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 (Psycho, 1960)'는 5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무섭다. '싸이코'가 여전히 최고의 공포 영화로서, 영화로부터 공포를 만끽하고 싶어 하는 공포 영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나도 유명한 장면인 마리온 크레인(Janet Leigh)이 샤워 도중에 난도질 당하는 장면 때문일까? 물론 이 장면은 지금 보아도 끔찍하기는 하지만 이 장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싸이코'가 모태가 되어 쏟아져 나온, 이른바 슬래셔 영화(slasher film)라고 불리는 공포 영화들에서는 이보다 더 끔찍한 장면들이 더 많이 나오지만, 슬래셔 영화들은 공포 영화 팬들로부터 일찌감치 외면을 당했다. 슬래셔 영화들이 일찌감치 외면을 당한 이유는 살인마의 이유 없는 난도질과 희생자들의 피만 화면에 가득한 슬래셔 영화들의 비현실적인 살인마 캐릭터와 영화의 이야기 때문이다.

'싸이코'에 등장하는 인간 괴물, 노먼 베이츠(Anthony Perkins)는 평소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이상 성격의 살인마가 된 것은 어렸을 때 부친을 잃은 후의 모친의 왜곡된 사랑과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로 인한 외로움 때문이었다. 노먼 베이츠는 인간 세상이 낳은 기형아인 셈이다. 관객들은 평범한 젊은이의 모습과 살인마의 모습을 함께 지닌 노먼 베이츠에 대한 공포와 함께, 노먼 베이츠와 같은 이상 성격의 살인마들을 낳는 인간 세상에 대한 공포까지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도 공포를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 '싸이코'가 여전히 무서운 이유, 여전히 공포 영화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싸이코'와 같은 영화 장르에서, '싸이코' 이후 최고의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 '양들의 침묵'에서는 '싸이코'의 노먼 베이츠보다도 더 무서운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Anthony Hopkins)가 등장한다.

"A census taker once tried to test me.

I ate his liver with some fava beans and a nice Chianti."

(한 인구 조사원이 날 조사하려던 적이 있었어.

난 그의 간을 잠두와 좋은 치안티 한 잔과 함께 먹었지.)

 

렉터 박사가 노먼 베이츠보다도 더 무서운 건 이 식인 살인마가 사회의 지식층인 정신과 의사라는 점이다. 렉터 박사 또한 인간 세상이 낳은 인간 괴물이다. 영화에서는 렉터 박사의 과거가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렉터 박사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했고, 일찍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여러 정황들이 클라리스 스탈링(Jodie Foster)과의 대화와 그녀에게 느끼는 렉터 박사의 감정 속에 숨겨져 있다. 렉터 박사는 스탈링에게, 어렸을 때 모친을 여의고 마을의 보안관이었던 부친(Jeffrie Lane)마저 강도들에게 잃고서 고아가 된 어린 스탈링(Masha Skorobogatov)을 맡아준 모친의 사촌 부부로부터 두 달만에 도망을 친 이유가 대뜸 성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냐고 묻는다. 렉터 박사는 어렸을 때 양친을 잃고 일찍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한 스탈링에게 동정을 느낀다. 렉터 박사 자신도 어렸을 때 일찍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당했기 때문이다.

FBI 훈련생, 스탈링은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거의 모든 남자들로부터 음흉한 시선을 받는다. 그녀가 탄 엘리베이터 안의 건장한 남자들부터, 그녀의 상관인 잭 크로포드(Scott Glenn), 교도관 프레드릭 칠튼 박사(Anthony Heald), 미치광이 미그스(Stuart Rudin), 웨스트버지니아의 장의사에서의 보안관들, 곤충학자 필쳐(Paul Lazar), 워싱턴의 공항에서 스탈링 옆을 지나가는 한 남자, 그리고 살인마 "버팔로 빌"(Ted Levine)까지, 마치 온 세상이 그녀를 음흉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그녀에게 세상은 공포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왔다. 스탈링의 관점에서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다.

공포 영화에서 음악과 효과음은 관객들이 느끼는 공포를 극대화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싸이코'에서 마리온 크레인이 샤워 도중에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비명을 질러대게 만들었다. '양들의 침묵'에서는 간단한 효과음으로 관객들을 기절초풍시키는 장면이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장의사에서 스탈링은 시체의 목구멍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한다. 시체의 목구멍으로부터 나방의 고치로 보이는 물체를 꺼낼 때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마치 그동안 나방의 고치가 목구멍을 막고 있어 숨을 쉬지 못한 듯, 나방의 고치를 꺼내자 마자 시체가 다시 숨을 내쉬는 듯하다. 또한 영화 전반에 흐르는 하워드 쇼어의 음침한 음악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렉터 박사 역의 안소니 홉킨스와 스탈링 역의 조디 포스터는 소름 끼칠 정도의 완벽한 연기를 보여 준다. 안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는 각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토마스 해리스의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양들의 침묵'의 각본을 쓴 테드 탤리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연출을 맡은 조나단 드미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양들의 침묵'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It Happened One Night, 1934)'과 밀로스 포먼 감독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에 이어 세 번째로 아카데미상 주요 5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이다. 지금까지 아카데미상 주요 5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는 이 세 편 뿐이다.

식사를 가지고 온 두 경찰관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을 감상하고 있는 렉터 박사를 보여 주는 장면은 섬뜩하다. 렉터 박사가 탈출하는 장면과, "버팔로 빌"의 집이 아닌 엉뚱한 집을 습격하는 잭 크로포드와 "버팔로 빌"의 집을 찾아가는 스탈링을 교차 편집하여 보여 주는 장면, 그리고 "버팔로 빌"의 집 어두운 지하실에서 "버팔로 빌"이 쓴 야간 투시경을 통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스탈링을 보여 주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공교롭게도 '양들의 침묵'이 나온 1991년에 미국을 공포와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7명을 살해한 식인 살인마,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가 밀워키에서 체포되었다. 체포 당시 그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잘려진 팔과 다리, 머리, 성기, 그리고 해골들이 냉장고와 옷장에서 발견되었다.

제프리 다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젊은이였다. 제프리 다머가 체포되기 두 달 전, 제프리 다머로부터 살해 당하기 직전에 탈출한 Konerak Sinthasomphone의 행동을 이상히 여긴 이웃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Konerak Sinthasomphone을 뒤쫓아온 제프리 다머는 경찰관에게 Konerak Sinthasomphone은 자신의 동성애자이며, 함께 술을 마시다 조금 다투었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경찰관은 제프리 다머의 말을 그대로 믿고 Konerak Sinthasomphone을 제프리 다머에게 넘겨주었다. 그날 밤 Konerak Sinthasomphone은 제프리 다머의 13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양들의 침묵'의 이야기가 결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Posted by unforgetta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