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 2004)'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다소 산만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이야기 구조 때문에 분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고 작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고 작품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이야기 구조의 산만함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만의 문제가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스타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또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못지않게 이야기 구조가 산만하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몇몇 어른들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산만하다. 이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은 데다가 너무나 많은 상징적인 표현들로 인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이야기들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작품성이 떨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는 결코 아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에 해당하는 금곰상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짜증 잘 내고, 칭얼거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열 살 짜리 소녀 치히로의 가족은 이사를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어느 낡은 터널 앞에 당도한다. 아빠의 호기심으로 터널로 들어간 치히로의 가족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 폐허가 된 놀이공원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닌, 인간에게 금지된 신들의 세계! 이곳의 한 음식점에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아빠와 엄마는 돼지로 변하고,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신들의 세계에서 치히로는 홀연히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의 도움으로 마녀 유바바가 경영하는 신들의 온천장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유바바는 치히로의 이름을 빼앗고, 대신 센이라는 새 이름을 치히로에게 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열 살 짜리 소녀 치히로의 성장 드라마이다. 짜증 잘 내고, 칭얼거리기 좋아하는 어린 소녀 치히로는 신들의 세계에서 돼지로 변한 아빠와 엄마를 구하고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인내와 용기, 그리고 사랑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아빠와 엄마를 구하고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왔을 때 치히로는 어엿한 소녀가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표면적으로는 치히로의 성장 드라마이지만, 치히로의 성장 스토리 속에 다양한 상징적 표현들을 통해, 일본의 사회, 경제, 환경 문제들을 비판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이야기와 주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암시해 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기는 하지만, 일본 제목에서의 "가미카쿠시(神隠し)"는 단순한 행방불명이 아니라, 신에 의한 숨겨짐, 신의 세계로 사라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행방불명"보다는 "가미카쿠시"가 더 정확한 것이다.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영화의 제목은 센과 치히로 모두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이야기와 주제로 미루어 볼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 즉,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로 행방불명이 된 것이고, 센은 유바바가 치히로에게 준 새 이름이다. 센(千(천))은 천 또는 매우 많다라는 뜻이며, 치히로(千尋(천심))는 천 길이라는 뜻으로 매우 높거나 깊음을 이르는 말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은 물질적인 것, 서구 자본주의를 상징하고 있으며, 치히로는 정신적인 것, 일본의 전통적인 것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영화의 제목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물질적인 것, 서구 자본주의에 의해 정신적인 것, 일본의 전통적인 것을 잃어 가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주인이 없는 음식점에서 아빠와 엄마가 마음대로 음식을 먹으려고 하자 치히로가 주인이 오면 화를 낼 것이라고 만류한다. 그러자 아빠가 말한다. "괜찮아. 아빠가 있잖아. 아빠에게 신용카드도 있고, 현금도 있어."
일본식 온천장의 주인인 유바바는 일본식 옷을 입고 있는 종업원들과는 달리 서구식 옷을 입고 있다. 탐욕스러운 유바바가 치히로의 이름을 빼앗는 것은 정신적인 것, 일본의 전통적인 것에 대한 물질적인 것, 서구 자본주의의 침탈을 의미한다. 나중에 치히로가 센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치히로의 성장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신적인 것, 일본의 전통적인 것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자기가 삼킨 것의 모습과 목소리를 흉내내는 가오나시는 종업원들이 강의 신이 흘리고 간 금에 환장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종업원들에게 금을 뿌려 대면서 종업원들이 가져오는 음식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가오나시와 종업원들이 일으키는 소동은 물질적인 것, 서구 자본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의 탐욕과 타락을 풍자하고 있다.
치히로는 하쿠가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니바로부터 훔친 마녀의 도장을 돌려주기 위해 제니바의 집으로 향한다. 치히로가 탄 기차 안의 투명한 승객들은 하나같이 힘이 없어 보이는데, 온천장의 신들과 대조된다. 기차 안의 투명한 승객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빈곤층을 상징하는데, 이들을 통해 서구 자본주의에 의한 경제적 불균형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바바와는 달리 한적한 시골에서 소박하게 살고 있는 제니바는 물레를 돌려 손수 만든 머리끈 - 나중에 머리끈에 걸려 있는 마법의 도움으로 치히로는 어렸을 때 강에 빠진 자신을 하쿠가 구해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 낸다 - 을 치히로에게 선물한다. 유바바와는 달리 정신적인 것, 일본의 전통적인 것을 지키며 살고 있는 제니바가 치히로에게 말한다. "여동생과 난 서로에게 반쪽인데도 우린 사이가 좋지 않지. 너도 내 여동생이 얼마나 나쁜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봤잖아. 여자 쌍둥이 마법사가 그저 문제의 근원이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환경주의자로 유명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를 비판하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온천장에 더러운 오물신이 오는데, 유바바는 센으로 하여금 오물신의 시중을 들게 한다. 하지만 오물신은 사실은 유명한 강의 신으로, 센은 강의 신에 박혀 있는 인간이 버린 온갖 오물들을 빼 주고, 강의 신은 고마움의 표시로 센에게 경단을 선물한다.
하쿠 역시 사실은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의 파괴로 없어진 코하쿠강의 신이다. 치히로는 어렸을 때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없어진 코하쿠강에 빠진 자신을 하쿠가 구해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용의 모습을 한 하쿠에게 이야기해 준다. 치히로의 이야기를 듣고 본모습으로 돌아온 하쿠는 잊어 버렸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 치히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이제 열 살이 되려는 아이들과 한 때 열 살이었던 어른들에게 바치는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작품 소개를 했다. 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결코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이야기에서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인 치히로의 성장 스토리가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상징적 표현들로 인해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하고 묻혀 버린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다양한 상징적 표현들을 이해하고 보면 어른들에게는 상당히 작품성이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다양한 상징적 표현들을 통해 비판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에게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끔 해 준다. 이것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어른들에 의해 운영되고 결정되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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