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골드핑거'는 2024년 현재 모두 25편이 제작된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포문을 연 '007 살인 번호 (Dr. No, 1962)'와 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위기일발 (From Russia with Love, 1963)'에 이은 3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로, 이언 플레밍의 7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인 '골드핑거 (Goldfinger)'를 바탕으로, '007 살인 번호'와 '007 위기일발'의 각본을 쓴 리처드 메이바움이 폴 덴과 함께 영화의 각본을 썼으며, 가이 해밀턴 감독이 영화를 연출하였다. 현재도 '007 골드핑거'는 25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 중에서, '007 위기일발'과 더불어 최고의 제임스 본드 영화로 꼽히곤 한다.
오프닝 크레딧이 끝나고 '007 골드핑거'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007 살인 번호'에서 제임스 본드(Sean Connery)가 자메이카에서 처음 만난 미국 중앙 정보국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 요원이자 본드의 절친인 펠릭스 라이터(Cec Linder)가 등장한다. 펠릭스는 헤로인 바나나를 팔아 혁명을 위한 자금을 공급하던 라미레즈의 헤로인 관련 시설을 폭파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마이애미 해변(Miami Beach)에서 휴가 중인 본드 앞에 나타나, 거물이자 세계적인 재벌이고, 평판도 꽤 좋아 보이며,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종마 사육장을 소유하고 있고, CIA에서 보기에도 깨끗한, 영국 국적의 오릭 골드핑거(Gert Frobe)를 주시하라는 MI6(Military Intelligence 6, 영국 비밀 정보국) 국장 'M'(Bernard Lee)의 통신 메시지를 본드에게 전달한다. '007 살인 번호'와 '007 위기일발'에서 국제 범죄 조직 스펙터의 일당들을 상대한 본드는 '007 골드핑거'에서는 스펙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악당을 상대한다.
펠릭스와 헤어진 후 본드는 질 매스터슨(Shirley Eaton)이라는 미모의 여자를 이용하여 사기도박을 하던 골드핑거를 골탕 먹인 후에 질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던 중,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의식을 잃는다. 정신을 차린 본드는 전신이 금으로 칠해져 피부 질식으로 죽은 질을 발견한다.
영국 은행의 스미더스(Richard Vernon) 대령은 'M'과, 마이애미에서 런던으로 막 돌아온 본드에게, 합법적인 금 매매업자이자 국제 보석상인 골드핑거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상당량의 금을 영국에서 금값이 높은 외국으로 밀반출하고 있는데, 그가 금을 어떻게 해외로 밀반출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데 실패한 영국 은행을 대신해 MI6에서 그가 금을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외로 밀반출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면, 영국 은행은 그의 보유 재산의 대부분을 회수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스미더스 대령은 본드가 골드핑거에게 접근하기 위해 미끼로 사용할 5천 파운드짜리 나치 금괴를 제공한다.
나치 금괴로 골드핑거의 관심을 끈 본드는 골드핑거의 고급 승용차 롤스로이스 팬텀 3에, 'Q'(Desmond Llewelyn)에게서 제공받은 추적 장치를 몰래 설치한다. 골드핑거를 스위스의 제네바까지 추적해 골드핑거의 공장에 잠입한 본드는 골드핑거가 자신의 승용차인 롤스로이스의 차체를 금으로 만들어 금을 밀수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본드는 동생인 질의 복수를 위해 골드핑거를 사살하려는 틸리 매스터슨(Tania Mallet)을 만나지만, 곧바로 틸리는 골드핑거의 심복인 오드잡(Harold Sakata(Tosh Togo))에게 죽임을 당하고, 본드는 사로잡히게 된다. 본드가 MI6의 요원 007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골드핑거는 레이저로 본드를 죽이려 하지만, 본드가 자신이 죽으면 008이 자신을 대신할 것이고, 자신은 그랜드 슬램 작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고 (거짓)말하자, 골드핑거는 자신이 15년에 걸쳐 면밀하게 준비한 그랜드 슬램 작전이 끝날 때까지만 본드를 살려 두기로 한다.
미국 켄터키에 있는 골드핑거의 종마 사육장으로 이동해 지하실에 갇힌 본드는 골드핑거가 자신의 개인 조종사인 푸시 갈로어(Honor Blackman)가 이끄는 플라잉 서커스 비행단이 낙스 요새(Fort Knox) 인근에, 24시간 동안 완전히 무의식 상태로 만들고 대기에 살포한 지 15분만에 흩어져 사라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가스를 살포하여 낙스 요새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동원할 수 없게 만든 후, 자신의 기동 부대를, 미국의 전체 금 공급량인 150억 달러어치의 금괴가 보관되어 있는 낙스 요새의 금괴 창고에 침투시키고, 중국 공산당 요원인 핵분열 전문가 링(Burt Kwouk)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얻은 원자탄을 터뜨려 모든 금괴를 58년간 방사능에 오염되게 하여, 서방 세계를 경제적 혼란에 빠뜨리고 자신이 보유한 금의 가치를 높이려는 그랜드 슬램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Do you expect me to talk?"
(당신은 내가 말하기를 바라시오?)
"No, Mr. Bond, I expect you to die!"
(아니오, 본드 씨, 난 당신이 죽기를 바라오!)
'007 살인 번호'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포문을 연 영화이고, '007 위기일발'이 제임스 본드와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영화라면, '007 골드핑거'는 제임스 본드와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마침내 영화사상 가장 길고 성공적인 프랜차이즈가 되기 위한 자체적 캐릭터와 자체적 장르를 구축하기 시작한 기점이 되는 영화이다.
제임스 본드 영화의 정형화된 오프닝이 '007 골드핑거'에서 정립된다. 몬티 노먼이 작곡한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주제 음악 '제임스 본드 테마 (James Bond Theme)'가 흘러나오면서, 앞을 향해 걸어가던 본드가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을 겨눈 총구를 향해 총을 쏘자, 이내 총열 이미지의 화면이 피로 빨갛게 물드는, 이른바 총열 시퀀스(Gun barrel sequence)가 나오고, 이어서 맛보기로 본드의 액션을 보여 주는 프리-타이틀 시퀀스(Pre-title sequence)와, 유명 가수가 부르는 타이틀곡과 감각적인 이미지가 함께 하는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가 차례로 나온다.
또한, '007 살인 번호'와 '007 위기일발'에서 보여 준,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와 제임스 본드 영화의 형식에 대한 아우트라인이 '007 골드핑거'에서 구체화된다. '007 골드핑거'의 프리-타이틀 시퀀스만 보아도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가 잘 드러난다. 미끼용 바다갈매기 모형을 머리에 쓰고 적지에 침투하여, 경비원을 가볍게 때려눕히고 저장 탱크에 들어가 시한폭탄을 설치한다. 평소에 늘 하던 일인 양 능수능란하다. 그리고 잠수복 안에 입고 있던 멋진 턱시도로 바꿔 입고, 미모의 댄서 보니타(Nadja Regin)가 춤을 추고 있는 술집에 들어선다. 시한폭탄이 터지고 적의 표적이 된 위급한 상황에서도 본드는 "미결 사항(unfinished business)"을 마무리하기 위해 보니타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가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본드는 죽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심지어 위급한 상황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어떠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본드는 요원으로서의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들과 맞서 싸우고, 결국 세계를 구한다.
본드는 기본적으로 여자를 밟히는 바람둥이이다. 본드는 'M'의 호출을 받고 'M'의 사무실을 찾을 때마다 'M'의 비서인 머니페니(Lois Maxwell)와 시시덕거리면서 그녀의 애간장을 태운다. 본드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여자들을 유혹하고 이용하기도 한다. '007 골드핑거'에서 본드의 유혹에 넘어간 푸시는 그랜드 슬램 작전 직전에 워싱턴에 연락하고 신경가스를 무해한 가스로 바꾸어 그랜드 슬램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게 한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본드에게 신기한 무기들과 장비들을 제공하는 'Q'는 '007 살인 번호'와 '007 위기일발'에서는 'Q'로 불려지지 않았으나, 마침내 '007 골드핑거'에서 정식으로 'Q'로 불려지면서, 본드에게 제임스 본드의 자동차로 유명한 애스턴 마틴 DB5(Aston Martin DB5)를 제공한다.
'007 골드핑거'에서 첫 등장한 애스턴 마틴 DB5는 4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썬더볼 작전 (Thunderball, 1965)'에서도 등장한다. 이후 17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골든 아이 (GoldenEye, 1995)'와 18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네버 다이 (Tomorrow Never Dies, 1998)'에서는 차량 번호가 다른 애스턴 마틴 DB5가 등장하고, 21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 2006)'에서는 차량 번호도 다르고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애스턴 마틴 DB5가 등장한다. 하지만 23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스카이폴 (Skyfall, 2012)'에서는 차량 번호도 BMT 216A로 같고, 헤드라이트의 기관총과 조수석의 사출 좌석 등의 특수 기능이 탑재된, '007 골드핑거'에서 등장했던 그 애스턴 마틴 DB5가 등장한다. 그리고 25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노 타임 투 다이 (No Time to Die, 2021)'에서는 차량 번호도 다르고, 헤드라이트의 기관총도 달라진 애스턴 마틴 DB5가 등장한다.
25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 중에서 '007 골드핑거'의 이야기는 '007 위기일발' 다음으로 가장 재미있다. 물론 골드핑거의 그랜드 슬램 작전에 대한 이야기가 황당하기는 하지만, '007 썬더볼 작전' 이후의, 스릴감과 긴장감 없는 만화 같은 이야기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푸시가 그랜드 슬램 작전 직전에 골드핑거를 배신하고 본드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 계기가 웃기기는 하지만, 푸시로 인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반전도 인상적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본드 걸을 통해 여성을 상품화하고 비하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007 골드핑거'에서는 본드 걸인 푸시 갈로어의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골드핑거의 전용기에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본드가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에게 누구냐고 묻자, 여자가 자신은 푸시 갈로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본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내가 꿈을 꾸고 있나 보군."
푸시 갈로어에서 푸시(pussy)는 "여성의 음부", "(성교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갈로어(galore)는 "많이", "충분히"를 의미한다. 푸시 갈로어는 지극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다. 푸시 갈로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를 감안한다면, 처음에는 레즈비언처럼 나오는 푸시가 외양간에서 본드와 관계를 가진 후에, 즉 남성을 경험한 후에 갑자기 골드핑거를 배신하고 본드의 편으로 돌아서는 이야기는 다분히 여성을 비하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흥미롭게도 '007 골드핑거'에서 골드핑거의 말 못하는 심복인 오드잡이 한국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자신의 중절모를 프리스비처럼 날려 조각상을 두 동강 내고, 한 손으로 골프공을 부수어 버리는 오드잡은 할리우드 영화사에서도 유명한 악당 중 하나이다.
'007 골드핑거'에서도 '007 살인 번호'와 '007 위기일발'에 이어 버나드 리가 'M'을, 로이드 맥스웰이 머니페니를 연기한다. '007 위기일발'에서 장비 담당관 부스로이드(Desmond Llewelyn)를 연기한 데스몬드 렐웰린이 '007 골드핑거'에서도 'Q'를 연기한다.
'007 골드핑거'의 음악은 '007 위기일발'에 이어 존 배리가 담당했으며, '007 골드핑거'의 타이틀곡인 'Goldfinger'는 존 배리가 작곡하고, 레슬리 브리커스와 안소니 뉴레이가 작사하고, 영국 웨일스의 가수 셜리 배시가 불렀다. 셜리 배시는 7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Diamonds Are Forever, 1971)'와 11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인 '007 문레이커 (Moonraker, 1979)'의 타이틀곡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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