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일더 감독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 (Brief Encounter, 1945)'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는, 자신의 아파트를 회사의 상사들에게 불륜의 장소로 제공하고, 자신은 이를 이용하여 승진을 하는 한 남자의, 기발하지만 다소 부도덕해 보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이끌어가고 있는 영화이다.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현대의 성문화를 비판하고, 특히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여, 지금은 오히려 리얼리스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영화 기술이 들어간 화려한 화면보다는 탄탄한 각본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 위주의 영화를 만드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한데, 특히 특이한 소재를 영화의 이야기로 다루어 영화를 흥미롭게 이끌어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화감독이다. 화려한 화면들은 관객들이 영화의 스토리에 집중을 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그의 영화 철학은 그의 오랜 영화 작가 생활에서 나온 산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감독과 각본을 함께 담당한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도 그의 영화 철학이 잘 반영되어 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로 감독상과 각본상뿐만 아니라, 제작자로서 작품상까지 수상하여, 한 영화로 3개의 아카데미상을 한꺼번에 수상하게 된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 두 남녀 배우 잭 레몬과 셜리 맥클레인의 연기는 일품이다. 잭 레몬은 부도덕하고 무능력해 보이는, 그래서 관객들로부터 결코 동정을 받을 수 없는 C.C. 백스터(Jack Lemmon) 역을 맡아 휴머니티 가득한 연기로 관객들의 동정을 이끌어 냄과 동시에, 자칫 천박해질 수도 있는 영화를 명화로 승화시켰다. 프랜 쿠벨릭(Shirley MacLaine) 역의 셜리 맥클레인은 후에 나이가 들어 출연한 '애정의 조건 (Terms of Endearment, 1983)'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데,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에서는 젊었을 때의 매력을 한껏 보여 주고 있다.

뉴욕의 큰 보험회사의 평범한 직원인 우리의 C.C. 백스터는 오늘도 회사의 상사에게 자기 아파트를 빼앗기고 추운 겨울밤 거리를 헤매고 있다.

 

백스터는 같은 회사에서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는 프랜 쿠벨릭을 흠모하고 있다.

 

백스터는 자신의 아파트를 빌려 바람을 피우는 상사들의 도움으로 승진을 하게 된다. 우리의 C.C. 백스터가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백스터는 자기의 아파트를 빌려 바람을 피우는 상사들 중 한명인 셀드레이크(Fred MacMurray)의 상대녀가 자기가 흠모하고 있는 쿠벨릭임을 우연히 알게 되고 크게 실망한다. 백스터가 술집에서 만난 여자와 뺨을 맞대고 춤을 추는 장면은 관객들을 폭소하게끔 만든, 영화에서 제일 웃겼던 장면이었다.

 

쿠벨릭은 자신이 셀드레이크의 노리개였음을 깨닫게 되고, 결국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쿠벨릭도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 백스터에게 발견된 쿠벨릭은 백스터의 정성어린 간호로 회복되어 가고, 백스터는 그녀를 간호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일로 백스터는 또다시 승진을 하게 되지만, 셀드레이크가 쿠벨릭과의 밤을 위해 또다시 자신의 아파트를 빌려 달라고 하자 이를 거절하고 직장까지 그만둔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쿠벨릭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백스터임을 깨닫게 되고 바로 백스터에게로 달려간다.

 

"Did you hear what I said, Miss Kubelik? I absolutely adore you"

(내가 한 말 들었어요, 쿠벨릭 양?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Shut up and deal!"

(닥치고 카드나 섞어요!)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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