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린 감독의 작품 세계는 '콰이강의 다리'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나뉘어진다. 사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주로 롱 숏(long shot)으로 촬영한 웅장한 화면에 인물들의 복잡한 심리 상태를 담아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으로 유명하다. '콰이강의 다리' 이후의 작품들인 그의 대표작,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 1962)'와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1965)'를 보면, 사막과 설원을 배경으로 한 웅장한 화면들이 관객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린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 이전에는 웅장한 화면의 스케일이 큰 영화보다는 '밀회 (Brief Encounter, 1945)'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1946)'과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 1948)'와 같은 스케일은 작지만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중심의 영화들을 많이 만들었다. 물론 데이비드 린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 이후의 작품들로 유명해지기는 하였지만, '콰이강의 다리' 이후의 작품들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영화의 스케일은 커졌지만 영화의 이야기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없어졌다는 비평을 듣기도 하였다. '콰이강의 다리'도 웅장한 화면의 스케일이 큰 영화이긴 하지만, '콰이강의 다리' 이전의 작품 스타일이 많이 남아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아라비아의 로렌스'나 '닥터 지바고'에 비하면 영화의 스케일은 조금 떨어지지만, 영화의 이야기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재미는 휠씬 더 뛰어나다.

'콰이강의 다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인 전쟁 영화이다. 보통 전쟁 영화는 이야기의 중심을 전쟁에 두고서 전쟁의 참상과 광기를 보여주고 반전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콰이강의 다리'는 전쟁보다는 일본군의 포로가 된 한 영국 장교와 일본군 포로 수용소장 사이에서 벌어지는 자존심 싸움을 통해 전쟁의 광기와 반전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니콜슨 중령(Alec Guinness)이 이끄는 영국군 포로들이 'Colonel Bogey March'를 휘파람으로 불면서, 타이의 밀림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일본군 포로 수용소로 행진해 들어온다. 수용소장, 사이토 대령(Sessue Hayakawa)은 영국군 포로들을 이용하여, 방콕과 랭군을 잇는 철도 다리를 콰이강 위에 건설하려 한다. 사이토 대령은 제시간에 다리를 완공하기 위해 영국군 모두에게 다리 건설 작업을 강요하지만, 자존심 강한 원칙주의자, 니콜슨 중령은 장교에게는 육체 노동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제네바 조약을 들어 영국 장교들의 다리 건설 작업을 거부한다. 니콜슨 중령은 자존심과 원칙을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 장교들의 목숨도 위태롭게 만든다. 사이토 대령은 니콜슨 중령을 기관총으로 위협도 하고, "오븐"에 가두기도 해보지만, 이 일로 다리 건설이 자꾸 늦어지자 결국 니콜슨 중령에게 굴복하고 만다. 니콜슨 중령만큼이나 자존심 강한 사이토 대령이 니콜슨 중령에게 굴복하고 남몰래 우는 모습은 웃기기까지 하다.

니콜슨 중령은 다리 건설을 놓고 사이토 대령과의 자존심 싸움을 계속하고, 점점 이성을 잃어간다. 니콜슨 중령은 영국군의 긍지와 자존심을 위해 일본군보다 더 나은 다리를 건설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일본과 전쟁 중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다리를 제시간에 완공하기 위해 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다리 건설 현장으로 내몰기도 한다. 영국 군의관, 클립튼 소령(James Donald)이 다리를 건설하는 것은 적군에게 협력하는 것이고 반역 행위라고 말하자, 니콜슨 중령은 언젠간 전쟁은 끝날 것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 이 다리를 사용할 사람들이 이 다리는 영국군이 지은 다리라고 기억해줄 것이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다리가 완공되자, 이 다리는 영국군 장병들이 설계하고 지었다라고 새겨진 명판에 자랑스럽게 자신이 직접 망치질을 한다. 다리 건설을 위해 니콜슨 중령에게 굴복했던 사이토 대령은 영국군이 일본군보다 더 나은 다리를 건설하자 또다시 자존심이 상한다. 굴욕감을 느낀 사이토 대령은, 바라던 대로 다리가 제시간에 완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계획한다.

미국인 셰어스(William Holden)와, 클립튼 소령에게는 니콜슨 중령과 사이토 대령이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 단지 광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셰어스는 포로 수용소를 탈출함으로서, 클립튼 소령은 다리 개통식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니콜슨 중령이 사이토 대령과 벌이는 싸움에 말려들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밀림을 탈출하여 극적으로 구출된 셰어스는 영국군이 이끄는 콰이강의 다리 폭파 작전에 반 강제적으로 투입되어 다시 밀림으로 돌아옴으로서 부득이 니콜슨 중령이 벌이는 싸움에 다시 말려들게 된다.

'콰이강의 다리'에 니콜슨 중령 못지않게 자존심 강하고 원칙주의자인 인물이 한명 더 등장한다. 바로 콰이강의 다리 폭파 작전에 투입된 영국 특공대장, 워든 소령(Jack Hawkins)이다. 한쪽 다리를 다쳐 걷기조차 힘들어진 워든 소령은 대원들에게 자신은 밀림에 버려두고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나라고 명령한다. 셰어스는 워든 소령에게 자존심과 원칙 때문에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하고, 워든 소령을 끝까지 데리고 간다.

'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볼레의 소설, 'Le Pont de la Riviere Kwai (The Bridge over the River Kwai)'이다. 피에르 볼레의 또 다른 소설, 'La Planete des singes (Monkey Planet)'은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혹성탈출 (Planet of the Apes, 1968)'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콰이강의 다리'의 각본은 마이클 윌슨과 칼 포어맨이 썼다. 이 두 사람은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의 열풍이 불던 당시에 블랙 리스트에 올라, 이 때문에 자신들의 이름을 영화에 올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음에도 정작 상은 영어도 할 줄 모르는 피에르 볼레에게 주어졌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난 이후인 1984년에서야 두 사람에게 아카데미 각본상이 주어진다. 칼 포어맨은 '하이 눈 (High Noon, 1952)'의 각본도 썼었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자존심 싸움을 벌인 니콜슨 중령과 사이토 대령 역의 알렉 기네스와 하야카와 세스수에는 각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다. 결과는 알렉 기네스만 수상했다.

'콰이강의 다리'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을 포함, 7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콰이강의 다리'가 주는 교훈이 전쟁 영화로서 반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라는 말이 있다. '콰이강의 다리'에서는 니콜슨 대령의 융통성 없는 꼿꼿함이 콰이강 위로 곧게 뻗은 다리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Madness! Madness!"

(미쳤어! 미쳤어!)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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