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 (Sunset Blvd., 1950)'는 왕년에는 대스타였으나, 이제는 늙고 한물간 여배우가 되어 버린 노마 데스먼드(Gloria Swanson)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무서운 집착과 광기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노마 데스먼드 역에 실제로 무성 영화 시절에는 대스타였으나, 발성 영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완전히 한물간 여배우가 되어 버린 글로리아 스완슨을 캐스팅하여 영화의 사실성과 함께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와 흥미를 높였다.
'21그램 (21 Grams, 2003)', '바벨 (Babel, 2006)', '비우티풀 (Biutiful, 2010)' 등을 연출한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이 감독과 각본, 제작을 담당한 '버드맨'에서도 한물간 배우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할리우드 톱스타에 올랐지만, 이제는 늙고 한물간 배우가 되어 버린 리건 톰슨(Michael Keaton)은 꿈과 명성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 무대에 도전하지만, 이미 대중과 멀어진 배우에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은 리건 역에 실제로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Batman, 1989)'과 속편인 '배트맨 2 (Batman Returns, 1992)'에서 배트맨(Michael Keaton)으로 톱스타에 올랐지만, 이후 별다른 흥행작을 내지 못하고 한물간 배우가 되어 버린 마이클 키튼을 캐스팅하여 영화의 사실성과 함께 이야기의 극적인 효과와 흥미를 높이고 있다.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버드맨'의 가장 큰 특색은 롱 테이크로 촬영한 긴 숏이다. '버드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전체를 단 한번에 촬영했나 싶을 정도로,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편집이 거의 없는 영화이다. 이야기의 전개나 장면의 전환으로 미루어 볼 때, 확실히 편집을 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서도 다음 숏으로의 전환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편집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버드맨'의 주무대는 리건의 연극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는 극장인데, 카메라는 영화의 등장 인물들을 계속 따라가면서 극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낸다. 우리의 실제 삶에는 편집이 없다고 말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츠 이냐리투 감독은 롱 테이크로 촬영한 숏을 통하여 현장감과 함께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여러 가지 촬영 기술의 발달로 관객들이 웬만한 특수효과 장면에는 이제 놀라워하지 않는 오늘날에 오히려 '버드맨'의 롱 테이크 숏이 그 어떤 화려한 특수효과 장면보다도 관객들에게 더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다.
롱 테이크는 특히 배우들에게 힘든 영화 촬영 기법이다. 숏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하나가 실수를 하면 그 긴 숏을 처음부터 다시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키튼, 자흐 갈리피아나키스, 에드워드 노튼,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에이미 라이언, 엠마 스톤, 나오미 왓츠 등 '버드맨'에 출연하는 배우들 모두가 선보이는 연기는 너무나도 훌륭하다. 마이클 키튼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그리고 돌출 행동을 일삼는 배우 마이크(Edward Norton) 역의 에드워드 노튼과, 리건의 조수로 일하는 리건의 딸 샘(Emma Stone) 역의 엠마 스톤은 각각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세 명 모두 수상은 하지 못하였다.
'버드맨'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강력한 경쟁작이었던 '보이후드 (Boyhood, 2014)'를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버드맨'은 작품상 외에도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을 수상하여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자막으로 나오는 문답식 문구는 '버드맨'에서 리건의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의 실제 원작자인 미국의 현대 작가 레이몬드 카버(Raymond Carver)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비문이다.
'버드맨'의 완전한 제목은 '버드맨 또는 (무지에서 나온 예기치 못한 미덕)'이다. "무지에서 나온 예기치 못한 미덕"은 '버드맨'에서 리건의 연극을 호평(?)한 연극 평론가 타비사(Lindsay Duncan)가 쓴 신문 기사의 제목이기도 하다. 첫 공연 전날 밤, 타비사는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리건에게, 연극에 대해 무지하면서 연극을 한답시고 꼴값을 떠는 당신을 증오한다고 독설을 날린다. 하지만 첫 공연 다음날, 리건의 연극 - 연극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버드맨'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 을 호평한 타비사의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리건의 전처 실비아(Amy Ryan)는 리건의 변호사이자 연극 제작자인 제이크(Zach Galifianakis)가 건네준 신문에 실린, 결코 좋아할 수만은 없는 타비사의 기사를 리건에게 읽어 준다. "톰슨은 자신도 모르게, 오직 초현실주의적이라고 묘사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연극) 형식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버드맨'도 끝을 향해 가면서 점점 초현실주의적인 영화로 변해 간다. 재기에 대한 심한 강박으로 급기야 멘탈이 붕괴된 리건은 현실과, 자신이 버드맨이 되는 환상의 경계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버드맨'은 초현실주의적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도 멘탈이 붕괴된 리건의 심리 상태를 최대한 똑같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재즈풍의 드럼 연주가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데, 멘탈이 붕괴된 리건이 첫 공연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극장의 복도를 지나는 장면에서 드럼을 연주하는 드럼 연주자가 등장하여 관객들을 영화와 영화 밖의 경계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버드맨'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초현실주의적 끝을 보여준다. 샘은 창밖으로 도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건가? 대마초를 피는 샘의 환상인가, 아니면 진짜로 하늘을 날고 있는 리건인가?
'선셋 대로'는 노마 데스먼드의 과거에 대한 집착과 광기에만 이야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관객들이 노마 데스먼드의 행동으로부터 섬뜩함은 느꼈지만 화려했던 과거에 무섭게 집착하는 한물간 여배우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관객들이 '버드맨'의 리건에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리건은 재기에 대한 강박과 심각한 자금 압박 속에서, 돌출 행동을 일삼는 마이크를 통제해야 하고, 배우로서의 장래를 불안해 하는 무명 배우 레슬리(Naomi Watts)와, 여자 친구 로라(Andrea Riseborough)도 신경써 줘야 한다. 여기에 하나뿐인 딸 샘은 리건의 브로드웨이 도전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연극계를 좌지우지하는 타비사는 악평으로 리건의 연극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리건은 삶에 찌들고 지친 우리를 대표한다. 우리는 리건과 마찬가지로 사랑받으면서 살기를 원한다. 삶에 찌든 우리는 한번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면서 저 새들처럼 마음껏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버드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샘이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니길 무심코 바란다. '버드맨'이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코미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이야기로부터 서글픔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리건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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