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년 전 영국 요크셔의 메마른 황야에 주변의 황무지만큼이나 음침하고 쓸쓸한 저택이 있었다.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만이 감히 문을 두드릴 것만 같은 이 "폭풍의 언덕"의 주인인 히스클리프(Laurence Olivier)의 또 다른 저택에 새로 들어온 세입자 록우드(Miles Mander)가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 길을 잃고 "폭풍의 언덕"에 당도한다. 눈보라 때문에 "폭풍의 언덕"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록우드는 이층의 옛 신부 방에 머물게 된다. 바람으로 인해 덧문이 창문틀에 부딪히는 소리에 잠을 깬 록우드는 덧문을 닫기 위해 깨진 유리창으로 손을 내미는 순간, 차고 얼음 같은 손이 자신의 손을 만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한 여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히스클리프, 날 들여보내 줘요. 황야에서 길을 잃었어요. 나예요, 캐시."

마치 유령을 본 듯 소스라치게 놀란 록우드는 히스클리프에게 자신이 들은 여인의 목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록우드의 이야기를 들은 히스클리프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그 여인을 찾아 눈보라가 몰아치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가정부 엘렌(Flora Robson)은 의아해 하는 록우드에게 히스클리프와, 이미 세상을 떠난 캐시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폭풍의 언덕"의 옛 주인 언쇼(Cecil Kellaway)는 리버풀에서 집 없는 가엾은 집시 소년 히스클리프(Rex Downing)를 "폭풍의 언덕"으로 데리고 온다. 히스클리프와 언쇼의 딸 캐시(Sarita Wooten)는 다정한 오누이 사이가 되지만 언쇼의 아들 힌들리(Douglas Scott)는 히스클리프를 몹시 경멸한다. 세월은 흘러 성인이 된 히스클리프와 캐시(Merle Oberon)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되지만, 상류 사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캐시는 부유한 이웃 에드가(David Niven)와 어울리고, 이에 상처를 받은 히스클리프는 "폭풍의 언덕"을 떠나 미국으로 간다.

결국 캐시는 에드가와 결혼한다. 부자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경멸한 힌들리(Hugh Williams)에 대한 복수로 힌들리가 도박과 술로 파산 직전이라는 것을 이용해 "폭풍의 언덕"을 사들이고, 이윽고 에드가의 동생인 이사벨라(Geraldine Fitzgerald)와 결혼하여 이사벨라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캐시에 대한 복수의 도구로 이용한다.

'폭풍의 언덕'은 에밀리 브론테의 동명의 고전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영화화한 영화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친언니는 또 다른 고전 '제인 에어 (Jane Erye)'를 쓴 샬롯 브론테인데, 두 사람이 자매 사이라는 이유로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이 자주 비교되어지곤 했다. 19세기 후반까지는 '제인 에어'가 '폭풍의 언덕'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었지만 '폭풍의 언덕'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폭풍의 언덕'이 좀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아마도 '폭풍의 언덕'이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격정적인 사랑과, 증오, 복수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좀더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워낙 오래 전에 읽어서 지금은 두 소설의 이야기가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소설을 읽었을 당시 '폭풍의 언덕'보다, 표면상 이야기가 좀더 드라마틱한 '제인 에어'를 더 좋아했었다.

소설을 영화화할 때 광대한 분량의 소설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영화화를 위해 원작 소설을 어떻게 각색하느냐가 중요한데, 같은 소설을 각색한 영화라 하더라도 어떻게 각색했느냐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가 서로 달라질 뿐만 아니라, 원작과도 다른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와 캐시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좀더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 때문에 원작에서는 악랄해 보이기까지 하는 히스클리프의 이미지가 영화에서는 많이 누그러져 있는 편이다. 당연히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의 깊이도 없어졌다. 원작에서 히스클리프는 언쇼가 죽자 자신을 하인처럼 부리며 학대한 힌들리에 대한 복수로 힌들리가 죽자 힌들리의 아들을 하인처럼 부리며 학대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캐시와 에드가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이사벨라뿐만이 아니라 이사벨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마저 복수의 도구로 이용한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모두 빠져 있다.

'폭풍의 언덕'은 원작의 분위기를 완전히 살려내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폭풍의 언덕'이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폭풍의 언덕'이 나온 1939년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최고의 해라 불릴 만큼 수많은 명화들이 쏟아진 해인데, 역시 소설을 영화화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도 1939년에 나온 영화이다. '폭풍의 언덕'은 테크니컬러로 촬영한 엄청난 스케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그늘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영화의 작품성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고전이 원작이라는 점과 흑백 화면으로 인해 훨씬 고풍스럽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폭풍의 언덕'은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촬영을 담당한 그레그 톨랜드가 아카데미 촬영상만 수상했다. 히스클리프를 연기한 로렌스 올리비에와 이사벨라를 연기한 제랄딘 피츠제럴드는 각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둘 다 수상은 하지 못했다. 캐시를 연기한 멜 오베론의 연기도 인상적이며, 데이빗 니븐이 에드가를 연기하고 있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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