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대단히 획기적인 해로, 이른바 "아메리칸 뉴 시네마(American New Cinema)" 또는 "뉴 할리우드(New Hollywood)" 시대를 연 영화들이 등장한 해이다. 이 해에 등장한 대표적인 아메리칸 뉴 시네마 또는 뉴 할리우드 영화가 아메리칸 뉴 시네마 또는 뉴 할리우드 시대를 연 첫번째 영화로 평가 받고 있는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 1967)'와, 4개월 뒤에 나온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이다.

뉴 할리우드 영화들은 기존의 영화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폭력과 섹스"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대담한 표현과 함께, 기성세대와 현실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나아가서는 사회의 권위에 반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이와 함께 젊은 영화인들에 의한 참신하고 독특하고 파격적이고 감각적인 영화의 이야기와 영상은 젊은 층 관객들의 코드와 맞아떨어져 뉴 할리우드 영화들은 젊은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각본을 담당한 칼더 윌링엄과 벅 헨리의 파격적인 영화의 이야기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젊고 참신한 영상 감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졸업' 역시 기성세대의 타락과 부조리, 물질 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젊은 관객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얻은 뉴 할리우드 영화이다.

"Mrs. Robinson, you are trying to seduce me. Aren't you?"

(로빈슨 부인, 저를 유혹하려고 그러시는거죠. 그렇죠?)

 

'졸업'은 대학을 갓 졸업한 벤(Dustin Hoffman)이 아버지(William Daniels)의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로빈슨 씨(Murray Hamilton)의 부인(Anne Bancroft)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는,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기성세대의 타락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졸업'에서 벤을 유혹하는 로빈슨 부인은 기성세대의 타락과 부조리를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로빈슨 부인과 그녀의 딸 일레인(Katharine Ross)의 충돌은 기성세대와 신진 세대의 충돌을 상징하고 있으며, 이 두 사람 사이에서 당황해 하는 벤은 두 세대 사이에서 방황하는 우리 시대의 젊은이를 대표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에 돌아온 벤을 위한 파티에서 맥과이어 씨(Walter Brooke)는 벤에게 벤의 장래를 위해 충고를 해준다. "Plastics!...There's a great future in plastics. (플라스틱!...플라스틱에 밝은 미래가 있다.)".

맥과이어 씨의 이 대사는 미국 영화사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대사인데, 이를 통해 모든 가치를 물질에 두는 기성세대의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 어쨌든 맥과이어 씨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제 플라스틱은 인간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질이 되어 버렸다.

기성세대의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벤의 생일 파티에서 벤의 아버지와 어머니(Elizabeth Wilson)를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에는 관심조차 없고, 벤에게 비싼 잠수복을 선물하고는 벤보다도 더 즐거워 한다. 아버지에 의해 수영장의 물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벤은 기성세대의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신진 세대를 상징하고 있다. 또한 부모의 기대에서 오는 부담감이나 미래에 대한 책임감에서 오는 중압감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졸업'에서 보여 주는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영상 감각은 굉장히 참신하다.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참신한 영상 감각은 '졸업'의 시작 장면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데, 영화의 제목, 출연 배우들, 스태프들을 소개하는 자막과 함께, LA 공항에 도착한 벤이 공항의 움직이는 보도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은, 단순해 보이지만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는 명장면이다.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벤 앞의 흰색 타일로 된 벽은 대학을 갓 졸업한, 아직은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벤의 순수함과, 벤 앞에 놓여져 있는, 아직은 깨끗한 여백으로 남아있는 벤의 미래를 표현하고 있으며, 움직이는 보도가 앞으로 이동하면서 어지럽게 지나가는 타일 벽의 줄무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벤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참신하고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상당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el)의 노래들 - 'The Sounds of Silence', 'Mrs. Robinson', 'Scarborough Fair/Canticle' - 을 영화에 삽입하여 철저하게 젊은 층 관객들의 코드에 맞춤으로서 영화의 성공을 이끌었다.

로빈슨 씨와 로빈슨 부인은 일레인을 벤과 떼어놓기 위해 일레인의 결혼식을 서두른다. 일레인의 결혼 소식을 들은 벤은 결혼식장인 교회로 달려가 결혼식을 하고 있는 일레인을 끌어내어 함께 도망을 친다. 벤이 일레인과 함께 도망을 치기 위해 교회의 벽에 걸려 있던 십자가를 휘두르는 장면은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한 반항을 상징하고 있으며, 일레인 또한 기성세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벤을 따라 도망을 친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함께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그들의 불안한 미래는 그들의 얼굴 표정을 다시 어둡게 만든다.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부치 캐시디(Paul Newman)와 선댄스 키드(Robert Redford)가 경찰들에게 포위된 건물에서 뛰쳐나가는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의 마지막 장면이나, 4명의 파이크(William Holden) 일당이 마파치(Emilio Fernandez)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 연방군과 무모한 싸움을 벌이는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1969)'의 마지막 장면과 일맥 상통한다. 벤과 일레인,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그리고 4명의 파이크 일당은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한 반항을 해보지만, 이미 사회 곳곳에 뿌리를 박은 기성세대는 끄떡도 하지 않고, 기성세대의 권위에 대한 반항으로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건 암울한 미래뿐이다.

'졸업'에서 무명 시절의 리차드 드레이퍼스를 잠깐 볼 수 있는데, 일레인의 비명 소리를 듣고 벤의 방으로 달려온 아파트 주인(Norman Fell)에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하는 이(Richard Dreyfuss)가 바로, '굿바이 걸 (The Goodbye Girl, 1977)'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우리에겐 '죠스 (Jaws, 1975)'와 '미지와의 조우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1977)'로 잘 알려진 리차드 드레이퍼스이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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