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원 랜섬 스토다드(James Stewart)와 그의 아내 할리 스토다드(Vera Miles)는 톰 도니폰(John Wayne)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부의 신본이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신본 스타" 신문사의 편집장 맥스웰 스콧(Carleton Young)은 신본에 나타난 상원의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랜섬은 맥스웰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신본에 온 이유와, 톰 도니폰이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서 신본의 무법자였던 리버티 밸런스(Lee Marvin)를 쏜 사나이가 되어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최고의 콤비로 평가 받고 있는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은 서부 영화인 '역마차 (Stagecoach, 1939)'를 시작으로 24년 동안 '말 없는 사나이 (The Quiet Man, 1952)', '수색자 (The Searchers, 1956)' 등, 총 21편의 영화를 같이 만들었고, 그중 10편이 서부 영화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 콤비가 만든 마지막 서부 영화이다.

서부 영화가 인기 있는 영화 장르가 된 이유는 관객들에게 사라진 야생의 서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존 포드 감독의 '역마차'나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도 동부의 문명이 서부에 도래하면서 사라진 야생의 서부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느낄 수가 있는 서부 영화들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이야기는 이제는 문명화된 신본을 다시 찾은 랜섬이 법대를 갓 졸업하고, 젊은이들이여 서부로 가서 명예와 부, 모험을 찾아라는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여, 법전이 가득 든 가방과, 아버지의 금시계, 현금 14달러 80센트를 가지고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야생의 신본에 왔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서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존 포드 감독은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How Green Was My Valley, 1941)', '말 없는 사나이'와 같은, 서부 영화가 아닌 영화들도 많이 만들기는 했지만, 자신도 한 공식 석상에서 자신은 서부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만큼 서부 영화로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실제로 존 포드 감독의 서부 영화들을 보는 것은 바로 서부 영화의 역사를 보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0년대와 50년대의 서부 영화들은 서부를 개척한 백인들을 영웅화하고, 서부와 서부의 개척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이른바 정통 서부 영화들이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영웅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정통 서부 영화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수정주의 서부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서부 영화의 변천이 존 포드 감독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존 포드 감독에게 영향을 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존 포드 감독의 서부 영화들은 서부 영화의 변천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1930년대 말까지 침체되어 있던 서부 영화를 부흥시킨 '역마차'나, 1946년에 나온 '황야의 결투'는 전형적인 정통 서부 영화들이다. 1956년에 나온 '수색자'는 정통 서부 영화와 수정주의 서부 영화가 혼합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서부 영화이다. 그리고 1962년에 나온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완전한 수정주의 서부 영화이다.

존 포드 감독의 '황야의 결투'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이 두 영화를 보면 정통 서부 영화와 수정주의 서부 영화의 차이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동부의 문명이 서부에 도래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다르다. '황야의 결투'는 서부가 문명화되어 가는 과정을 아주 낭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반면에,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현실적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황야의 결투'의 이야기는 모두 거짓말이라고 자백을 하는 영화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 의하면 서부의 문명화 과정은 실제로는 '황야의 결투'에서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았다. 또한 '황야의 결투'에서의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 Henry Fonda)와 같은 전설적인 영웅도 그저 만들어졌거나, 왜곡되어 과대 포장된 것일 뿐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두 주인공인 랜섬과 톰은 각각 동부의 문명과 야생의 서부를 상징한다. 랜섬이 아직은 법보다는 총이 곧 법인 무법천지 신본에 온 것은 서부에 동부의 문명이 도래한 것을 상징한다. 신본에 오는 도중에 리버티 밸런스라는 무법자에게 강도를 당한 랜섬은 법으로 리버티 밸런스를 처벌하려 하지만, 신본에서 리버티 밸런스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톰은 리버티 밸런스에게 맞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총뿐이라고 말한다. 톰은 샌님처럼 구는 랜섬을 순례자라 부르며 얕본다. 법을 중요시하는 랜섬과, 총을 우선시하는 톰의 충돌은 야생의 서부가 문명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과도기의 혼란이다. 랜섬과 톰은 할리라는 여자를 두고도 미묘하게 충돌한다.

리버티 밸런스도 두려워 하는 신본 최고의 총잡이인 톰도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거역하지 못한다. 톰은 법과 질서가 확립되어 가면서 점점 문명화되어 가는 신본을 확인한다. 그리고 총과 총잡이의 시대는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랜섬과 리버티 밸런스의 결투 현장에서 리버티 밸런스가 랜섬을 쏘려는 순간에 남몰래 리버티 밸런스를 쏘고 랜섬의 목숨을 구해 준 톰은 자신이 사랑한 할리까지 랜섬에게 양보하고 사라진다. 랜섬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서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가는 동안, 정작 리버티 밸런스를 쏜 장본인인 톰은 모든 것을 잃고 술에 절어 비참하게 살다 죽은 것이다. 사실 서부도 이렇게 사라져 간 것이다.

랜섬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서 정치적 성공을 거두고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정작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톰이었다. 맥스웰의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다. 이야기를 끝낸 랜섬이 맥스웰에게 묻는다. "이야기를 쓰지 않을 거지요, 스캇 씨?"

그러자 맥스웰이 대답한다. "그럼요. 여긴 서부입니다. 전설이 사실이 된다면 전설을 씁니다. (No, sir. This is the West, sir. When the legend becomes fact, print the legend.)"

정통 서부 영화와 수정주의 서부 영화가 혼합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수색자'만 보더라도, 존 포드 감독은 '수색자' 이전의 존 포드 감독의 정통 서부 영화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를 배경으로 한 멋진 장면들을 연출하여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서부가 문명화되어 가는 과정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는 영화를 오로지 스튜디오에서만 촬영하여 관객들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Posted by unforgetta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