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기상 캐스터 필(Bill Murray)은 매해 펑츄토니에서 열리는 성촉절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맨 래리(Chris Elliott), 그리고 신임 프로듀서 리타(Andie MacDowell)와 함께 펑츄토니에 온다. 성촉절 아침 일찍 눈을 뜬 필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내린 폭설로 어쩔 수 없이 펑츄토니에서 하룻밤을 더 묵게 된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필은 성촉절이었던 어제와 똑같은 날을 경험하게 되고, 자고 일어나면 또 똑같은 날이 반복된다. 똑같은 날의 반복에 환멸을 느낀 필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어김없이 성촉절 아침에 다시 눈을 뜨게 된다.
필이 똑같은 날을 반복해서 겪게 되는 '사랑의 블랙홀'의 이야기는, 물론 '사랑의 블랙홀'과 장르나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영화의 주인공이 죽음과 함께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겪게 되는, 최근에 나온 톰 크루즈 주연의 SF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Edge of Tomorrow, 2014)'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사랑의 블랙홀'의 원제목은 'Groundhog Day (성촉절)'이다. '사랑의 블랙홀'의 이야기의 무대인 펑츄토니(Punxsutawney)는 실제로 펜실베니아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며, 매년 2월 2일에 열리는 성촉절 행사로 유명한 곳이다. '사랑의 블랙홀'에서처럼 이 성촉절 행사에서 "펑츄토니 필(Punxsutawney Phil)"이라는 이름의 마못이 겨울이 얼마나 계속될 지를 예언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겨울잠에서 깨어 굴에서 나온 마못이 화창한 날씨로 인해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 다시 굴로 들어가면 추운 겨울이 6주 더 계속되고, 날씨가 흐려 그림자가 없으면 봄이 빨리 온다는 것이다.
'사랑의 블랙홀'은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볼 수 있지만, 단순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만 볼 수 없는 영화이다. '사랑의 블랙홀'은 언뜻 보면 사랑을 몰랐던 한 남자가 진실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단순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보여진다. 더욱이 '사랑의 블랙홀'이라고 붙여진 한국 영화 제목이 '사랑의 블랙홀'을 더욱 그런 영화로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랑의 블랙홀'은 단순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보기에는 영화의 이야기에 담겨진 내용이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답지 않게 철학적이고 심오하기까지 한 영화이다. 물론 단순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보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를 굳이 영화의 이야기에 담겨진 내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볼 필요가 있나,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화의 이야기에 담겨진 내용을 생각하면서 보면 단순히 재미만 느낄 뿐만이 아니라 감동까지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겨울이 얼마나 계속될 지를 예언하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기상 캐스터"인 "펑츄토니 필"과 이름이 같은 기상 캐스터 필은 자기중심적이고 항상 불평만 하면서 살아가는 미혼의 남자다. 필이 반복해서 겪게 되는 똑같은 날은 만족할 줄 모르고 하루하루를 그저 똑같이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상징하고 있다. 반복되는 똑같은 날에 갇혀 버린 필이 펑츄토니의 한 볼링장에서 펑츄토니의 주민인 거스(Rick Ducommun)와 랄프(Rick Overton)에게 말한다. "한 곳에 갇힌 채 매일이 똑같아서 어떤 일도 소용없어진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어요?"
똑같은 날이 반복되자 필은 마치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행동한다. 콜레스테롤, 폐암, 아랫배의 군살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마구 먹고 마시고 피운다. 고등학교 동창생이라 속여 낸시(Marita Geraghty)라는 여자를 꼬시기도 하고, 금고 수송 차량을 털어 멋진 차를 사기도 한다. 그리고 매일 리타의 생각과 행동들을 익혀 그녀의 마음을 얻어 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필은 만족감은 커녕 환멸만 느끼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필은 자신을 자기중심적이고 항상 불평만 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리타에게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행동과 태도를 고쳐 나가기 시작한다. 반복되는 똑같은 날이지만 그 속에서 여유롭게 책을 읽기도 하고, 피아노를 배우기도 하고, 얼음 조각을 배우기도 하며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리고 한정된 하루동안 되도록 많은 펑츄토니 주민들을 돕기 위해 뛰어다닌다. 필은 펑츄토니 주민들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억지스럽게 얻으려고 했던 리타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사랑의 블랙홀'은 관객들에게 하루하루를 어떠한 행동과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침을 주는 영화이다. 어떻게 보면 "한 곳에 갇힌 채 매일이 똑같은 삶"을 살고는 있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남을 돕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똑같아 보이는 삶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볼링장에서 좋았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실을 불평하는 필에게 거스가 말한다. "(맥주가 반이 담긴 유리잔을 가리키며) 이 유리잔을 보고 반이 비었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이나 남았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죠. 당신은 반이 비었다라고 하는 축인 것 같구려."
리타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하는 필에게 말한다. "나도 가끔 목숨이 한 천 개쯤 있었으면 바랄 때가 있어요. 모르겠어요, 필. 아마 이건 업보는 아닐 거에요. 단지 어떻게 보는냐에 달린 것 같아요."
'사랑의 블랙홀'은 관객들에게 오늘 하루가 내일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이다. 드디어 성촉절에서 벗어나 성촉절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뜬 필이 리타에게 말한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오늘은 내일이에요."
개인적으로 '사랑의 블랙홀'은 과소평가 받고 있는 숨겨진 명화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블랙홀'은 단순한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만 볼 수 없는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명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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