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40년 동안 이 이야기는 동심을 위해 각근하였고, 유행을 초월한 이 인정이 넘치는 철학 앞에서는 세월도 무기력하였다. 이 이야기와 함께 동심을 지켜온 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영화의 서두에서도 밝혔듯 동심을 위해 각근한 L. 프랭크 바움의 동화가 원작인 '오즈의 마법사'는 관객들을 동심에 빠져들게 하는 빅터 플레밍 감독의 뮤지컬 영화로, 세대를 초월하여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와 함께, 영화의 초반부에서 도로시(Judy Garland) 역의 주디 갈란드가 부르는 노래 'Over the Rainbow'도 영화 못지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2004년에 선정한 "미국 영화 노래 100 (AFI's 100 Years...100 Songs)"에서 1위에 올라와 있다. 노래가 나온 지 72년이 지난 지금도 이 노래가 이토록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노래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에서는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근심이 레몬즙처럼 녹아 내리는 세상을 동경하는 동심을 표현한 노래이기도 하지만, 서부 개척이라는 역사를 가진 미국의 정서가 녹아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즉 옛날 미국인들의 서부에 대한 동경과,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서부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 있는 노래이다.

"Toto, I've a feeling we're not in Kansas anymore."

(토토, 우리가 더 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

 

"I'll get you, my pretty, and your little dog too!"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어, 귀여운 것, 그리고 너의 작은 개도!)

 

영화가 나온 지 72년이 지난 지금도 '오즈의 마법사'가 여전히 관객들을 동심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는 영화의 이야기가 지금도 아이들이 체험을 하고 있고, 어른들도 아이들이었을 때 체험을 했었던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인 어린 도로시는 애견 토토(Toto)의 문제로 인한 자신의 근심을 엠 숙모(Clara Blandick)와 헨리 삼촌(Charley Grapewin), 그리고 농장 일꾼들인 지크(Bert Lahr), 헝크(Ray Bolger), 히커리(Jack Haley)에게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어린 도로시에게는 토토의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큰 근심거리이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아이들의 근심거리일 뿐이다. 도로시는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바쁜 어른들의 외면으로 외로이 버려진 우리 아이들을 대표하고 있다. 아이들은 도로시처럼 자신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근심이 없는 세상을 꿈꾸기도 한다.

꿈은 동심에게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주제이다. 꿈에는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는데,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는 두 가지 다른 의미의 꿈을 모두 다루고 있다.

아이들은 자다가 자주 꿈을 꾼다. 무서운 꿈을 꾸고 자면서 울기도 하고, 신나는 꿈을 꾸고 자면서 웃기도 한다.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도 회오리 바람에 떨어진 창문을 맞고 정신을 잃은 도로시가 꾸는 꿈 이야기이다. 오즈의 나라는 도로시가 실제로 간 공간이 아니라, 도로시가 꾸는 꿈 속의 공간이다. 오즈의 나라가 도로시가 꾸는 꿈 속의 공간이라는 사실은 도로시가 오즈의 나라에서 캔자스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확실해진다. 도로시는 오즈의 나라에서도 여전히 자신과 토토를 못살게 구는 서쪽 마녀(Margaret Hamilton)로 변한 미스 걸치(Margaret Hamilton)와, 각각 허수아비(Ray Bolger), 양철 나뭇꾼(Jack Haley), 겁쟁이 사자(Bert Lahr)로 변한 헝크, 히커리, 지크, 그리고 캔자스에서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기 직전에 만났던 마벨 교수(Frank Morgan)도 오즈의 나라에서 만난다.

도로시는 엠 숙모가 있는 캔자스로 돌아가기 위해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Frank Morgan)를 만나러 에메랄드 성으로 가는 도중에 허수아비, 양철 나뭇꾼, 그리고 겁쟁이 사자를 차례로 만나게 되는데, 이들에게는 꿈이 있다. 허수아비는 두뇌를, 양철 나뭇꾼은 심장을, 겁쟁이 사자는 배짱을 얻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에메랄드 성으로 향한다. 두뇌, 심장, 배짱은 아이들이 가져야 할 꿈이기도 하다.

허수아비, 양철 나뭇꾼, 겁쟁이 사자의 꿈인 두뇌, 심장, 배짱이 아이들이 가져야 할 지식, 인정, 용기를 이야기하고 있다면, 도로시가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던 캔자스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꿈은 아이들에게 가정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리 무지개 너머 세상이 좋아 보여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집만큼 안전한 곳은 없다. 글린다(Billie Burke)가 도로시에게 캔자스로 돌아가는 방법을 미리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는 도로시가 스스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성장을 바랐기 때문이다.

도로시는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캔자스에서 오즈의 나라로 가게 되는데, 이때 영화의 화면이 세피아에서 테크니컬러로 바뀐다. '오즈의 마법사'가 나온 당시에는, 물론 '오즈의 마법사'가 나온 같은 해에 빅터 플레밍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Gone with the Wind, 1939)'가 나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흑백 영화가 주류였다. '오즈의 마법사'를 통해 컬러 화면을 처음 보게 된 당시의 관객들은 도로시가 오즈의 나라를 보며 놀라듯 놀랐을 것이다.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가 없던 시절에 일일이 만들고 그린 '오즈의 마법사'의 세트와 배경막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도로시처럼 꿈 속에 있지 않나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훌륭하다. 뮤지컬 영화이니만큼 '오즈의 마법사'가 들려주는 노래들도 너무나 훌륭하다. 'Over the Rainbow'는 물론이고, 'Ding-Dong! The Witch Is Dead'와, 'If I Only Had a Brain/If I Only Had a Heart/If I Only Had the Nerve', 그리고 'We're off to See the Wizard'가 관객들에게 동심을 들려주고 있다.

"There's no place like home."

(집만한 곳은 없다.)

 

주디 갈란드는 '오즈의 마법사'로 어린 나이에 일찍 화려한 스타가 되었지만, 이후 그녀의 삶은 그리 화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는 다시 캔자스의 집으로 돌아와 행복해 하지만, 정작 주디 갈란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했다. 5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4번의 이혼을 겪었으며, 오랫동안 알코올 중독자로 지냈다. 그리고 약물 과다 복용으로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오즈의 마법사'는 70년 넘게 동심을 위해 각근하였고, 유행을 초월한 이 인정이 넘치는 철학을 담은 '오즈의 마법사' 앞에서는 세월도 무기력하였다. 난 '오즈의 마법사'를 볼 때마다 즐거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 있으면 다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즐거워지고, 한편으로는 다시는 동심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슬퍼진다.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 동심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각박하게 살아왔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