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지바고'의 원작은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이다. 이 소설은 시인이자 의사인 러시아의 지식인 유리 지바고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이은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의 격동 속에서 겪는 방황과 정신적 고독, 사랑을 그리고 있다. 1956년에 완성된 이 소설은 러시아 혁명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러시아에서 출판이 금지되어 1957년에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이 소설로 1958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소련 정부와 소비에트 작가 동맹의 압력으로 수상을 거절해야만 했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소비에트 작가 동맹에서 제명되어 생계 유지의 수단마저 빼앗겼으며, 자신을 러시아에서 추방하려 하자 소련 공산당 제1서기 흐루시초프에게 모국을 떠나는 것은 나에겐 죽음과 같다라는 탄원서를 보내 추방은 면하기도 하였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60년에 폐암으로 사망하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지난 1988년에야 소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에서 출판되었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닥터 지바고'가 소설의 의도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러시아 혁명과 당시의 러시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으로 소설이 30여 년 동안 러시아에서 출판이 금지되었고, 소설을 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도 모진 탄압을 받았다는 사실들을 감안하면, '닥터 지바고'가 소설의 의도를 그렇게 잘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과 당시의 러시아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보다는 유리 지바고(Omar Sharif)와 라라(Julie Christie)의 사랑 이야기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닥터 지바고'는 안타깝지만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불륜극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닥터 지바고'가 소설의 의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 혁명 전후의 러시아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들과, 유리 지바고를 통해 러시아 혁명과 당시의 러시아 사회를 넌지시 비판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라라와 코마로브스키(Rod Steiger)가 호화로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과, 러시아 민중들이 시위를 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불평등한 러시아 사회를 암시하고 있으며, 눈 속에 묻힌, 그리고 추위에 얼어붙은 러시아 군인의 시체들을 보여주는 살벌한 장면들로, 러시아 혁명에 불을 댕긴 러시아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러시아가 처한 참혹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유리 지바고는 혁명으로 혁명 전보다 생활은 어려워지고, 개인적인 감정조차 허용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한다. 유리 지바고는 비밀경찰인 이복형 예브그라프 지바고(Alec Guinness)로부터 자신이 썼던 시들로 인해 자신이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통고를 받게 되고, 결국 이복형의 도움으로 가족을 데리고 우랄 산맥의 오지 바리끼노로 가서, 그곳에서 숨어 지내기로 결심한다. 유리 지바고는 바리끼노로 가는 도중에 내전으로 불타버린 마을과, 비참한 삶을 사는 마을 사람들을 목격한다. 나중에는 빨치산에게 납치되어 군의관으로 포로 생활을 하게 되는데, 동족끼리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목격한 유리 지바고는 적군과 백군이 벌이는 내전에 환멸을 느낀다.

소설에서는 유리 지바고의 라라에 대한 사랑이 유리 지바고가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의 격동 속에서 사회의 변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겪는 방황과 정신적 고독에 어떤 식으로 잘 결합이 되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만 부각이 되어, 유리 지바고의 라라에 대한 사랑이 아무런 설득력 없이, 그저 불륜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남편의 불륜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그래서 사회의 변혁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의 방황과 정신적 고독을 이해하고 있는 듯한 토냐(Geraldine Chaplin)를 통해 관객들에게 유리 지바고의 라라에 대한 사랑을 이해시키고자 하나, 오히려 유리 지바고를 이해하는 토냐마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결과는 데이비드 린 감독과, '닥터 지바고'의 각색을 담당한 로버트 볼트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소설과는 달리 3시간이 조금 넘는 제한된 상영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영화 특성상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주로 롱 숏(long shot)으로 촬영한 웅장한 화면에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담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비록 유리 지바고가 아내 토냐를 속이고 라라와 불륜에 빠지는 '닥터 지바고'의 이야기는 그다지 아름답진 않지만, '닥터 지바고'가 보여주는 영상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드넓은 설원을 배경으로, 바리끼노로 가는 유리 지바고와 그의 가족이 탄 기차를 롱 숏으로 촬영한 장면과, 유리 지바고가 라라와 라라의 딸 카탸(Lucy Westmore)를 데리고 바리끼노에 오는 장면에서 보여주는, 안과 밖이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힌 저택은, 이 장면에서 유리 지바고가 느끼는 심리적 불안과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아름답다.

유리 지바고와 라라는 바리끼노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늑대들의 울음소리로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도 하지만,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 행복한 시간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한다. 코마로브스키가 다시 나타나 유리 지바고에게 라라의 남편이자 극단적 혁명가였던 파샤(Tom Courtenay)가 숙청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라라의 신변도 위험하다고 일러 준다. 유리 지바고는 라라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라라에게는 곧 뒤따라가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라라를 코마로브스키와 함께 떠나보낸다. 라라는 자신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유리 지바고의 아이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곧 뒤따라가겠다는 유리 지바고의 말을 믿는 척하며, 유리 지바고를 바리끼노에 남겨둔 채 코마로브스키와 함께 바리끼노를 떠난다. 유리 지바고가 마지막으로 라라를 한순간이라도 더 보기 위해 저택으로 뛰어 들어가 얼어붙은 창문을 깨고 저 멀리 사라지는 라라가 탄 썰매를 바라보는 장면은 유리 지바고가 느끼고 있는 라라와의 이별의 아픔을 관객들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명장면이다.

유리 지바고 역은 오마 샤리프가, 라라 역은 줄리 크리스티가 맡고 있다. 유리 지바고의 아내 토냐 역을 맡은 제랄딘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의 딸이다. 코마로브스키 역은 로드 스타이거가, 라라의 남편인 혁명가 파샤 역은 톰 커티네이가, 그리고 유리 지바고의 이복형인 예브그라프 지바고 역은 알렉 기네스가 맡고 있다.

러시아의 민속 발현 악기인 발랄라이카의 감상적이고 우울한 음색이 인상적인 모리스 자르의 '라라의 테마 (Lara's Theme)'는 유리 지바고와 라라의 애절한 사랑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닥터 지바고'는 작품상을 포함하여 10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각색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음악상의 5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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