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스 델마(Heath Ledger)가 자신이 9살이었을 때 겪었던 일을 잭 트위스트(Jake Gyllenhaal)에게 이야기해 준다. "마을에 같이 목장을 하던 얼과 리치라는 두 노인이 있었어. 이들은 꽤 거친 늙은 동성애자들이었는데, 마을의 조롱거리였지. 어쨌든 얼이 관개용 수로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어. 마을 사람들이 타이어 레버로 그를 치고, 차고, 그리고 그의 성기가 빠질 때까지 그를 끌고 다녔어....아버지는 나와 내 형에게 그걸 보여 줬지. 젠장, 내가 알기로는 아버지가 그랬어."
어릴 때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자란 에니스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과 단 둘이 목장을 하며 살고 싶어 하는 잭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 잭에 비해 다소 내성적이고 과묵한 에니스도 잭이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잭을 사랑한다. 그러나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두 남자가 같이 산다는 것은 목숨까지도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에니스가 잭에게 묻는다. "혹시 그런 거 느껴 본 적 있어? 그러니까, 네가 마을에 있을 때 누군가가 마치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의심의 눈초리로 널 쳐다보고, 네가 도로에 나가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널 쳐다보는 느낌 말이야."
애니 프루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레리 맥머티와 다이아나 오사나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대만 출신의 영화감독인 이안 감독이 연출을 한 '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니스와 잭, 두 남자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통해 사회의 편견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사회의 편견을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에니스와 잭의 애절한 러브스토리에 집중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브로크백 마운틴'은 단순히 두 남자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다룬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니스와 잭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사회의 편견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보면 에니스와 잭의 러브스토리가 훨씬 더 애절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1963년, 에니스와 잭은 조 아기레(Randy Quaid)에게 고용되어 와이오밍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한여름 동안 양을 방목하는 일을 하게 된다. 에니스와 잭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밤낮으로 함께 일하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단순한 친구 이상의 이상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잭과 하룻밤을 보낸 에니스가 다음날 잭에게 말한다. "난 동성애자가 아니야." 그러자 잭이 대답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에니스와 잭은 서로를 향한 이 이상한 감정에 당황해 하면서도 이 이상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한여름 동안의 방목 일을 끝낸 에니스와 잭은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에니스는 알마(Michelle Williams)와 결혼하여 두 딸의 아버지가 되고, 로데오 경기에 참가했다가 만난 부자집 딸 로린 뉴섬(Anne Hathaway)과 결혼한 잭은 텍사스에서 장인(Graham Beckel)의 사업을 거들며 살아간다. 하지만 4년 만에 다시 만난 에니스와 잭은 4년 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고, 이제는 서로 떨어질 수조차 없는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다. 에니스와 잭은 주변의 시선을 피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나 자신들만의 시간들을 보낸다. 그렇게 20년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짧은 만남을 가지면서 에니스와 잭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워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은 영화를 위해 탄생된 가상의 공간이다. 에니스와 잭이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들만의 짧은 시간들을 보내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편견 없는 세상을, 그리고 에니스와 잭의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에니스와 잭은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사회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눈다.
에니스와 잭은 겉으로는 보통 사람들처럼 결혼도 하고 평범한 가정 생활을 영위하지만, 속으로는 불행하다. 에니스는 자신과 잭의 관계를 알아 버린 알마와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또 다른 편견을 가지고 있는 장인의 멸시와 돈 밖에 모르는 로린의 무관심 속에서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잭은 에니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에니스와 잭만 불행한 것이 아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편견이 에니스와 잭에게뿐만 아니라, 편견을 가지고 있는 에니스와 잭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어떻게 고통을 주고 이들을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보여 준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보기가 어색하고 민망한 동성애 장면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동성애는 진부한 사회의 인습이 낳은 모든 편견의 대상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꼭 동성애가 아니더라도 진부한 사회의 인습이 낳은 편견의 대상 어떤 것이든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야기에는 상관없다. 하지만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를 다루어 영화의 주제를 좀더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시간적 배경인 1963년 당시보다는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오늘날에도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 영화라는 이야기만 듣고, 영화 보기를 많이 망설였다. 편견을 가지고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면 에니스와 잭의 사랑이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영화가 주는 감동도 느낄 수가 없다. 하지만 편견 없이 보면 에니스와 잭의 사랑이 단순히 동성애가 아닌, 순수하고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편견 없이 보면 잭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브로크백 마운틴에 묻히고 싶어 했다는 잭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잭의 고향집을 찾은 에니스가 잭의 방에서 잭의 셔츠 속에 옛날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잃어 버린 자신의 셔츠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다.
히스 레저는 지금은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에서 조커(Heath Ledger)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로 유명하지만, '다크 나이트' 이전에 이미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에니스 델마 역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이다. 히스 레저는 에니스 델마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히스 레저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 준 잭 트위스트 역의 제이크 질렌할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브로크백 마운틴'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은 '크래쉬 (Crash, 2004)'가 수상했다.
'크래쉬'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과 비슷한 주제를 다룬 '크래쉬'도 괜찮은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에 있어서 '브로크백 마운틴'과는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브로크백 마운틴'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진 못했지만, 이안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작품상을 포함한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감독상, 각색상, 음악상의 3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잭의 고향집에 다녀온 에니스는 편견으로 가득찬 사회를 떠나 외딴 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한다. 에니스는 결혼 소식을 전하러 자신을 찾아온 딸 알마 주니어(Kate Mara)가 놓고 간 옷을 옷장에 넣기 위해 옷장을 연다. 옷장 속에는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진 엽서와 함께, 에니스가 잭의 고향집에서 발견한 자신의 셔츠와 잭의 셔츠가 걸려 있다. 이번에는 에니스의 셔츠가 잭의 셔츠를 감싸고 있다. 에니스는 잭이 살아 있을 때 들어주지 못한 잭의 소원을 잊지 않겠다는 듯 속삭인다. "맹세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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