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에서 자란 18살의 한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목격자들의 진술과 증거물로 보아 소년의 유죄가 확실해 보인다. 이제 배심원들의 최종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만약 배심원들이 유죄로 판결을 내리면 소년은 일급 살인죄로 전기 의자에 앉게 된다. 단, 최종 판결은 배심원 전원의 만장 일치로 내려져야 한다. 한 소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건의 최종 판결을 위해 12명의 배심원들이 배심원실로 입장한다.
사건의 최종 판결을 위한 투표 결과, 11명의 배심원들은 소년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나 8번 배심원(Henry Fonda) -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8번 배심원과 9번 배심원(Joseph Sweeny)이 서로 이름을 주고 받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영화 내내 배심원들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는다 - 만이 목격자들의 진술이나 증거물이 의심이 간다는 이유로 소년의 무죄를 주장한다. 이때부터 12명의 배심원들은 최종 판결을 위한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감독 데뷔작인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총 96분의 상영 시간 중, 영화 시작 부분의 3분과 마지막 부분의 1분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이 달린 좁은 배심원실의 협소한 공간에서, 12명의 배심원들로만 영화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아주 단순한 형식의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주는 긴장감과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주제들은 꽤 깊이가 있는 아주 고급스런 영화이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에 해당하는 금곰상을 수상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원래는 텔레비전극을 위해 쓰여진 - 실제로 1954년에 미국 CBS 텔레비전에 방영이 되었다 - 레지날드 로즈의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법정 드라마 영화이지만, 영화의 주무대는 법정이 아니라 배심원실이며, 영화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도 변호사나 검사 등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다. 레지날드 로즈의 각본에 매료된 명배우 헨리 폰다는 자신이 직접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영화화에 투자하기로 결심을 하고, 그 당시 텔레비전극의 연출 감독이었던 시드니 루멧 감독에게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감독을 맡긴다. 헨리 폰다는 '12명의 성난 사람들'의 제작과 더불어 소년의 무죄를 처음으로 주장하는 8번 배심원 역으로 영화에 출연까지 한다.
8번 배심원은 다른 배심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소년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는 목격자들의 진술이나 증거물이 의심이 가는 이유를 설명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의심이 가는 정당한 이유에 대한 조리 있는 설명으로 감정적이고 편견이 가득한 배심원들을 하나하나 설득시켜 나간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과 보리스 카우프만의 탁월한 촬영 기술은, 영화 촬영이 20일만에 초고속으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레지날드 로즈의 각본으로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최대한 끄집어내었는데, 특히 배심원들을 클로즈업해서 화면을 꽉 채우는 촬영 기법을 사용하여, 협소한 공간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12명의 배심원들이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좁은 배심원실의 분위기를 관객들도 최대한 느낄 수 있게끔 해 주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일단 배심원 제도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8번 배심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배심원들이 판결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빨리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배심원실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축소판으로, 12명의 배심원들은 그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나 단체들을 상징하고 있다. 한 소년의 운명이 걸려있는 최종 판결을 앞두고 농담들을 주고 받는 배심원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인간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를 비판하고 있으며, 3번 배심원(Lee J. Cobb)과 10번 배심원(Ed Begley)을 통해, 근거 없는 억측과, 출신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과 편견을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8번 배심원을 통해, 대화와 타협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12명의 배심원들의 만장 일치로 무죄 판결이 난 후, 8번 배심원이 자신과 끝까지 논쟁을 벌인 3번 배심원에게 옷을 입혀주면서 위로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 주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그 어느때보다도 국론 분열이 심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정책 결정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화와 타협으로 설득을 하기보다는 감정을 먼저 앞세우고 인신 공격마저 서슴지 않는데,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의 8번 배심원의 자세가 아쉬운 때이다. 특히 8번 배심원과 같은 지도자의 부재가 무척 아쉽다.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보면, 배심원실의 화장실에서 6번 배심원(Edward Binns)과 8번 배심원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6번 배심원이 감정적인 배심원들을 가리켜, "대단한 사람들이죠?"라고 말하자, 8번 배심원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죠."라고 대답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로 인해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논쟁으로 사회가 분열되기 이전에 중재를 하는 것이 그 사회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8번 배심원과 같은 지도자는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지도자만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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