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시절에,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던 쇼 프로가 있었다. 바로 서커스였다. 오전에 차례를 지내고 제사상을 정리하고 나면 대충 점심 시간이 되고, 가족과 점심을 먹으면서 스릴 넘치는 서커스의 묘기들을 가슴 졸이면서 보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서커스의 인기가 떨어져 텔레비전에서 서커스 보기가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찾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혹시 여전히 서커스를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세실 B. 드밀 감독의 '지상 최대의 쇼'를 권해 주고 싶다. '지상 최대의 쇼'는 명절 때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던 서커스의 온갖 묘기들을 실컷 볼 수 있는 영화이며, 서커스의 묘기에서 오는 스릴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서커스보다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지상 최대의 쇼'는 정말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지상 최대의 쇼'는 2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의 2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캐벌케이드 (Cavalcade, 1933)'를 제외하고는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들은 모두 다 보았는데, 그중에서 '지상 최대의 쇼'는 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브로드웨이 멜로디 (The Broadway Melody, 1929)'와, 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 위대한 지그펠드 (The Great Ziegfeld, 1936)'와 함께 가장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로 꼽고 있으며, '브로드웨이 멜로디', '위대한 지그펠드', '지상 최대의 쇼', 이 세 영화들 중에서도 '지상 최대의 쇼'는 가장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로 꼽고 있다.
서커스와 서커스 단원들을 사랑하는 책임감이 강한 서커스 단장 브래드(Charlton Heston)는 서커스 단원들을 지키고, 서커스를 기다리는 수많은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도시만을 중심으로 한 10주 공연을 결정한 이사회에 반발, 작은 도시와 마을을 포함한 전 시즌 공연을 주장한다. 공중그네 곡예사인 홀리(Betty Hutton)와 위대한 세바스찬(Cornel Wilde)은 중앙 무대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한 경쟁을 한다. 이 와중에 홀리와 세바스찬, 브래드 사이에 미묘한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한편 항상 관중을 웃겨야 하는 광대지만, 버튼스(James Stewart)는 서커스 단장인 브래드조차 모르는 슬픈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지상 최대의 쇼'는 영화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세실 B. 드밀 감독의 내레이션을 넣어 다큐멘타리 형식을 취함으로서 화려해 보이는 서커스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서커스 단원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릴려고 한 영화이다. 하지만 '지상 최대의 쇼'의 이야기와 그 전개는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어설프기 짝이 없다.
작품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지상 최대의 쇼'가 2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 (High Noon, 1952)'과, 존 포드 감독의 '말 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 등을 물리치고 작품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가 세실 B. 드밀 감독이 당시 미국 사회를 들끓게 한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의 지지자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현재도 여전히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하이 눈'이 '지상 최대의 쇼'에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빼앗긴 이유도 블랙 리스트에 오른 칼 포어맨이 쓴 영화 각본이 매카시즘에 반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티 허튼과 코넬 와일드가 각각 홀리와 위대한 세바스찬을, 그리고 당시 거의 신인 배우나 다름없던 찰턴 헤스턴이 서커스 단장 브래드를 연기한다. 그리고 제임스 스튜어트가 광대 버튼스를 연기하는데, 버튼스는 영화 내내 광대 분장을 한 채로 나온다. 그래서 '지상 최대의 쇼'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버튼스를 잡기 위해 서커스단에 나타난 FBI 요원 그레고리(Henry Wilcoxon)가 브래드에게 보여 주는 제임스 스튜어트의 사진을 보고서야 버튼스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가 제임스 스튜어트였구나 알게 된다.
'지상 최대의 쇼'에는 카메오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들로는 밥 호프와 빙 크로스비가 있다. 필리스(Dorothy Lamour)가 'Lovely Luawana Lady' 노래를 부르면서 서커스 공연이 진행되는 장면에서 관중석에 나란히 앉아 팝콘을 열심히 먹으면서 서커스 공연을 관람하는 밥 호프와 빙 크로스비를 볼 수 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카고 (Chicago, 2002) (0) | 2011.11.28 |
---|---|
투씨 (Tootsie, 1982) (0) | 2011.11.23 |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 1959) (2) | 2011.11.12 |
왕과 나 (The King and I, 1956) (0) | 2011.11.08 |
위대한 지그펠드 (The Great Ziegfeld, 1936) (0) | 2011.11.01 |
스팔타커스 (Spartacus, 1960) (0) | 2011.10.30 |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53) (0) | 2011.10.25 |
사계절의 사나이 (A Man for All Seasons, 1966) (2) | 2011.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