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들은 주로 코미디나 모험, 또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들을 담아 대공황으로 우울한 대중을 위로하였다. 물론 퓰리처 수상작인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영화화한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40)'와 같은 우울한 대공황기를 직접적으로 다룬,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은, 다소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낭만주의적이고 오락 위주의, 그리고 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로 대중으로 하여금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대공황의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이 시기의 이러한 영화들 중에서도 영화의 이야기나 주제가 특히나 밝고 희망적인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영화들은 어려운 시기에 지친 대중에게 더할 수 없는 휴식처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결합 형태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결합이나, 가진 자들보다도 더 여유로운 순박한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로 보여주는,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보여줌으로서, 대중에게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미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It Happened One Night, 1934)'에서 평범한 남자 피터(Clark Gable)와 대부호의 딸 엘리(Claudette Colbert)의 사랑 이야기와, 상류계층의 자만과 특권 의식을 조롱하고, 순박한 보통 사람들의 여유를 보여주는 장면들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은근히 제시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우리 집의 낙원'에서는 평범한 여자 앨리스 시카모어(Jean Arthur)와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 토니 커비(James Stewart)의 사랑 이야기와, 특히 돈에 대한 욕심 없이 세상을 오로지 즐기면서 사는 앨리스의 가족을 통하여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좀더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프랭크 카프라 감독 영화들 중에서도, 물론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Mr. Smith Goes to Washington, 1939)'나 '멋진 인생 (It's a Wonderful Life, 1946)'과 같은 '우리 집의 낙원'보다 작품성이 훨씬 더 뛰어난 영화들이 있기는 하지만,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을 가장 이상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우리 집의 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앨리스의 가족은 마음 좋은 외할아버지 반더호프(Lionel Barrymore)와 폭죽을 만드는 아버지 폴(Samuel S. Hinds), 소설을 쓰는 어머니 페니(Spring Byington), 그리고 발레리나를 꿈꾸는 언니 에씨(Ann Miller)와 실로폰을 잘 치는 형부 에드(Dub Taylor), 3대가 다 함께 어울려 사는 대가족이다. 넉넉한 형편은 못되지만 가족 모두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 세상 걱정거리 없고,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세상을 즐기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인정들이 많아 주변에는 친구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앨리스의 가족을 본 토니의 아버지 A.P.(Edward Arnold)는 사업을 확장하고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만, 그리고 인정 없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덧없어 보인다.

앨리스의 집은 바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다. 바로 모든 사람이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하게, 그리고 서로에게 인정을 베풀면서 사는 세상.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앨리스의 아버지 폴의 폭죽 실험으로 "Home Sweet Home (집 즐거운 우리 집)"이라고 쓰여진 액자가 벽에서 떨어질 때마다 가족들이 다시 제자리에 거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서 이러한 이상적인 세상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고 있으며, A.P.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반더호프와 같이 하모니카를 부는 '우리 집의 낙원'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선하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A.P.도 바뀐 것처럼 이 세상도 이상적인 세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관객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또한 프랭크 카프라 감독은 인생에 있어서 돈이 중요하지 않음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고 있는데,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이러한 의도는 '우리 집의 낙원'의 원제목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우리 집의 낙원'의 원제목을 직역하면 '그것을 가져갈 수는 없다'인데, '우리 집의 낙원'의 중반부에 감옥에 같이 갇힌 반더호프가 A.P.에게 하는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영화 제목에서의 "그것(it)"은 돈을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의 낙원'은 영화의 주제를 받쳐주지 못하는 빈약한 영화의 스토리와 조금은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정도가 지나친 이상주의로 인해 관객들에게 감동은 커녕, 조금은 영화의 주제에 대한 반감마저 들게 한다.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세금도 내지 않는 반더호프와 그의 가족들은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상적인 가족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이상한 가족으로 보이기도 한다.

결코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집의 낙원'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에게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나 '멋진 인생'과 같은 보다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 집의 낙원'에서 프랭크 카프라 감독 특유의 낙관주의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와 '멋진 인생'에서는 그대로 영화의 주제로서 드러있으며, '우리 집의 낙원'에서 보여주는 인상적인 몇몇 장면들도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와 '멋진 인생'에서도 다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집의 낙원'에서 앨리스의 가족과 토니의 가족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장면에서 간간히 비춰주는 재판관(Harry Davenport)의 온화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미소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의회의 의장(Harry Carey)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으며, 법정에서 반더호프의 친구들이 반더호프를 위해 돈을 거두는 장면은 곤경에 처한 조지 베일리(James Stewart)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돈을 거두는 '멋진 인생'의 마지막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 집의 낙원'은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Mr. Deeds Goes to Town, 1936)'에 이어 세 번째로 프랭크 카프라 감독에게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 주었다. '우리 집의 낙원'은 작품상과 감독상 2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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