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 않은 이변이 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다. 적어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예상을 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카데미 작품상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게 주어졌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에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미국의 한 영화 잡지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71회 아카데미 작품상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보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수상했어야 했다는 의견 - 개인적으로는 71회 아카데미 작품상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씬 레드 라인 (The Thin Red Line, 1998)'이 수상했어야 했다고 생각을 한다 - 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이것에 대해 회자가 될 정도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71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의외였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제치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의외였다고 해서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인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잔잔한 감동이나 아기자기한 재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특히 아카데미 각본상에 빛나는 마크 노먼과 톰 스토퍼드에 의해 완성된 영화의 이야기는 기가 막힐 정도로 참신하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영화의 제목이 암시하듯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역사적 실제 인물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영화의 이야기는 100% 허구이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포함하여 영화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던 인물들이라는 점뿐만이 아니라, 실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몇몇 작품들 속의 이야기와 대사들을 인용하여 영화의 이야기와 대사들과 절묘하게 연결시키거나 중첩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끔 하고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Joseph Fiennes)와 바이올라(Gwyneth Paltrow)의 사랑 이야기를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중첩시켜 마치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것처럼 이야기가 설정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의하면 셰익스피어는 무도장에서 바이올라에게 첫눈에 반한 경험과 발코니에서 바이올라와 사랑의 대화를 나눈 경험을 그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에 담았으며, 로즈 극장과 커튼 극장 사이의 세력 다툼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몬터규가와 캐풀렛가의 집안 싸움으로, 신분의 차이로 자신과 바이올라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집안 싸움으로 이루지 못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을 초월한 사랑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한마디로 중첩의 묘미를 보여 주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이야기와 셰익스피어의 실제 작품들과의 중첩을 통해 영화의 이야기가 허구인지, 실화인지 구분이 안되게끔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서도 영화 이야기의 실제 상황과 무대 위의 연극에서의 상황을 중첩시켜, 영화 이야기의 실제 상황과 연극 무대에서의 상황 구분도 안되게끔 만들어 놓아 관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장면들로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가 사랑을 나누면서 - 이 장면은 은근히 야하다 - 하는 대사와 리허설에서의 연극 대사가 절묘하게 중첩된 장면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몬터규가와 캐풀렛가의 결투 리허설 도중에 로즈 극장 사람들과 커튼 극장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결투 장면,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서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가 각각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고서 실제 상황과 연극에서의 상황 구분이 안되는 사랑을 보여 주는 연극 공연 장면 등을 들 수 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 등장하는 몇몇 인물들은 실제로 존재했었던 인물들인데, 벤 애플렉이 연기한 네드 알레인(Ned Alleyn, Ben Affleck)은 당시에도 인기가 있었던 연극 배우였으며, 로즈 극장을 운영하는 필립 헨슬로우(Philip Henslowe, Geoffrey Rush)도 실제로 로즈 극장을 세우고 운영을 한 사업가였다. 커튼 극장의 주인이자 연극 배우로 나오는 리차드 버베이지(Richard Burbage, Martin Clunes) 역시 실제로도 커튼 극장의 주인이자 유명한 연극 배우였다. 영화에서 셰익스피어의 경쟁 상대로 나오는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 Rupert Everett)는 당시에도 셰익스피어에 버금 가는 시인이자 극작가였으며, 영화에서처럼 29세의 젊은 나이에 술집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영화에서 쥐를 가지고 다니는, 조금은 섬뜩하고 엽기적인 아이로 나오는 존 웹스터(John Webster, Joe Roberts)는 비극 'The White Devil'과 'The Duchess of Malfi'를 남긴 유명한 극작가이다. 이 두 작품 또한 조금은 섬뜩하고 엽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올라를 연기한 기네스 팰트로와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한 주디 덴치는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 개인적으로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과 더불어 기네스 팰트로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또한 의외였다 - 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하여 7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상상력이 기발한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셰익스피어와 바이올라의 가슴 아픈 사랑과, 영화 곳곳에서 보여 주는 코믹한 상황들과 장면들이 관객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함께 전해 주는 재미있는 영화이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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