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

존 포드 감독은 서부 영화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최고의 영화에 포함되어 있는 그의 영화들 대부분이 서부 영화들 - '역마차 (Stagecoach, 1939)',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 '수색자 (The Searchers, 1956)',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 1962)' 등 - 이다. 하지만 존 포드 감독은 서부 영화가 아닌 영화들도 다수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아버지의 나라인 아일랜드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아일랜드와 관련된 영화들도 있다. 아카데미 감독상 최다 수상 영화감독인 존 포드 감독은 네 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는데, 서부 영화로 유명한 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네 번 모두 서부 영화가 아닌 영화 - '밀고자 (The Informer, 1935)',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말 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 - 로 수상했으며, 그중 두 번은 아일랜드와 관련된 영화 - '밀고자', '말 없는 사나이' - 로 수상했다 - 물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아일랜드가 아닌, 영국 웨일스가 배경인 영화이지만, 존 포드 감독의 아일랜드에 대한 향수가 이 영화에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영국 웨일스의 한 가난한 탄광 마을에서 탄광 일에 종사하는 모간 집안의 막내, 휴(Roddy McDowall)의 관점에서, 광부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아빠, 그윌림(Donald Crisp)과 다섯 형들, 이안토(John Loder), 이보르(Patric Knowles), 다비(Richard Fraser), 오웬(James Monks), 그윌림(Evan S. Evans), 그리고 엄마 베스(Sara Allgood)와 누나 안하라드(Maureen O'Hara)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관객들에게 진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이를 위해 영화의 이야기도, 고향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성인이 된 휴의 내레이션(Irving Pinchel) - 성인이 된 휴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 으로 전개되며, 영화의 극적 구성을 위한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자신의 가족과 마을에 있었던 여러 사건들 - 형 이보르와 브론윈(Anna Lee)의 결혼식, 탄광에 노조를 만들려는 형들과 이를 반대하는 아빠 사이의 갈등과 화해, 파업에 반대한 아빠와 파업을 지지한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과 화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집을 떠나는 형들, 누나 안하라드와 마을에 새로 부임한 목사 그루피드(Walter Pidgeon)의 이루지 못한 사랑, 탄광 사장(Lionel Pape)의 아들(Marten Lamont)과 결혼한 누나 안하라드, 탄광 사고로 인한 형 이보르와 아빠의 죽음 등 - 에 대한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들려주고 있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배경이 참 인상적인 영화이다. 존 포드 감독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가 향수에 관한 영화인 만큼, 휴의 회상으로 보여주는 마을의 정경들 - 언덕 위의 탄광 아래로 줄지어 선 가정집들과, 화창한 봄날, 그루피드 목사가 휴를 엎고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동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나팔 수선화로 뒤덮힌 동산 등 - 을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상상 속에서나 그릴 수 있는 세상처럼 연출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좋았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진하게 느끼도록 해주고 있다.

물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은 진부한 신파조의 영화이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감상적이며, 권투 선수였던 다이 밴도(Rhys Williams)와 그의 파트너(Barry Fitzgerald)가 휴에게 부당한 처벌을 내린 학교 선생(Morton Lowery)을 찾아가 혼내주는 이야기는 너무 희화화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 탄광 노동자 가족을 중심으로 들려주는 갈등과 화해, 사랑과 이별의 보편적인 이야기들은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를 인간미가 넘치는 영화로 만들어 주고 있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지금도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되는 오슨 웰스 감독의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과, 미국 필름 누아르의 고전, 존 휴스턴 감독의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1941)'를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인 영화이다. 아빠 그윌림 역의 도널드 크리스프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엄마 베스 역의 사라 얼굿, 마을의 목사 그루피드 역의 월터 피전, 존 포드 감독 영화의 단골 여배우인 누나 안하라드 역의 모린 오하라, 그리고 어린 휴 역의 로디 맥도웰도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외에도 촬영상과 미술상을 수상하여 5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