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든 영화에서든, 사람 사이의 정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이야기의 소재도 없는 것 같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알프레드 우리의 동명의 연극을 역시 알프레드 우리가 각색한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성, 나이, 인종, 신분, 종교, 모든 면에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25년을 함께 하면서 가족 이상의 정을 나누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여전히 인종차별이 사회 깊숙히 만연되어 있던 1948년의 미국 남부의 조지아주 애틀랜타. 깐깐하고 고집 세고 자존심 강한 72살의 데이지(Jessica Tandy)는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사고를 친다. 시장에 가려고 차고에서 차를 빼다 기어 조작 실수로 차가 이웃집 정원으로 돌진하는 사고를 내고 만다. 데이지의 착한 아들, 불리(Dan Aykroyd)는 차를 운전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엄마에게 이제는 운전사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데이지는 운전사를 두는 것이 싫다. 가정부 아이델라(Esther Rolle) 외에는, 부엌에서 음식이나 축내고 전화질만 해 댈지도 모르는 다른 사람을 자기 집에 들이는 것이 싫다.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리는 호크(Morgan Freeman)라는 60세의 흑인 노인을 엄마의 운전사로 고용한다.

데이지는 호크를 차갑게 대한다. 운전사를 데리고 다니면 남들이 사치한다고 생각할까봐 호크가 운전사로 온 이후 아예 외출도 하지 않는다. 호크에게 트집을 잡아 불리에게 일러 호크를 쫓아내려는 귀여운(?) 계략까지 꾸미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좋은 호크는 데이지가 자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호크는 전차를 타고 가게에 가려는 데이지를 뒤따라가 마침내 데이지를 차에 태우는데 성공한다. 데이지는 진실한 호크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호크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글 읽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크리스마스에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데이지와 호크의 사이는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살아온 환경이나 생각들이 너무나도 달랐다. 데이지는 호크로 인해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알게 된다. 전직 교사인 데이지는 자신은 가난 속에서 부를 축적한 유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데이지는 불리와 호크에게 자신의 가난했던 옛 시절을 자주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데이지는 호크가 친구의 아버지가 처참하게 살해 당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자라온 세상은 모르고 살아왔다. 불리의 삼촌 생일 잔치에 가는 도중에 데이지는 경찰관들이 인종차별적으로 호크를 대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하지만 데이지는 경찰관들이 자신에게도 호크와 똑같이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또한 데이지는 호크가 주유를 한 주유소에서 왜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데이지는 유태교 회당이 폭탄 테러를 당한 사건을 보고서야 유태인인 자신 또한 인종차별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호크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데이지는 인종차별 문제에 새삼 관심을 가지게 된다.

데이지는 기업가인 아들이 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의식하여 가기를 꺼린 마틴 루터 킹의 연설에 당당하게 혼자 간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에 가는 도중에 데이지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면서 마틴 루터 킹의 연설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호크를 넌지시 떠보지만, 호크는 세상이 그렇게 많이는 변하지 않았다고 거절한다. 호크는 이러한 민감한 문제를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당일에, 그것도 가는 도중에 꺼내는 데이지에게 조금은 화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데이지는 데이지대로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호크가 섭섭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생각은 각자 살아온 환경만큼이나 달랐다. 그러나 이것이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을 갈라놓지는 못한다.

"Hoke...you're my best friend."

(호크...당신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에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 출연을 한 지 5년이 지난 뒤에 8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데이지 역의 제시카 탠디와, 지금도 영화배우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호크 역의 모건 프리먼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자신들의 영화 인생 최고의 연기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제시카 탠디와 모건 프리먼은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제시카 탠디만 수상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당시 80세였던 제시카 탠디는 지금까지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최고령 수상자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불리 역의 댄 애크로이드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과는 달리, 영화를 연출한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작품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분장상의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호크도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진 데이지는 양로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이미 팔려버린 엄마의 집을 호크와 마지막으로 둘러본 불리는 호크와 함께 엄마가 있는 양로원으로 향한다. 불리가 엄마와 호크만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고, 데이지와 호크만 남겨진 식탁에서 호크가 데이지에게 파이를 잘라 먹여주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서로에 대한 인내와 관심, 그리고 배려로 25년을 함께 한 데이지와 호크는 이제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다는 듯, 아무말 없이 서로를 바라본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서로가 옆에 있어 죽음도 두 사람에게는 두렵지 않아 보인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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