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참 좋아한다. 흥겨운 음악과 춤이 있어서 좋고, 흥겨운 음악과 춤에 걸맞는 유쾌한 이야기가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도 주인공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들을 노래와 춤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이 참 낭만적이다. 비록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비현실적이고 조금은 유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다룬 복잡하고 심각한 이야기의 영화보다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 영화가 내게는 더 매력적이다. 게다가 가뜩이나 삽질만 하는 인간들이 설치는 세상을 보는 것도 머리가 아픈 마당에 현실을 다룬 심각한 영화를 보고 머리를 더 아프게 만드느니 차라리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뮤지컬 영화를 보는게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조지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 (Pygmalion)'을 영화화한 '피그말리온 (Pygmalion, 1938)'을 바탕으로, 각본과 노래 가사를 담당한 앨런 제이 러너와 음악 작곡을 담당한 프레드릭 로우웨의 두 콤비에 의해 만들어진 브로드웨이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My Fair Lady)'를 다시 영화화한 조지 쿠커 감독의 작품으로, 작품상을 포함,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등 8개 부문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꽃을 팔아 아버지(Stanley Holloway)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일라이자(Audrey Hepburn)는 자신의 천한 말투를 고치고자 런던의 한 극장 앞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Rex Harrison) 집을 찾아간다. 히긴스 교수와 그의 친구 피커링 대령(Wilfrid Hyde-White)은 품위 없고 천한 일라이자를 히긴스 교수의 특별 훈련법으로 세련되고 우아한 귀부인으로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내기를 한다. 일라이자는 무뚝뚝하고 완고한 히긴스 교수로부터 상류 사회의 예절과 말하는 법 등 귀부인이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일라이자와 히긴스 교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대부분의 뮤지컬 영화들이 그러하듯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이야기 구조와 전개는 다소 엉성하다. 하지만 애초에 뮤지컬 영화의 이야기가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정된 공간의 무대 위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을 위해, 그리고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흥겨운 음악과 유쾌한 상황의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뮤지컬이 공연되고 있는 극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흥겨움과 유쾌함이 있는 '마이 페어 레이디'야말로 오히려 뮤지컬 영화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56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가 처음 공연될 당시 히긴스 교수 역은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도 히긴스 교수 역으로 나오는 렉스 해리슨이 맡았으나, 일라이자 역은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1965)'에서 마리아 역으로 나오는 줄리 앤드류스가 맡았었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각본을 담당한 앨런 제이 러너는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도 일라이자 역으로 줄리 앤드류스를 원했지만,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의 제작자 잭 L. 워너는 영화계에서 아직 검증이 되지 않은 줄리 앤드류스 대신 영화계에서 이미 스타로 자리 잡은 오드리 헵번에게 일라이자 역을 맡긴다. 하지만 노래 실력이 달리는 오드리 헵번을 위해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소피아 수녀(Marni Nixon) 역으로 나오는 마니 닉슨이 오드리 헵번의 목소리를 대신해야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오드리 헵번에게 밀려 '마이 페어 레이디'에는 출연을 하지 못하고 대신 같은 뮤지컬 장르의 영화인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 1964)'에 출연한 줄리 앤드류스가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오드리 헵번은 노래를 직접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다. 줄리 앤드류스는 '메리 포핀스'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마이 페어 레이디'로 후보에 오른 오드리 헵번을 제치고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수상 소감에서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자기 대신 오드리 헵번을 선택한 '마이 페어 레이디'의 제작자 잭 L. 워너에게 자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한다.

Posted by unforget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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