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인 (Shane, 1953)

영화 2009. 4. 15. 07:07

거울처럼 맑은 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사슴을 향해 장전되어 있지 않은 빈 총을 겨누면서 놀던 소년은 사슴 너머로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고 있다. 물을 마시던 사슴도 말을 탄 남자를 호기심으로 한참을 쳐다본다. 자기를 셰인이라고 소개를 한 이 남자는 녹비옷에 흰색 손잡이의 은빛 권총을 찬 모습뿐만 아니라 행동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셰인'은 정통 서부 영화의 대명사인 총잡이와, 서로 마주보고 총을 뽑는 총잡이들의 결투가 나오긴 하지만 총싸움이 많이 나오는 정통 서부 영화와는 색깔이 많이 다른 서부 영화이다. 같은 장르의 서부 영화인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하이 눈 (High Noon, 1952)'처럼 총싸움은 영화의 마지막에 짧게 보여 주며, 영화의 대부분은 영화의 이야기가 주는 긴장감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셰인'에서 보여 주는 긴장감은 '하이 눈'에서 보여 주는 긴장감과는 또 다르다. '하이 눈'에서의 긴장감은 진지한 주제를 다룬 영화답게 조금은 무겁고 심각하지만, '셰인'에서의 긴장감은 굉장히 서정적이고 감상적이다. 선량한 사람과 악당의 대결 구도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유도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긴장감을 과격하거나 심각하지 않게, 특히 미국 와이오밍주의 그랜드 티턴(Grand Teton)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한 맛깔스러운 장면들을 통해 굉장히 운치 있고 낭만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미지의 한 남자가 개척민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조용히 물리치고서 영웅의 모습으로 홀연히 사라진다는 이 영화의 이야기부터가 굉장히 낭만적이다. 그리고 셰인과 셰인을 우상으로 받드는 소년 조이(Brandon De Wilde)와의 우정, 셰인과 마리안 스테럿(Jean Arthur) 사이의 미묘한 감정, 개척민들의 땅을 뺏으려는 라이커(Emile Meyer) 일당과 조 스테럿(Van Heflin)을 대표로 하는 개척민들 간의 대립, 개척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라이커가 고용한 총잡이 잭 윌슨(Jack Palance)과 셰인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그리고 이제는 정착해서 평화롭게 살고자 하나 또다시 총을 들 수 밖에 없는 총잡이 셰인의 고뇌 등을 결코 통속적이 아닌, 품위 있고 낭만적이고 감상적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

진흙탕 길 위에서 어기적거리는 프랭크 스톤월 토리(Elisha Cook Jr.)의 모습과 걸을 때마다 쩌렁쩌렁 소리가 나는 부츠를 신고 나무 보도 위를 당당하게 걷는 잭 윌슨의 대조된 모습을 통하여, 총잡이 잭 윌슨이 주는 위압감과 그로 인해 토리가 느끼는 위축감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결국 토리는 비열한 윌슨의 총에 맞고 진흙탕 위에 쓰러진다.

토리의 장례식 날, 토리의 관이 땅 속으로 묻힐 때 주인을 떠나보내는 개가 토리의 관 주위를 서성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윌슨에게 어이없이 당한 토리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운치 있게 잘 표현한 장면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윌슨이 셰인과의 결투를 위해 일어나자 바닥에 앉아 있던 개도 슬며시 일어나 셰인과 윌슨 사이의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듯 슬금슬금 바를 가로질러 그 자리를 피한다. 셰인과 윌슨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굉장히 운치 있게 묘사한 명장면이다.

총잡이 윌슨이 나무 보도 위를 걸을 때마다 부츠에서 나는 쩌렁쩌렁대던 소리가 이제는 라이커 일당을 처치하고 바를 걷고 있는 셰인의 부츠에서도 들린다. 지금까지 개척민들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숨긴 채 지내온 셰인이 드디어 총잡이로서의 자신의 본모습을 되찾고 총잡이로서 나오는 위압감을 보여 주는 순간이다.

할 수 없이 또다시 총을 든 셰인은 라이커 일당을 물리치고는 또다시 자신의 세계로 떠나간다. 떠나가는 셰인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치는 조이의 대사는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명대사로 평가받고 있다.

"Shane! Come back!"

(셰인! 돌아와요!)

 

셰인이 조이를 뒤로 하고 말없이 떠나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 주는 몇 가지의 미심쩍은 장면들 - 셰인이 조이와 작별 인사를 나눌 때 조이가 셰인에게 피가 흐른다고 말하는 장면과, 셰인이 말을 타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약간은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조이의 얼굴 표정, 그리고 특히 셰인이 탄 말이 산을 오를 때 보여 주는 셰인의 축 쳐진 팔 - 로 셰인이 라이커 일당과의 결투에서 입은 상처로 결국은 죽었다는 셰인의 사망설(?)이 나돌기도 한다. 이러한 미심쩍은 장면들의 의도와 셰인의 사망설의 진실은 이 영화를 만든 조지 스티븐스 감독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셰인'은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 (The Searchers, 1956)', '하이 눈'과 더불어 미국 서부 영화의 3대 걸작으로,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1951)', '자이언트 (Giant, 1956)'와 더불어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미국적인 영화 3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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