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d, James Bond."
(본드, 제임스 본드입니다.)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가 2005년에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대사 100 (AFI's 100 Years...100 Movie Quotes)"에서 22위를 차지한 제임스 본드(Sean Connery)의 이 대사는 현재는 한 캐릭터의 이름을 넘어 영화사상 가장 길고 성공적인 프랜차이즈의 제목이 되어 있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007 살인 번호'로부터 출발하여, 2024년 현재 '007 노 타임 투 다이 (No Time to Die, 2021)'에 이르기까지 모두 25편이 제작되었다.
제임스 본드는 영국 비밀 정보국 MI6(Military Intelligence 6)의 요원으로, 코드 번호는 007이다. 제임스 본드는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의 첩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릭터로, 이언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12편의 장편 소설과 9편의 단편 소설을 모아 엮은 2편의 단편집을 썼다.
제작자 해리 잘츠만은 이미 다른 제작자에게 판권이 넘어간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과 '썬더볼 작전 (Thunderball)'을 제외한 모든 제임스 본드 소설의 판권을 이언 플레밍으로부터 구입하고,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하여 제작자 알버트 R. 브로콜리와 함께 영화 제작사 이언 프로덕션스(Eon Productions)를 설립한다. 그리고 125만 달러의 제작비를 마련하여 테렌스 영 감독에게 전격 연출을 맡겼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바로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포문을 연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살인 번호'이다.
'007 살인 번호'의 각본은 이언 플레밍의 6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인 '닥터 노 (Dr. No)'를 바탕으로 리처드 메이바움, 조해나 하우드, 버클리 마더가 썼다. '007 살인 번호'의 원제목도 '닥터 노'인데, 닥터 노(Joseph Wiseman)는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007 살인 번호'라는 한국 제목은 영화에서 MI6 국장인 M.(Bernard Lee)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본드가 자신의 오래된 베레타(Beretta) 권총을 발터 PPK(Walther PPK)로 바꾸어 주려는 M.에게 자신은 10년간 이 베레타를 사용했고 아직까지 빗맞힌 적이 없다고 말하자, M.이 본드에게 말한다. "그랬겠지. 하지만 직전 임무에서 그 베레타가 고장나는 바람에, 그 결과 자네는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나. 자네의 00 번호는 살인 면허의 의미이지 살인당하라는 의미가 아니네. ..."
케이프커내버럴(Cape Canaveral)의 로켓들이 자메이카 지역에서 나오는 라디오 전파로 인해 방해받는 일들이 발생하자, 미국 중앙 정보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는 펠릭스 라이터(Jack Lord)를 자메이카에 보내, MI6의 자메이카 지사 책임자인 스트랭웨이스와 함께 이를 조사하도록 한다. 하지만 스트랭웨이스와 그의 비서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M.은 스트랭웨이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보기 위해 007을 자메이카의 킹스턴으로 보낸다. 본드는 라이터와 케이맨(Cayman Islands) 섬사람 쿼렐(John Kitzmuller)로부터 닥터 노와 그의 섬 크랩 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쿼렐과 함께 크랩 키 섬에 잠입한다. 본드는 크랩 키 섬에서 조개껍질을 줍는 미모의 허니 라이더(Ursula Andress)를 만나고, 이들은 곧 냉혹한 과학자의 마수에 걸려들게 된다. 닥터 노는 자신의 범죄 조직에 본드를 끌어들이려고 하지만, 본드는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여 만든 라디오 전파를 쏘아, 미국의 머큐리 우주선(Mercury Spacecraft) 발사를 방해하려는 닥터 노의 음모를 저지하려 한다.
'007 살인 번호'는 아무래도 1960년대에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과 영상미, 액션 등이, 최근에 제작된 제임스 본드 영화들과 비교하면 너무나 유치하다. 게다가 '007 살인 번호'는 제작 당시의 기준으로도 초저예산으로 제작되어, '007 살인 번호'의 뜻밖의 엄청난 흥행 성공으로 1년 뒤에 '007 살인 번호'에 투입된 제작비의 2배를 투입하여 제작된 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위기일발 (From Russia with Love, 1963)'과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7 살인 번호'의 이야기 자체는 4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썬더볼 작전 (Thunderball, 1965)' 이후의, 스릴감과 긴장감 없는 만화 같은 이야기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보다는 재미있다.
테렌스 영 감독은 '007 살인 번호'의 흥행 성공으로 '007 위기일발'과 '007 썬더볼 작전'도 연출하는데, 그는 모두 3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연출했다.
'007 살인 번호'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한 숀 코너리는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었다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계기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급부상했다. 그는 테렌스 영 감독이 연출한 3편 외에도 3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골드핑거 (Goldfinger, 1964)', 5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두 번 산다 (You Only Live Twice, 1967)', 7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Diamonds Are Forever, 1971)'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여 모두 6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 물론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Never Say Never Again, 1983)'에서도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지만,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이언 플레밍의 '썬더볼 작전'을 영화화한 제임스 본드 영화이기는 하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독점 제작사인 이언 프로덕션스에서 제작된 제임스 본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제임스 본드 영화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와 함께 꾸준히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007 살인 번호'에서 버나드 리가 연기하는 M.은 1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포 유어 아이스 온리 (For Your Eyes Only, 1982)'를 제외한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버나드 리는 11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문레이커 (Moonraker, 1979)'까지 M.을 연기한다.
'007 살인 번호'에서 로이스 맥스웰이 연기하는 M.의 비서 미스 머니페니(Lois Maxwell)는 21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 2006)'과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퀀텀 오브 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를 제외한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로이스 맥스웰은 14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뷰 투 어 킬 (A View to a Kill, 1985)'까지 미스 머니페니를 연기한다.
'007 살인 번호'에서 M.이 무기 담당관이라고 부르는 부스로이드 소령(Peter Burton)은 8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 1973)'와, '007 카지노 로얄', 그리고 '007 퀀텀 오브 솔러스'를 제외한 모든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하여 본드에게 신기한 무기들과 장비들을 제공하는 Q에 해당하는 캐릭터이다. '007 살인 번호'에 이어 '007 위기일발'에서도 부스로이드(Desmond Llewelyn)로 등장하나, '007 골드핑거'에서 'Q'(Desmond Llewelyn)로 등장한다. '007 살인 번호'에서 부스로이드 소령을 연기하는 피터 버튼은 '007 살인 번호'에서만 부스로이드 소령을 연기한다.
'007 살인 번호'에서 본드가 처음 만나는 CIA 요원이자 본드의 절친이 되는 펠릭스 라이터는 '007 살인 번호'를 포함해서 모두 10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007 살인 번호'에서 펠릭스 라이터를 연기하는 잭 로드는 '007 살인 번호'에서만 펠릭스 라이터를 연기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국제 범죄 조직 스펙터가 '007 살인 번호'에서부터 언급되는데, 닥터 노가 본드에게 말한다. "... 나는 스펙터의 멤버다. ... 스펙터는 첩보, 테러, 복수, 강탈을 집행하는 특수 조직이지.(SPECTRE, SPecial Executive for Counter-intelligence, Terrorism, Revenge and Extortion.) ..."
'007 살인 번호'의 오프닝 크레딧에서 흘러나오는 '제임스 본드 테마 (James Bond Theme)'는 몬티 노먼이 작곡하고, 존 배리가 편곡, 연주했다. '제임스 본드 테마'는 현재는 '007 살인 번호'를 넘어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주제 음악이 되어 있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정형화된 오프닝은 유명하다. '제임스 본드 테마'가 흘러나오면서, 앞을 향해 걸어가던 본드가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을 겨눈 총구를 향해 총을 쏘자, 이내 총열 이미지의 화면이 피로 빨갛게 물드는, 이른바 총열 시퀀스(Gun barrel sequence)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총열 시퀀스에 이어, 맛보기로 본드의 액션을 보여 주는 프리-타이틀 시퀀스(Pre-title sequence)가 나오고, 이어서 유명 가수가 부르는 타이틀곡과 감각적인 이미지가 함께 하는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가 나온다.
이러한 제임스 본드 영화의 정형화된 오프닝은 '007 골드핑거'에서 정립된다. '007 살인 번호'에서는 총열 시퀀스가 나오기는 하지만, '제임스 본드 테마'가 총열 시퀀스가 아닌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에서 흘러나온다. '007 살인 번호'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프리-타이틀 시퀀스와 타이틀곡이 없는 유일한 제임스 본드 영화이다.
제임스 본드 영화들을 보면 본드에게 항상 미모의 여자들과 술이 따라다닌다. 본드의 여성 편력은 화려하다. 본드 걸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새로운 제임스 본드 영화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본드 걸과 새로운 본드 걸을 연기하는 미모의 여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크다. '007 살인 번호'의 본드 걸인 허니 라이더가 비키니를 입은 채 바다에서 육지로 걸어 나오는 장면은 유명하다. '007 살인 번호'에서 허니 라이더를 연기하는 우슬라 안드레스는 이언 프로덕션스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포함되지 않는 '007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 1967)'에서는 베스퍼 린드(Ursula Andress)를 연기했다.
'007 살인 번호'에서 호텔의 웨이터가 본드에게 "본드 씨가 말씀하신 대로 젓지 않고 섞은 약간 쌉쌀한 보드카 마티니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닥터 노도 본드에게 "레몬 껍질을 넣은, 젓지 않고 흔든 약간 쌉쌀한 마티니입니다."라고 말한다. 본드의 취향이 드러나는 이 대사는 제임스 본드 영화들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대사이다. "보드카 마티니 한 잔, 젓지 말고 흔들어서.(A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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