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도 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상처가 너무나 큰 나머지,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상처를 준 사람들이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꿈 속에서는 그 상황과 사람들이 왜곡되어 나타난다. 또한 꿈 속에서의 상황은 불연속적이고 단편적이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현실에서, 연인이었던 카밀라 로즈(Laura Elena Harring)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은 다이앤 셀윈(Naomi Watts)이 질투와 배신감으로 카밀라를 살해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결국 자살을 하기 전에 약에 취해 잠들다 꾸게 되는 꿈을 다룬 영화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원래는 TV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이 되었었는데, 이야기가 모호하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방영이 취소되자, 데이빗 린치 감독이 새로운 장면들을 다시 촬영하고 재편집하여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TV 드라마 시리즈를 재편집하여 만든 영화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면 이야기의 전개와 장면의 전환이 단편적이고 매끄럽지 못한 느낌을 준다. 물론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이야기는 모호하고 장면의 전환은 투박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다른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들에 비해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특히 심한데, 하지만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불연속적이고 단편적인 꿈 속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고려하고 보면, 단편적이고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의 전개와 장면의 전환이 오히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는 잘 맞는 영화의 한 형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모호하고 난해한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이야기로 인해 여러 영화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이야기와 주제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데이빗 린치 감독은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이야기와 주제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거부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젊은 남녀들이 지르박을 추는 장면과, 영화의 주인공인 다이앤이 몹시 기뻐하는 표정으로 두 노인의 사이에 서 있는 장면이 나오면서 시작된다. 곧이어 거친 숨소리가 들리면서, 거친 숨소리의 주인공의 시점인 듯,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가 침대 위 베개 속으로 파묻히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이때부터 베개 속으로 파묻힌 거친 숨소리의 주인공의 꿈인 듯, 꿈 속 이야기가 전개된다. 꿈 속 이야기는 리타(Laura Elena Harring)가 파란 열쇠로 파란 상자를 여는 장면까지 계속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약 2시간 30분의 상영 시간 중 거의 2시간을 꿈 속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 약 30분은 현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관객들은 처음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볼 때는 불연속적이고 단편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지 - 꿈 속의 이야기인지조차 - 알 수 없지만, 현실의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부분을 보고 나면, 다이앤이 꾸는 꿈 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캐나다 출신인 다이앤은 지르박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한 계기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고, 스타가 되는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에서 다이앤은 실패한 여배우다. 다이앤은 스타가 되는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에 왔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한 배역을 맡지 못했고, 반면에 같은 배우이자 동성연인인 카밀라는 그 배역을 대신 차지하여 스타가 되었고, 조만간 영화감독인 아담(Justin Theroux)과 결혼을 하려 한다. 카밀라의 배신으로 큰 상처를 받은 다이앤은 조(Mark Pellegrino)라는 청부 살인 업자를 통해 카밀라를 살해한다.
약에 취한 다이앤이 꾸는 꿈 속의 모든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의 모든 이야기가 꿈 속에서는 왜곡되어 있다. 꿈 속에서 다이앤은 베티(Naomi Watts) - 베티라는 이름의 근원도 현실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 로 나오며, 카밀라는 리타로 나온다. 다이앤에게 비참한 현실과는 달리 꿈 속의 세상은 베티에게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다이앤은 지극히 자신을 중심으로 한, 자신이 원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꿈 속의 이야기에는 현실에서 일과 사랑에 실패한 다이앤의 욕망, 질투, 배신감, 충격, 분노가 투영되어 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다이앤의 꿈이 시작되는 곳인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현실에서는 아담의 집이 있는 곳이자 다이앤에게 악몽을 안겨 준 곳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있는 아담의 집으로 카밀라의 초대를 받은 다이앤은 카밀라와 아담의 결혼 발표를 듣게 되고 카밀라에 대한 질투와 배신감으로 피눈물을 흘린다. 다이앤이 받은 충격은 리타가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으로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 상실증에 걸린 리타가 베티에게 의지하는 꿈은 다이앤의 카밀라에 대한 욕망이, 그리고 리타가 금발의 가발을 쓰고 베티를 따라 하는 꿈은 카밀라에 대한 다이앤의 시기심과 질투가 투영되어 있다.
현실에서 다이앤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은 다이앤의 꿈에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현실에서 아담은 자신과 카밀라는 천생연분이라는 의미의 농담을 던진다. "난 풀장을 가졌고, 카밀라는 풀장 청소부를 가졌지."
현실에서 다이앤으로부터 카밀라를 빼앗아간 아담은 다이앤의 꿈에서 풀장 청소부 진(Billy Ray Cyrus)과 바람난 아내 로레인(Lori Heuring)으로부터 집에서 쫓겨나는 처량한 영화감독으로 등장한다. 아담의 집에서 카밀라에게 키스를 하여 다이앤의 질투를 유발한 여자는 꿈에서 하찮은 여배우 카밀라 로즈(Melissa George)로 등장한다. 반면에, 현실에서 다이앤의 이야기를 듣고 다이앤의 손을 어루만지며 다이앤을 다독여 준 아담의 엄마 코코(Ann Miller)는 꿈에서 다정한 아파트 주인 코코로 등장한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다이앤이 다정한 카밀라와 아담의 모습을 보며 괴로워할 때 눈이 마주친 남자는 꿈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뱉는 루이지 카스티그리앤(Angelo Badalamenti)으로 등장한다. 다정한 카밀라와 아담의 모습에 괴로워하며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마셨던 당시의 다이앤의 심정이 꿈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뱉는 루이지 카스티그리앤에 투영된 것이다. 윙키스라는 식당에서 조에게 카밀라의 살인을 교사할 때 눈이 마주친 남자는 꿈에서 공포로 기절을 하는 댄(Patrick Fischler)으로 등장한다. 아담의 집에서 카밀라에게 키스를 한 여자가 나갈 때 지나간 카우보이 복장의 남자는 꿈에서 아담을 협박하는 카우보이(Layfayette Montgomery)로 등장한다. 지르박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한 다이앤을 축하해 준, 지르박 콘테스트의 주최자들인 듯한 두 노인은 꿈에서 로스앤젤레스에 베티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듯한 아이린(Jeanne Bates)과 아이린의 동행인(Dan Birnbaum)으로 등장한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베티와 헤어진 아이린과 아이린의 동행인은 택시 안에서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데, 이들은 다이앤을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게 하고 로스앤젤레스로 오게 만든, 그리고 결국 다이앤을 파멸로 이끈 장본인들이나 다름없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네오 누아르(neo-noir) 미스터리 영화이다. 네오 누아르는 1940년대와 1950년대의 고전 흑백 필름 누아르(film noir)가 현대적으로 재탄생된 영화 장르이다. 어두운 흑백 화면을 통한 음울한 영화의 분위기와,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영화의 이야기를 특징으로 하는 필름 누아르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타락한 곳이고, 타락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사상이 영화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꿈 속의 세상은 베티에게 희망적인 세상이며 다이앤이 그토록 원한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다이앤에게 현실은 비참하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꿈 속의 세상과 현실의 차이를 보여 주는 영화이다. 현실에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밴드는 없다. 꿈에서 베티와 리타가 찾아간 극장 실렌시오 - 스페인어로 "침묵"이라는 뜻이다 - 에서 무대 위 마술사(Richard Green)가 말한다. "밴드는 없어! ...하지만 우린 밴드를 들을 수 있지. ...전부 녹음된 것이야. ...전부 테이프야. ...환상일 뿐이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2016년에 영국 공영방송 BBC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영화 100"에서 1위를 차지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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