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팔타커스'는 기원전 73년에서 기원전 71년까지 노예들을 이끌고 로마에 대항한 노예 검투사 스팔타커스(Spartacus)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스팔타커스'를 보고 나면 두 가지 점에서 놀라게 된다. 첫번째로, 상당히 큰 영화의 스케일에 놀라게 된다. '스팔타커스'는 1,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인데, '스팔타커스'의 제작비는 전해에 나온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초대작 영화 '벤허 (Ben-Hur, 1959)'에 들어간 제작비 1,5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스팔타커스'의 후반부에 스팔타커스(Kirk Douglas)가 이끄는 노예 반란군과,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Laurence Olivier)가 이끄는 로마 군대 사이의 전쟁 장면을 보면 '스팔타커스'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다.
두번째로 놀라게 되는 점은 '스팔타커스'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를 만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라는 점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특유의 예술성이 엿보이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보면, '스팔타커스'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영화이다. 사실 '스팔타커스'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라기보다는, '스팔타커스'에서 기획과 주연을 맡은 커크 더글라스의 영화이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벤허'의 벤허 역에 자신이 아닌 찰턴 헤스턴을 뽑자 실망낙담한 커크 더글라스는 대신 하워드 패스트의 소설 '스팔타커스 (Spartacus)'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한다. 커크 더글라스는 안소니 만 감독에게 '스팔타커스'의 연출을 맡기지만 영화의 촬영이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안소니 만 감독을 해고하고 - 데스 벨리(Death Valley)에서 촬영을 한 영화 초반부의 리비아 광산에서의 장면들은 안소니 만 감독이 연출하였다 - '영광의 길 (Path of Glory, 1957)'에서 같이 일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다. 하지만 커크 더글라스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과도 '스팔타커스'의 연출 방향에 대한 견해차로 대립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스팔타커스'의 연출에 대한 커크 더글라스와, '스팔타커스'의 제작사인 유니버설 영화사(Universal Pictures)의 지나친 간섭에 불만을 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스팔타커스'를 자신의 영화로 인정하지 않았다.
'스팔타커스'는 '벤허'와 비슷한 초대작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에는 '벤허'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배층의 부도덕성과 피지배층의 억압과 핍박을 보여 주는 영화의 이야기가 오늘날의 인간 사회와 정치를 비판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금은 오히려 '벤허'보다도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스팔타커스'는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1998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 (AFI's 100 Years...100 Movies)"에서는 순위에도 들지 못했지만, 2007년에 새로이 선정한 10주년 기념판에서는 100위를 차지한 '벤허'보다도 높은 81위를 차지했다. 정적인 두 원로원 크라수스와 그라쿠스(Gaius Sempronius Gracchus, Charles Laughton)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노예 반란군을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용하려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스팔타커스'에서 지배층의 부도덕성을 지배층의 비정상적인 성에 비유하여 극대화하고 있는데, 그라쿠스를 난잡한 오입쟁이로, 크라수스를 양성애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라쿠스가 바티아투스(Peter Ustinov)에게 말한다. "난 여자를 좋아해. 난 난교 기질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난, 여느 귀족들과는 달리, 나의 기질 때문에 지키지도 못할 결혼 서약은 하지 않아."
크라수스가 시중을 드는 안토니우스(Tony Curtis)를 유혹하는 듯한 목욕탕 장면에서 크라수스는 안토니우스에게 말한다. "굴을 먹나?...달팽이는 먹나?...굴을 먹는 것은 도덕적이고, 달팽이를 먹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나?...다 취향의 문제 아니겠어?...내 취향은 굴도 달팽이도 다 좋아하지." 여기에서 굴은 여자를, 달팽이는 남자를 상징하고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크라수스는 스팔타커스의 아름다운 부인 바리니아(Jean Simmons)에게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낸다. 스팔타커스가 이끄는 노예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크라수스는 포로가 된 노예들에게 참혹한 십자가형을 받지 않는 대신에 스팔타커스가 누구인지를 밝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하지만 노예들은 스팔타커스와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해 자신이 스팔타커스라고 외친다. 크라수스는 노예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받고 있는 스팔타커스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질투도 느낀다. 크라수스는 스팔타커스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심으로 스팔타커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바리니아를 가지려 한 것이다.
'스팔타커스'는 1991년에 재편집되면서 개봉 당시 삭제되었던 장면들이 복구되는데, 그 대표적인 장면이 크라수스가 안토니우스의 시중을 받으면서 목욕을 하는 목욕탕 장면이다. 이 장면은 동성애를 암시한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는데, 개봉 당시 '스팔타커스'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배층의 부도덕성을 암시하는 이 장면은 짧은 장면이지만 영화의 주제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장면이다. 복구 당시 이 장면에 대사가 빠져 있었다. 안토니우스의 대사는 복구 당시 66세였던 토니 커티스의 목소리로 다시 녹음을 하였으나, 크라수스의 대사는 이미 고인이 된 로렌스 올리비에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안소니 홉킨즈의 목소리로 녹음을 하였다.
'스팔타커스'는 초대작 영화답게, 커크 더글라스를 포함하여, 로렌스 올리비에, 진 시몬즈, 찰스 로튼, 피터 유스티노프, 토니 커티스 등, 배역진도 화려한 영화이다. 바티아투스를 연기한 피터 유스티노프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스팔타커스'의 각본을 쓴 영화 각본가 달톤 트럼보는 미국 사회에 매카시즘(극단적 반공주의)의 열풍이 불 때 블랙 리스트에 오른 인물로,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필명으로 몰래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커크 더글라스는 과감히 달톤 트럼보의 이름을 영화에 올려 블랙 리스트를 타파하는데 앞장섰다.
"I am Spartacus!"
(내가 스팔타커스다!)
2천년이 지나고서야 사라지는 노예 제도 없는 세상을 꿈꾼 스팔타커스의 자유를 위한 반란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난다. 그리고 6천명의 노예들이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그라쿠스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된 바리니아는 십자가에 못 박힌 스팔타커스에게 자유의 몸이 된 아들을 보여 준다. 그라쿠스가 크라수스에게 잡혀있는 바리니아와 스팔타커스의 아들을 빼돌려 자유의 몸이 되게 해준 것은 그라쿠스가 지배층의 자비를 베푼 것이라기보다는 크라수스에게 마지막 상처를 주기 위한 그라쿠스의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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