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2 - 리로디드'는 매트릭스 시리즈 3부작 - '매트릭스 (Matrix, 1999)', '매트릭스 2 - 리로디드', '매트릭스 3 - 레볼루션 (The Matrix Revolutions, 2003)' - 중에서 이야기가 가장 복잡하고,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 있는 영화이다. 물론 '매트릭스'보다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강렬한 액션이 영화를 뒤덮고는 있지만, 액션과 액션 사이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강렬한 액션보다도 더 재미있고, '매트릭스'에서보다도 더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다.

나이오베(Jada Pinkett Smith)는 시온의 동료들에게 호버크래프트 오시리스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한다. "기계들이 땅을 파고 있어. 지표면에서 곧장 시온을 향해 내려오고 있어."

오라클(Gloria Foster)은 네오(Keanu Reeves)에게 위기에 처한 시온을 구하려면 기계의 메인 프레임인 소스로 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메로빈지언(Lambert Wilson)에게 포로로 잡혀 있는 키메이커(Randall Duk Kim)가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네오, 모피어스(Laurence Fishburne), 트리니티(Carrie-Anne Moss)는 키메이커를 메로빈지언으로부터 탈출시키는데 성공하고, 키메이커와 시온의 동료들의 도움으로 소스에 접근한 네오는 매트릭스를 창조한 설계자(Helmut Bakaitis)를 만나게 된다. 설계자는 매트릭스 시리즈 3부작을 통틀어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네오와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설계자가 창조한 첫번째 매트릭스는 결점이 없고 숭고한 완전한 세계였지만, 인간에 내재한 불완전성에 의해 실패했다 - 같은 이야기가 '매트릭스'에서도 스미스 요원(Hugo Weaving)에 의해 언급되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인간의 그로테스크한 성질을 반영한 새로운 매트릭스를 설계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그러나 원래는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직관적인 프로그램 오라클이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았는데,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면 99%가 프로그램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변종, 즉 프로그램을 거부한 나머지 1%가 비록 소수이긴 해도 매트릭스 시스템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설계자는 완전한 변종 하나를 선택하여 오라클로 하여금 시온의 변종들에게 이 완전한 변종을 "그"로 믿도록 하게 하고, 완전한 변종 "그"에게는 소스로 가게 한다. 소스로 돌아온 "그"는 가지고 온 코드를 전달하고, 프라임 프로그램을 재입력한다. 이렇게 해서 매트릭스는 "리로디드"되고, 이와 함께 시온은 기계들에 의해 파괴된다. 그런 뒤 "그"는 시온을 재건할 16명의 여자와 7명의 남자를 매트릭스에서 선택하여 시온을 재건한다. 만약 이 과정을 따르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 매트릭스에 있는 모든 인간들은 사멸되고, 시온의 파괴와 함께 결국 인류는 멸망하게 된다. 이 과정이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즉 시온은 다섯 번이나 파괴되었고, 네오는 여섯 번째 "그"이며, 매트릭스는 다섯 번이나 "리로디드"되었다.

이로써 '매트릭스'에서 명확하지 않았던 오라클의 정체와, 네오와 모피어스의 궁극적인 목적이 명확해졌다. 오라클은 "그"를 통하여 인간의 정서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이 정보가 담긴 코드를 "그"를 이용하여 설계자에게 보내고, "그"가 가지고 온 코드를 바탕으로 설계자가 변종이 발생하지 않는, 인간 세계에 보다 근접한 매트릭스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며, '매트릭스'에서 관객들은 네오와 모피어스의 궁극적인 목적은 당연히 매트릭스의 파괴와 인류의 자유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네오와 모피어스는 설계자가 인간 세계에 근접한 매트릭스를 설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설계자의 이야기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뒤엎어 버린다. 네오는 인류를 구원할 "그"가 아닌, 인간 세계에 근접한 매트릭스를 설계하기 위해 설계자에 의해 선택된 또 다른 통제 시스템일 뿐이고, 매트릭스를 탈출한 인간들이 마지막 인간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시온 역시 기계들의 통제를 받고 있다. 그리고 오라클의 예언이라는 것도 시온의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어 기계들이 시온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여기서 관객들은 그럼 시온도 매트릭스 또는 매트릭스의 일부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가 후반부로 가면서 매트릭스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프로그램인 스미스 요원(Hugo Weaving)은 매트릭스에 들어온 베인(Ian Bliss)에게 자신을 복제시켜 베인의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 들어온다. 또한 네오는 매트릭스 밖 현실 세계에서도 초능력을 발휘하여 센티넬들을 물리친다.

워쇼스키 형제 감독은 '매트릭스'에서 세상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신이나 자연, 사회 관계와 같은 외적 원인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는 결정론과, 결정론을 부정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를 중요시하는 비결정론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세상의 본질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있다. 네오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알약을 선택하여 매트릭스를 탈출하고, 위기에 처한 시온을 구하기 위해 소스에 접근했지만, 이 모든 선택이 결국 설계자에 의해 미리 계산된 선택이었다. 하지만 네오가 두 개의 문 중 트리니티에게로 가는 문을 선택한 건 설계자도 예상하지 못한 네오의 선택이었다. 과연 세상은 미리 정해진 신의 결정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자유 의지에 따라 바뀌어 가는 것일까? 워쇼스키 형제 감독은 설계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매트릭스와, 인간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교묘하게 피하고 있다. 하기야 어느 누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을까?

전편인 '매트릭스'에서는 인간과 기계들의 관계를 단순히 선과 악의 관계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는 매트릭스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기계들의 관계를 상생의 관계로 보기 시작한다. 사실 오늘날 인간은 컴퓨터를 포함해서 기계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 3 - 레볼루션'에서는 매트릭스가 점점 더 인간 세계에 근접해 가는 이야기를 통해 매트릭스 시리즈 3부작이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진짜 주제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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