요?"
그러자 여종업원이 대답한다. "오, 저거요? 그러니까, 어, 아뇨, 두 개에 1센트입니다."
아빠와 아이들이 나가자 간이식당에 있던 트럭 운전수(William Pawley)가 여종업원에게 말한다. "두 개에 1센트짜리 사탕이 아니잖아요....한 개에 5센트짜리 사탕이잖아요."
그리고 트럭 운전수는 자신의 밥값을 낼 때 아이들의 사탕값까지 내고 나간다.
반면에 농장주들은 노동자들의 궁핍한 처지를 이용해 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러한 부당한 대우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에게 경비원들로 하여금 폭력을 휘두르게 하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경찰과 결탁하여 이들을 분쇄하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분노의 포도'의 원작 소설은 아이를 잃은 톰의 여동생 로사샴이 굶주린 남자에게 자신의 젖을 빨게 하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물론 당시에 이 충격적인 장면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대신 '분노의 포도'는 또다시 일거리를 찾아 떠나는 조드 일가의 트럭 안에서 엄마가 하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원작 소설보다는 훨씬 희망적으로 끝난다. "부자들은 나타나서 사라지죠.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은 쓸모가 없는데다, 이들 또한 사라지죠. 하지만 우리는 계속 나타날 거예요. 우리는 살아 있는 민중이죠. 우리를 없애지도, 꺽지도 못하죠. 우리는 계속 나아갈 거예요. 우리는 민중이니까요."
대공황이 끝난 지 약 7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사회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분노의 포도'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도 '분노의 포도'는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절규, 희망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이러한 이유로 '분노의 포도'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에서는 21위를, 새로이 선정한 2007년 10주년 기념판에서는 23위를 차지할 정도로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영화로 남아 있다.
'분노의 포도'는 작품상을 포함하여 7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감독상, 여우조연상의 2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톰 조드를 연기한 헨리 폰다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고, 엄마를 연기한 제인 다웰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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