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 시간 길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말합니다. 신이시여 제발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실인지 말씀해 주십시요. 정의는 없습니다. 있는 자들은 이기고, 없는 자들은 무력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거짓말에 지쳐 갑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심하고, 우리의 믿음을 의심하고, 우리 체제를 의심합니다. 그리고 법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여러분이 법입니다. 여러분이 법입니다. ...저의 믿음은 믿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면 믿음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만약에 우리가 정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믿고 정의롭게 행동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저는 우리 마음 속에 정의가 있다고 믿습니다."
법정에서 배심원들을 향한 변호사 프랭크 갤빈(Paul Newman)의 최종 변론은 바로 관객들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게 던지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심판'에서 프랭크 갤빈을 연기하는 폴 뉴먼은 누가 뭐라 해도 대단한 배우임에는 틀림없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데,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볼 때마다 새삼 대단한 배우라는 것을 느낀다. '심판'에서 폴 뉴먼의 연기는 단연 최고다. 특히 프랭크 갤빈이 최종 변론을 하는 장면에서 폴 뉴먼의 진심 어린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장면에 몰입하게 한다.
'심판'을 연출한 시드니 루멧 감독 또한 폴 뉴먼만큼이나 대단한 영화감독이다. 시드니 루멧은 개인의 도덕적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를 잘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영화감독이다. '심판'은 가톨릭 병원과 거대 법률 회사에 맞서 싸우는 프랭크 갤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있는 자들의 부도덕함과, 없는 자들을 지켜 주지 못하는 법의 한계를 비판하는 영화이다.
프랭크 갤빈은 오랜 시간 길을 잃은 변호사다. 프랭크 갤빈은 과거에는 거대 법률 회사인 스턴, 해링턴, 피어스에 입사해서, 해링턴의 딸과 결혼도 하고, 개도 키우고,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으나, 배심원들을 매수하는 부도덕한 짓을 저지른 회사에 맞섰다가 오히려 자신이 배심원들을 매수한 혐의를 받고, 결국 회사에서 잘리고, 이혼까지 당했다. 지금은 알코올 중독자로, 그리고 교통 사고 피해자를 등치는 변호사로 전락한 상태다. 하지만 프랭크 갤빈은 의료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데보라 앤 케이(Susan Benenson)의 언니 샐리 도너히(Roxanne Hart)가 가톨릭 병원을 제소한 사건을 맡으면서 가톨릭 병원을 변호하는 또 다른 거대 법률 회사에 맞서게 된다.
프랭크 갤빈은 비록 교통 사고 피해자를 등치는 변호사로 전락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정의가 살아 있다. 프랭크 갤빈이 로라 피셔(Charlotte Rampling)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배심원들)이 배심원석에 들어설 때 그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죠. ...어쩌면 옳은 일을 할 수 있을거야. ...그런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기계에 의존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데보라 앤 케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프랭크 갤빈은 의료 사고를 덮기에만 급급한 가톨릭 병원의 브로피 주교(Edward Binns)가 제시한 거액의 합의금을 거절하고, 재판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한다.
없는 자를 변호하는, 그리고 스스로도 없는 자인 프랭크 갤빈이 있는 자들인 가톨릭 병원과 거대 법률 회사를 상대로 재판에서 이기기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인다. 거대 법률 회사의 변호사 에드 콘캐넌(James Mason)은 여러 명의 변호사의 도움으로 재판을 준비하고,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신문과 방송까지 동원한다. 반면, 프랭크 갤빈의 재판 준비 과정은 에드 콘캐넌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프랭크 갤빈에게 도움을 주는 이는 미키 모리시(Jack Warden)뿐이다. 여기에 호일 판사(Milo O'Shea)는 결코 프랭크 갤빈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샐리 도너히의 남편인 케빈 도너히(James Handy)는 거액의 합의금을 거절하고 이길 수 없는 재판을 하려는 프랭크 갤빈을 책망하고, 프랭크 갤빈의 유일한 증인인 그루버 박사(Lewis Stadlen)는 재판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프랭크 갤빈이 사랑하고 의지한 로라 피셔마저 에드 콘캐넌에게 매수된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프랭크 갤빈은 충격에 빠진다.
프랭크 갤빈이 어렵사리 찾아낸, 의료 사고 당시 간호사였던 케이틀린 코스텔로 프라이스(Lindsay Crouse)의 증언을 통해, 데보라 앤 케이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린 의료 사고를 낸 장본인인 타울러 박사(Wesley Addy)가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데보라 앤 케이의 입원 서류를 위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에드 콘캐넌은 어떻게든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하지만 배심원들의 심판은 프랭크 갤빈의 손을 들어 준다. '심판'은 프랭크 갤빈의 손을 들어 준 배심원들의 심판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 즉 결국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은 법보다는 사람들의 양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랭크 갤빈의 최종 변론은 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러분이 법입니다."
'심판'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재판에서 이긴 프랭크 갤빈은 로라 피셔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로라 피셔와 당당한 듯 평온하게 쉬는 프랭크 갤빈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각각 양심을 저버린 사람과 양심을 지킨 사람의 모습이다.
'심판'과 같이 조금 지난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현재는 대스타인 배우들의 무명 시절, 또는 젊은 시절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는 재미도 준다. '심판'의 마지막 재판 장면을 보면 프랭크 갤빈 뒤 방청석에 앉아 있는 브루스 윌리스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브루스 윌리스의 오른쪽에는 쏘우(Saw) 시리즈의 토빈 벨도 보인다.
'심판'은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0개의 영화 장르에서 각각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 (AFI's 10 Top 10)"의 법정 영화 장르 부문에서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1962)', '12명의 성난 사람들 (12 Angry Men, 1957)',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Kramer vs. Kramer, 1979)'에 이어 4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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