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 (Psycho, 1960)

영화 2009. 5. 21. 10:33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새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영화 기술에 대한 도전을 즐긴, 실험 정신이 강한 감독 중 하나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좀더 강하게 영화에 끌어들일 수 있을까 연구하고, 이를 위해 새로운 영화 기술들을 창조하고 발전시켰다. 비록 그의 대부분의 영화가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의 이러한 한 장르에 대한 고집이 그만의 독창적인 영화 기술과 그만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히치콕적"인 영화라고 하면 으레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자연스럽게 인식이 될 정도로 영화계에서 그의 이름은 하나의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 용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에서 개발된 그의 영화 기술들은 후에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장르의 수많은 영화들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싸이코'는 실존 인물인 위스콘신(Wisconsin)의 연쇄살인범 에드 게인(Ed Gein)을 모델로 한 로버트 브로쉬의 소설을, 조셉 스테파노가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이긴 하지만, 무엇보다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영상 기술이 '싸이코'를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영화로 만들었다.

자신의 직장에서 4만 달러를 훔쳐 무작정 짐을 싸서 집을 나온 마리온 크레인(Janet Leigh)은 밤새 빗길을 달려, 노먼 베이츠(Anthony Perkins)라는 친절해 보이는 젊은이가 지배인으로 있는 길가의 한 작은 모텔에 도착한다. 그날 밤 마리온은 샤워를 하던 도중 칼을 들고 나타난 노파로 보이는 누군가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마리온이 샤워 도중 살해당하는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사에서 길이 남는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이다. 장면의 끔찍함은 물론이고, 영화의 주인공이 영화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죽는다는 파격적인 영화 스토리는 관객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함께 충격마저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이 장면과 함께 나오는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 끼치는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는 이 장면의 끔찍함을 한층 더 고조시키고 있다 - 원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 장면을 배경 음악 없이 전개시키려 하였으나, '싸이코'의 음악을 담당한 버나드 허먼이 들려주는 이 소리를 듣고서는 바로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칼로 난자 당한 마리온은 서서히 욕조 속으로 주저앉기 시작한다. 이때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는 마리온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 마지막 가쁜 숨을 쉬는 듯한 연주 소리로 바뀐다. 결국 마리온은 바닥에 쓰러지고, 음침한 현악기의 소리도 사라진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와 마리온의 피가 섞인 물이 욕조의 수채 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화면은 수채 구멍과 마리온의 눈이 오버랩된다. 욕조의 수채 구멍과 마리온의 눈이 오버랩되는 이 장면은 총 3분여 동안 보여주는, 마리온이 살해 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의 백미이다. 우리가 하루에 한번 이상은 무심코 보게 되는 욕조의 수채 구멍을 죽은 마리온의 눈과 연결시켜 그 공포를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심지어는 영화를 본 후에도 욕조의 수채 구멍을 볼 때마다 죽은 마리온의 눈을 떠올리게끔 하고 있다.

이윽고 화면은 한참을 마리온의 죽은 얼굴을 비춘다. 마치 관객들이 현장에서 직접 살인을 저지르고 그 살인을 즐기는 듯 죽은 마리온을 쳐다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관객들이 싸이코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들게끔 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이던 밀튼 아보가스트 탐정(Martin Balsam)이 노먼의 저택에서 살해 당하는 장면 역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탁월한 연출 감각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천장에서 촬영을 한 듯한 화면의 구석에서 마리온을 죽인 그 노파가 갑자기 나타나 아보가스트 탐정을 공격하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비명을 질러대게 만들었고, 공격 당한 아보가스트 탐정이 계단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기증마저 들게끔 하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관객들을 향해 웃고 있는 노먼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다. 인간 괴물 노먼 역을 맡은 안소니 퍼킨즈의 연기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완벽하다. 사실 '싸이코'에서의 너무나 강렬한 연기 때문에 다른 영화에서의 안소니 퍼킨즈는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이다.

'싸이코'의 성공은 후에 속편들의 제작 - 속편들 중 '싸이코 3 (Psycho III, 1986)'에서는 안소니 퍼킨즈가 직접 감독까지 맡았다 - 으로 이어지며, 심지어는 구스 반 산트 감독에 의해 '싸이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컬러판 '싸이코 (Psycho, 1998)'가 만들어진다. 난 속편들은 물론이고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싸이코'도 아직 안 봤다. 사실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흑백 화면을 바탕으로 쓰여진 '싸이코'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사용하여 만든 컬러판 '싸이코'가 과연 흑백 화면에서 나오는 그 음침한 분위기 - 한 예로 언덕 위의 노먼의 저택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침함 - 를 제대로 살려냈을지 의심스럽다.

Posted by unforgettabl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